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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1500만원 '죄인' CPA준비생



청년층 고용률 42.2% 시대. 20대 절반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취업난’ 속에서 취업준비생들이 힘든 것은 '좁은 취업의 문'뿐만이 아니다.


"꿈보다는 편안함만을 찾아 고시에만 매달린다", "중소기업에서는 일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취준생을 바라보는 사회적 통념이 때로는 취업 경쟁률보다 매섭다. 그러나 취준생들도 할 말이 있다. 취준생들의 애환과 고민에 대한 이해 없이 사회적 통념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억울하다. 우리 주변에는 취업이라는 벽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평범한 20대가 있다. 취업시장에 뛰어들어 치열한 하루를 살고 있는 20대의 일상과 고민을 통해 취준생들의 '현재'를 함께해본다. [편집자주]






일명 4대 고시에도 속하는 CPA(공인회계사) 시험. 1차 시험 합격률은 보통 20%, 최종합격률은 평균 10% 내외다. 매년 평균 1만명 정도가 시험에 도전하고 최종 합격자는 900명 남짓이다.



경영학도 유은수(22·가명)씨는 1만 CPA준비생 중 한 명이다. 올해 1차 시험에 불합격했지만 내년 1차 시험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은수씨는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CPA를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1월부터 유명 학원에 등록해 공부를 시작했고, 지난 2월에 치른 제53회 공인회계사 1차 시험에서 불합격했다.



2년 넘게 제자리걸음하는 셈이지만 회계사만큼 안정적이면서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은 몇 없어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물론 '고시'라고 불릴만큼 어려운 길이다. 그러나 학점이나 외국어 능력이 뛰어나거나, 특별한 스펙이 있는 것도 아닌 은수씨에겐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수능점수 맞춰 간 대학,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경영학과에 큰 고민없이 들어갔지만 막상 대학에서는 내가 진짜 뭘 하고 싶은지 찾지 못했다. 마침 주변 친구와 선배들이 CPA를 준비한다고 했고 알아보니 공무원이나 웬만한 일반 기업보다 연봉도 높았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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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공인회계사 최종합격자 수. (자료=금융감독원 공인회계사시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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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1560만원 지출 '불합격'
은수씨는 한 달에 CPA자격증 준비에만 80만원 이상 지출한다. 6개월에 200만원인 학원비, 한 달 평균 10만원인 책값, 독서실비, 그리고 식비까지 포함해서다. 거기다 지방에서 상경한 자취생이라 월세 50만원까지 내면 매달 130만원이 빠져나간다. 1년 동안 1000만원이 훌쩍 넘는 돈을 쓰며 공부했지만 돌아온 건 불합격 통보였다.



은수씨는 "돈이 많이 드는 만큼 부담과 주변 기대도 컸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불합격 통보를 전하자 부모님은 크게 실망했다. 자괴감에 빠진 은수씨는 부모님과 다퉜다. 그는 "나한테도 화가 나고, 무작정 혼내는 부모님도 원망스러웠다"고 털어놨다.



비용 부담도 크지만 이번에 떨어지면 정말 끝이라는 생각이 무엇보다 두렵다. 1차만 두 번 떨어지면 최종합격은 거의 가망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보통 1차는 합격해야 바로 2차를 준비하든, 유예하든 다음 갈 길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1차만 합격해도 입사 시 가산점 등 우대사항이 많지만 불합격하면 비용만 들 뿐 남는 게 없다. 게다가 1차에서 두 번 이상 떨어지고도 다시 도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게 은수씨의 판단이다. 다른 시험과 달리 다음 단계로 넘어갈 기회조차 없기 때문에 계속 제자리걸음인 셈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1차 시험만 2번째 준비 중
은수씨도 공부를 시작할 때에는 합격할 자신이 있었다. 어려운 시험이지만 평소 '독하다'는 소리도 자주 듣고 공부도 곧잘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의지가 약해졌다. 하루라도 복습을 빼먹으면 따라잡기 힘들었다. 그는 "그날 배운 내용을 바로 복습하지 않으면 다음날은 또 새로운 내용을 배워야 해서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은수씨는 주위 학원생 대부분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았던 점이 자만으로 이어졌고, 불합격의 원인이 됐다고 봤다. 그는 "학원에서 스터디 모임도 하는데, 가보면 다 두 세살 이상 많은 언니, 오빠들이었다"며 "내가 아직 어리다는 생각에 해이해졌다"고 자책했다.



은수씨는 올해 1차 시험에서 떨어져 2차 시험을 치를 자격도 얻지 못했다. 1차 시험만 두번째 준비하는 그는 "2차 시험은 코빼기도 못 본 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주로 1차 시험은 2월, 2차 시험은 6월에 시행되는데, 최종 합격자 대부분은 이전 해 2월에 1차 합격한 유예생들이다. 실제로 2017년 제52회 공인회계사 시험 최종합격자의 89.8%가 2016년 1차 합격자였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내년 시험도 불안… "2년 버릴까 두려워"

은수씨는 내년 시험에서도 떨어질까 봐 불안하다. 그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1차에서 떨어지면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다시 시험을 치기 위해서 1년 넘게 기다려야 하고, 2차 시험의 관문은 더욱 좁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학원비와 책값 등 또다시 1000만원의 비용을 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은수씨는 다시 도전을 결심했다. 회계사 자격증이 자신의 '마지막 경쟁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학점도 별로고 스펙도 별다른 것이 없어 이걸 못 따면 취업에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은수씨는 앞으로 1년이 막막하다. 부모님께는 지금도 눈치가 보이는데 또 떨어지면 고개를 못 들 것 같다. 공부 비용을 전부 지원해주시는게 감사하지만 그만큼 압박이 크다. 지난 1차 시험에 떨어진 이후로는 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목소리가 작아진다. 그는 “만약 내년에도 불합격하면 아무 소득 없이 2년을 낭비한 꼴"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다들 말은 안 하겠지만 2년이나 날렸다고 한심하게 생각하겠죠."



그는 2년째 학원, 집만 오가다보니 외로움에도 무뎌졌다.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밤 11시에 집에 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삼삼오오 무리지어 다니는 또래 대학생들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낯설다. 공부에 집중하려고 SNS도 모두 탈퇴해 카톡하는 사람도 없다. "하루에 한마디도 안 하는 날도 많아요." 밤 11시, 축제 기간에 한창 들뜬 대학생들이 북적이는 전철역에서 은수씨가 혼잣말하듯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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