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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공동체의 시작 그리고 베이비박스


[이종락 목사의 육아일기]


이종락 목사 (사진=스냅타임)


서울 관악구의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 운영 10주년을 맞이한 이종락 목사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으로 낳고 가슴으로 운다고 했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도 어려운데 여러 명을 한번에 돌보기란 죽을 만큼 힘들다고 말하는 이 목사는 아이들이 밝게 웃고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하다고 합니다. 지난 10년간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면서 아이들의 생명을 살려온 이종락 목사의 육아일기를 스냅타임에서 연재합니다.


젊은 시절 술과 담배, 잦은 다툼으로 허송세월을 보냈을 때 나만 바라보는 아내와 가족, 직장 동료와 이웃에게 많은 상처를 줬다. 포장마차에서 지인들과 술 마시고 있을 때 밖에서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오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도 나처럼 마음이 상심이 큰가 보네”라며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자세히 보니 내 아내였다.
그 순간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내가 잘 못 살고 있구나”라는 죄책감이 들면서 그 자리를 털고 새로운 사람, 존경받는 남편이 되기 위해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내와 함께 교회를 다니면서 참 예뻤던 아내의 미소도 다시 볼 수 있었고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둘째 은만이가 가져온 삶의 변화


1987년 7월, 병원에서 둘째 은만이가 태어났다. 하지만 의사로부터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좌절감에 빠졌다. “하나님 이왕 주실 거면 제대로 된 아이를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불평했다. 그 후 머지않아 병원에 있는 기둥을 잡고 엎드려 하염없이 통곡하고 회개를 했다.


은만이는 뇌병변 1급으로 중증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매일 은만이가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라는 기도와 믿음을 가지고 정성스럽게 아이를 돌봤다. 같은 병동에서 나와 같은 처지의 부모들이 그 모습을 보고 감동을 했는지 하나둘씩 기도를 요청했고 기꺼이 그들을 위해 같이 기도했다.


그 당시 교회도 아닌 병원에서 수많은 사람이 함께 기도하는 모습을 본 병원 관계자는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교회에 가서 하시지요” 라고 탐탁지 않아 했다. 하지만 간절한 기도를 원하는 많은 사람을 위해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다른 병동의 할머님이 할 얘기가 있다며 찾아왔다. 할머니는 “내 손녀딸 상희도 당신 아들처럼 계속 누워만 있는데 시집간 딸이 불쑥 아이만 맡기고 집을 나갔다”며 “내가 죽을 날이 머지않았는데 혹시 내 손녀딸을 맡아줄 수 있겠냐”고 말을 건넸다.


처음엔 황당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할머니는 뭘 믿고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때 할머니는 “당신이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이면 믿고 맡길 수 있겠구나”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 (사진=스냅타임)


아내와 함께 시작한 주사랑공동체


할머니가 그 이듬해에 하늘나라로 떠나고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사정을 말했다. 아내는 “하나님께서 맡겼으니 우리가 키워야죠”하며 흔쾌히 그 아이를 자식으로 받아들였다. 그날 본 아내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아름답고 위대했다. 그날이 주사랑공동체 장애인생활공동체의 시작이었다.


누워만 있던 상희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이는 호전돼 앉을 수 있게 됐고 “아빠! 아빠! 엄마! 엄마!”라고 나와 아내를 부르기까지 한다. 아이의 달라진 모습을 본 의사선생님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병원에 있을 때는 치료도 되지 않고 누워만 있었는데 어떻게 하신 겁니까”라고 되려 질문을 했다.


그 후 의사선생님이 긴밀하게 의논할 게 있다고 다시 나를 불렀다. 의료사고로 누워있는 네 명의 아이가 있는데 아이들 부모도 더는 찾아오지 않는다며 그 아이들을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무슨 자신감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아내와 상의도 없이 망설임 없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집안 사정도 어려운 시점에 아내에게 네 명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려웠지만 용기를 내어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아내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하나님이 주신 자녀라고 생각하고 키웁시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아내가 없었다면 주사랑공동체 장애인생활공동체는 없었을 것이다. 아내는 하나님께서 주신 내 삶의 최고의 축복이다. 그를 사랑할 수 있어 감사하다.


내 사연이 방송을 통해 소개되면서 불가피하게 아기를 키우지 못하는 미혼 부모들이 나를 믿고 아기를 맡기기 시작했다. 집 대문 앞 주차장, 전화부스, 골목 길에 아이를 놓고 갔다. 그러자 나에게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잘못하면 소중한 아기가 위험할 수도 있겠구나.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겠구나.” 아이를 살리기 위한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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