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는 두께가 얇은 초박형 콘돔이 인기다. 성관계 시 남성이 콘돔을 착용하지 않은 듯한 자극을 느끼기 위해서다. 이외에도 남성의 사정을 지연시키는 마취 성분이 포함된 콘돔 등 피임이라는 본래 목적보다 남성의 만족감만을 강조한 콘돔 브랜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콘돔이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만연한 가운데 지난해 9월 박지원 세이브앤코 대표가 ‘여성을 위한 콘돔’을 출시해 피임에 대한 보수적 편견을 깨뜨렸다.

박 대표의 브랜드인 세이브(SAIB)는 편견이라는 영어 단어 BIAS를 뒤집어 만들었다. 여성의 성에 대한 편견을 뒤집겠다는 포부에서 비롯한다. 박 대표가 이러한 사회적 편견에 관심을 둔 것은 그가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던 한 백인 여학생의 발표 때문이다.
이 학생은 대학에서 나눠주는 무료 콘돔을 모아 파티가 열리는 곳에 ‘세이브 섹스’라는 작품을 설치했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콘돔 사용과 건강한 성생활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정작 교수인 박 대표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콘돔이 남자들의 전유물인 줄로만 알았던 사회적 편견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이후 박 대표는 한국의 콘돔 시장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콘돔 제품의 성분을 제대로 알 수 없다”며 “콘돔에 남성의 느낌을 더 좋게 하기 위한 첨가물이 많이 들어갔지만 이와 관련한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콘돔의 종류는 주로 남성 중심적인 제품들로 한정돼 있어 여성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역시 부족했다. 박 대표가 피임에 대한 편견을 깨고 여성을 위한 콘돔 브랜드를 만든 이유다.

세이브 콘돔의 가장 큰 특징은 손에 들고 있어도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는 세련된 디자인이다. 분홍색과 은색을 조합한 콘돔 틴케이스뿐만 아니라 하트 모양의 에어캡으로 장식한 파우치 등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의 제품이 가득하다.
박 대표는 “피임 도구를 가방과 파우치에 들고 다닐 때 이질감이 없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며 “실제 제품을 구매한 고객들이 예쁘다는 평을 해준다”고 밝혔다.
그는 “제품이 예쁘다고 해서 콘돔을 한 번도 안 사본 여자 고객이 갑자기 콘돔을 사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래도 세이브 제품에 한 번 더 관심을 두고 콘돔을 여성이 살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변화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콘돔이 여성의 몸 안에 들어가는 만큼 안전성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식물성 원료인 천연 라텍스를 이용해 콘돔을 제작하고 전기 검사, 5종 균 검사 등 4가지 검사를 시행해 안전성을 높였다. 남성의 자극을 높이는 각종 화학 첨가물도 뺐다.

반면 그는 “여성을 배려한 콘돔이 성적 건강을 유도하지만, 마케팅에 제한이 많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콘돔이 성인용품으로 분류돼 인터넷으로 다양한 콘돔 제품을 보기 위해서는 성인인증을 거쳐야 한다. 그만큼 세이브 제품의 노출이 어렵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세이브의 좋은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절반의 업무”라며 “여성의 성에 대한 이야기, 여성의 성적 건강에 대한 이야기 등 세이브 브랜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 절반의 업무”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이러한 캠페인을 성 생활에 주체적인 여성을 향한 사회적 인식과 편견을 뒤집겠다고”고 덧붙였다.
[한종완 배진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