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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울 때 꽃이 핀다”

위로가 필요한 곳은 어디든, 설치미술가 이효열 씨

(사진=이효열 씨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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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열 씨의 대표작 “뜨거울 때 꽃이 핀다” (사진=이효열 씨 페이스북)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작품을 보고 있으니 안도현의 시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설치미술가 이효열(32) 씨는 ‘연탄도 타고 남은 재로 생을 마감하는데, 나는 나를 위해 이렇게 뜨거운 적이 있었나?’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부끄러웠다. 2013년 겨울 구룡마을 판자촌, “뜨거울 때 꽃이 핀다“는 그의 손에서 그렇게 태어났다.

설치미술가 이효열 씨(사진=이효열 씨 제공)

◇ 호기심에서 시작한 설치미술

처음 시작은 호기심 반, 진담 반이었다. 집에서 때던 연탄으로 작품을 만들어 친구들을 보여줬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까 하고 새벽길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강남의 한 버스터미널에 놓고 사라진 몇 시간 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그의 작품이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권의 책을 본 느낌이었다. 나도 뜨겁게 살아야겠다”는 글이 한 블로그에 올라왔다. 점점 용기가 생겼다.

그때부터 게릴라로 작품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야외전시장 입구에도 한 점 전시했다. 실은 원래 있던 작품이라고 생각할지 궁금해서 재미로 설치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서울시립미술관 SNS에도 작품 주인을 찾는 글이 올라왔다. 재밌게 보면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큰 미술관에서 데뷔를 한 거였다. 그렇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인상 깊은 일이 하나 있었다. 추운 겨울, 작품의 꽃이 시들어 갈아주러 간 적이 있다. 새벽 시간이었는데도 어떤 한 여학생이 작품을 한참 바라 보고 있어 멀리서 쭉 지켜봤다. 그러다 여학생이 갑자기 주저앉아 계속 작품을 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도 따라서 울컥했다. 마치 연탄재를 처음 보던 스스로가 오버랩 됐기 때문이었다. ‘잘 살고, 멋지게 살고 싶은데’라는 생각을 하던 과거의 본인을 옆에서 지켜보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예외’ 예술가 그룹이 제공한 질문 공간(사진=이효열 씨 제공)

◇ 수많은 생각과 대답, 공공캠페인까지

스스로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한 미술로 이제는 ‘예외’라는 멋진 예술가 그룹까지 생겼다. 다섯 명의 예술가들이 함께 한 팀을 꾸려 연남동에서 ‘질문의 공간’을 제공했다. 전시라기보다는 공간 제공에 가까웠다. 사람들이 찾아와 자유롭게 쉬다가 캔버스에 질문을 남겼다. 어느 질문도 상관 없이 사람들이 질문과 답을 고민하는 시간을 자유롭게 만끽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최근에는 생명과 관련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바로 “국화꽃 한 송이 부칩니다“와 시흥시와 함께 콜라보레이션 한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캠페인이다. ”국화꽃 한송이 부칩니다“는 이 씨가 직접 우체통마다 국화꽃과 편지를 설치했다. 우체국 집배원들이 과로, 자살, 교통사고 등으로 많이 순직하면서 추모의 메시지와 함께 과한 업무를 반대하는 메세지를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에 시작했다.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는 중장년층 자살방지 캠페인이다. 은퇴를 하고 가장 외로운 나이인 50-60대의 아버지 세대가 자살률이 굉장히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작했다.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 시흥시와 함께 캠페인을 진행하게 됐다.

우체국 집배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진행한 ”국화꽃 한송이 부칩니다“ 캠페인 (사진=이효열 씨 페이스북)

◇ 목소리를 내는 사람으로

이렇게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서서 목소리를 내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어렸을 적부터 느낀 게 컸다. 구룡마을 판자촌에는 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많이 살았다. 그는 어렸을 때 이웃집 할머니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돌아가신 걸 봤다. 그런데 아무것도 뉴스가 되지 않는 게 이상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유명인들의 가벼운 이슈가 한 사람의 죽음보다 더 크게 보도됐다. 그때부터 작은 것들을 지나치지 않고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함께 이제는 감상하는 사람들과 작품으로 소통을 한다. 문구를 적어둔 박스가 없어진 적이 있었는데 누군가 “시들어도 예쁘잖아, Ann”이라고 쓴 박스를 만들어줬다. 시든 것도 시든 대로 아름답다는 글을 보고 새로운 해석에 감동을 받기도 했다. 작품을 본 사람과 소통을 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직까지 누가 쓰고 간 지 모르지만 만나면 꼭 커피 한 잔 사고 싶다”고 전했다.

“우린 이미 피었는지도 몰라” 캠페인 (사진=이효열 씨 페이스북)

◇ 우린 이미 피었는지도 몰라

사람들은 비가 오면 작품에 우산을 씌워주기도 하고 가끔은 연탄에 꽃이 가득 차 화환처럼 변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작품을 통한 대화가 늘다 보니 자연스레 그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는 누가 날 찾아준다는 것은 굉장히 귀한 일이라며 항상 감사해하며 살고 있다고 전했다. 또 사회가 우울하고 힘들다보니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한마디에 공감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삶의 철학이 담긴 무거운 책보다는 지금 젊은 세대에게 가볍게 전할 수 있는 위로와 용기의 한마디가 가장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피었는지도 몰라.” 고된 시간을 겪는 모든 이에게 그가 전하는 말이다. 내가 꽃처럼 피었는데 몰랐던 것처럼 우린 이미 피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다른 시선으로 봤을 때 모든 순간은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며 스스로에 대한 가치를 좀 더 알았으면 좋겠다고도 전했다. 우리는 이미 피었는지도 몰라.

 

tabo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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