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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을 넘기다…고흐 vs 고갱, 더 고통스러운 삶은

현실 청춘들에게 책이 전하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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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삶이 비참할수록 위대한 작품이 나온다’
이 역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예술가로 단연 ‘반 고흐’가 꼽힙니다.
평생 가난 속에서 화가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자살을 택해야 했던 비극적인 화가.
하지만 고흐와 동시대를 살았던 고갱 역시 만만치 않은 비극적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책 ‘보통남녀 교양인문학’의 저자는 두 비극적인 화가가 만났었고 고갱이 결별을 선언하자 고흐가 오른쪽 귀를 잘라버린 것이라고 합니다.
고흐의 비극적인 삶부터 살펴볼까요?
1853년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흐는 삼촌이 운영하는 파리의 화랑에 근무하며 미술작품을 접했습니다.
성서를 탐독하기 시작한 그는 미술품을 거래하는 일에 염증을 느껴 전도사가 됩니다. 지나치게 엄격한 태도로 다른 종교인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전도사도 그만둡니다.
다시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고흐는 벨기에의 미술 아카데미에서 그림의 기초를 닦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인정받지 못했고 자기의 그림을 사람들이 알아주길 원했던 그의 꿈은 사후 100년이 지나서야 이뤄집니다.
‘타히티의 여인들’로 유명한 고갱의 불행한 삶을 볼까요?
고갱은 파리의 증권회사에서 일했습니다. 그가 근무하던 라피트 가에는 화랑이 많았는데 서른에 가까운 나이에 살롱에 풍경화를 출품하며 화가로 데뷔합니다.
그는 서른 다섯이 되던 해 전업 화가가 된다고 선언합니다. 전시회를 열었지만 실패한 고갱은 천연두에 걸린 아들을 치료할 돈이 없자 큰 자괴감에 자살을 결심하기도 합니다.
이후 젊은 화가들 사이에서 자신감을 찾은 고갱은 파리로 돌아와 고흐와 조우합니다. 고갱에게 매료된 고흐는 고갱에게 함께 작업하자고 했고 1888년 가을 서로에게 바치는 자화상을 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울증 같은 신경과민 증세를 보이는 고흐에게 지친 고갱은 2개월만에 결별을 선언합니다. 결별 선언에 고흐는 자신의 오른쪽 귀를 잘라버리죠.
파리에서 매독을 얻고 타히티로 돌아간 고갱은 딸의 사망 소식에 자살을 기도합니다. 하지만 자살에 실패했고 자신의 남겨진 시간을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데 씁니다.
자살한 고흐와 자살에 실패한 고갱. 두 명의 화가가 평범한 삶을 살았더라면 그들의 그림이 그토록 특별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보통남녀 교양인문학] 중에서.
[본 카드뉴스는 tyle.io를 통해 제작했습니다.]

tabo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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