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파가 한차례 밀어닥칠 것이라는
이 겨울에
나는 서고 싶다 한 그루의 나무로
우람하여 듬직한 느티나무로는 아니고
키가 커서 남보다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미루나무로도 아니고
삭풍에 눈보라가 쳐서 살이 터지고
뼈까지 하얗게 드러난 키 작은 나무쯤으로
그 나무 키는 작지만
단단하게 자란 도토리나무
밤나무골 사람들이 세워둔 파수병으로 서서
그 나무 몸집은 작지만
다부지게 생긴 상수리나무
감나무골 사람들이 내보낸 척후병으로 서서
싸리나무 옻나무 너도밤나무와 함께
마을 어귀 한구석이라도 지키고 싶다
밤에는 하늘가에
그믐달 같은 낫 하나 시퍼렇게 걸어놓고
한파와 맞서고 싶다
△김남주 시인의 ‘이 겨울에’라는 시입니다. 매서운 겨울 한파에도 무언가를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가 엿보입니다.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깊은 산속. 딱딱하게 얼어붙은 땅 위에 홀로 서 있는 허수아비도 그와 같은 생각이 아닐까요.
△지난 27일 한 해가 저물어 갈 무렵의 추위인 ‘세밑한파’가 시작됐습니다. 서울 아침 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떨어지고 체감 온도는 영하 18도를 기록했습니다. 강원도 철원은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는데요. 새해를 앞두고 매서운 세밑한파가 계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 농사도 짓지 않는 밭을 홀로 지키는 ‘파수꾼’ 허수아비. 외로운 그에게 따듯한 패딩을 입혀놓은 마을 주민의 모습을 보니 꽁꽁 언 마음도 녹아내리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