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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 범법자로 내모는 한국…여성만 고통받아



[낙태법에신음하는여성①]
사문화한 ‘낙태 금지법’…영유아 유기·사망 매년 늘고 있어
65년간 안바뀐 낙태법 실효성 논란…여성과 의사만 처벌해

(사진=연합뉴스)


아기들이 세상의 빛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목숨을 잃고 버려지는 이른바 영유아 유기 살해 사건이 늘고 있다. 범죄자로 모는 낙태법 때문에 병원에서 제대로 된 인공유산(낙태) 수술을 받을 수 없다.

부모나 남자친구는 물론 사회적으로 경멸하고 손가락질 받는 게 무서워 화장실 등에서 아이를 낳은 후 그대로 유기한 채 도망치거나 아이를 비닐에 싸서 야산 등에 버리곤 한다.

지난달 전북 익산시 원룸 주차장 쓰레기 더미에서 검은 비닐봉지에 담겨 버려진 신생아가 숨진 채 발견됐다. 집 안에 숨어 있다가 긴급체포된 20대 산모 김모씨는 “양육 능력이 없어서 출산 후 아이를 방치했다”며 “가족이나 동거남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기 무서워 화장실에서 혼자 아이를 낳았다”고 진술했다.

같은 달 울산의 한 병원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은 후 숨지게 한 1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 10대는 아이가 숨지자 인근 야산에 아이를 유기했다.

전문가들은 “낙태도 입양도 경제적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미혼모에게 모든 책임의 굴레를 지우면서 범법자로 만드는 현 법 시스템과 사회적 분위기가 불공정하다”고 지적한다.

(사진=이데일리 DB)


매년 느는 영유아 유기·살해 사건

영유아 유기와 사망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경찰청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순례(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영아 유기·살해 건수는 올해 8월 말까지 142건이었다.

2014년에 87건에 불과했던 건수는 2015년 57건, 2016년 116건, 2017년 177건을 기록해 4년 새 두 배를 넘어섰다. 이미 8월 말 기준으로 지난해 발생건수의 80%를 넘어서고 있어 올해에는 약 200건을 웃돌 전망이다.

이처럼 미혼모를 궁지에 몰면서 범법자로 만드는 현 시스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낙태금지가 이뤄진 2010년 이후 영아 유기·살해 사건이 꾸준히 증가했다고 지적한다. 국내에서 낙태는 불법이다. 낙태한 환자도 수술한 의사도 형사처벌 대상이다.

여기에 ‘입양특례법’도 영아 유기·살해 사건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 2012년 8월 시행한 이 법에는 무분별한 입양을 방지하기 위해 입양을 보내려면 친부모 ‘출생등록’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때 이후 출생신고가 이뤄진 아이만 입양을 할 수 있다.

이 조항은 출생신고를 꺼리는 미혼모에게 족쇄다. 임신과 출산 사실을 숨길 수 없어서다. 대부분의 미혼모는 신분 노출을 이유로 출생 신고를 꺼리는데 입양할 때 출생신고 서류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김순례 의원은 “정부가 합법적인 입양 통로를 ‘출생신고’라는 장벽으로 막아버리니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미혼모가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사문화된 낙태법…65년간 그대로 유지돼

국내 여성의 낙태 관련법은 지난 1953년 제정된 형법과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을 따른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별다른 개정 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모자보건법의 낙태수술 허용 범위는 지나치게 제한적이라 불법 낙태와 영아 유기·살해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다.

형법에서는 낙태 행위를 일절 금지하고 모자보건법은 위법성 조각 사유를 둬 일부 낙태를 허용한다.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부모에게 유전적 질병과 장애가 있거나 강간, 근친상간 등에 한해 임신했을 때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한다. 이 외에 낙태하면 형법에 따라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과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올해 3분기 낙태 유도제를 온라인에서 판매하다 적발된 건수를 조사한 결과 856건으로 지난해 180건보다 약 5배 늘어났다. 막다른 길에 내몰린 여성에게 낙태는 선택이 아니라 살기 위한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조건에 있는 여성일수록 사회적 보장은 기대하기 어렵고 처벌의 책임은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안전하지 못한 시술 상황에 놓이거나 시술 후에도 후유증 등의 문제로 건강과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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