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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정원]길에 버려진 잿빛 고양이, 하얀 천사가 됐어요.







박서영 고양이정원 대표 (사진=고양이정원)





평범했던 초가을 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온 아이가 있다. 그날도 카페에서 아이들을 보살펴 주고, 손님을 받고, 청소하고 늘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소모품이 떨어져 시장을 보러 잠시 나오게 되었다. 자릴 비운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카페에서 전화가 오고 매니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분이 고양이를 데리고 오셨어요! ”





고양이와 동반 입장이 되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그런 사항에 대해서 모르시는 분이 고양이와 함께 카페에 오셨나 잠시 생각했다.





잘 설명해 드리라고 말하려던 찰나, 카페 앞 골목에 버려진 걸로 추정되는 고양이를 데리고 오셨다고 하는 매니저의 말.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혹여나 누가 문 앞에 고양이를 유기하고 간 걸까.





상황 설명을 듣자 하니 골목을 지나가던 중, 카페 앞 소방서 근처 골목을 서성이던 고양이가 그분을 계속 따라왔다고 한다. 마침 우리 카페도 바로 앞이라 어찌할 바를 몰라 데리고 오셨다고 했다.





반면 더는 고양이를 추가로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걱정이 앞섰다. 매니저에게 우선 그 아이를 잠시 보살피고 있으라고 전달 후, 바로 카페로 들어갔다.






고양이정원에 발을 들인 '솜이'의 첫 모습 (사진=고양이정원)





처음 본 아이의 상태는 얼굴만 멀쩡해 보일 뿐 본래 가진 털 색이 무색할 만큼 잿빛에 가깝게 변해 있었다. 길에서의 생활 때문인지 군데군데 검게 그을린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길냥이라고 보기에는 터키쉬앙고라와 페르시안이 섞인 듯 보이는 아이였다.





적어도 일주일 이상 먹은 게 없는지 배는 한 줌에 잡히며 앙상하게 남은 뼈를 지저분한 털이 덮고 있었다. 물을 먹지 못해 탈수가 심한지 입안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오랜 기간을 울었는지 목이 쉬어 나름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울어보지만 가냘프게 갈라지는 소리만 날 뿐, 울지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급한 대로 물과 습식사료를 주었고 허겁지겁 먹어버리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짠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 손을 잘 타고 미용 흔적도 있는 게 분명히 누군가가 키우던 고양이일 텐데…






고양이정원에서 적응중인 '솜이'의 모습(사진=고양이정원)





정원을 운영하면서도 길에 있는 고양이를 섣불리 구조하지 않는 이유는 누군가의 고양이 일 수도, 그래서 주인이 있거나 혹은 근처에서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고 있는 주인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은 이미 길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잡아 잘 살아가는 고양이를 불쌍하다는 이유로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것이라면 함부로 구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며 그 아이를 데려오신 분과 며칠 동안 카페 근처를 수소문하고 SNS로 주인을 찾아보고, 혹여나 아이를 잃어버린 사람이 찾고 있는 글을 쓰지는 않았을까 찾아보기도 했지만, 연락이 온 곳은 없었다.





이대로 이 아이를 여기서 키워도 되는 걸까.





마를 대로 마른 아이를 먼저 돌봐 주는 것이 급선무였고 목욕을 시켜주고 뭉친 털들을 제거해 주었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고 순순히 모든 걸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겁에 질려서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한껏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것만이 아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았다. 목욕 후에 드러난 새하얀 털이 솜뭉치 같아 이름을 ‘솜이’로 지어주었다. 그렇게 솜이의 정원 생활은 시작되었다.






고양이정원에서의 솜이(사진=고양이정원)





정원에 처음 오는 고양이들이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닐 거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환경, 그리고 처음 보는 많은 고양이 무리. 예민한 성격의 고양이들은 그런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적응을 잘 못 하게 되면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생기기도 하며, 잘못하면 급사하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한 마리의 새 식구가 오게 되었을 때 집사로서도 많은 신경이 쓰이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우려와는 다르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솜이는 정원이 마침 자기 집이었던 냥 빠른 속도로 적응해 나가고 있으며 이제는 제법 살도 찌고 사냥도 하며 고양이다움을 뽐내고 있다. 나무에 올라타 낮잠 자는 것을 즐기며 사람이 찾아오면 주변을 빙빙 돌며 자기를 봐달라고 애교도 곧잘 부린다.






나무에서 쉬고 있는 '솜이'(사진=고양이정원)





솜이가 고양이정원에 와서 정말 행복한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솜이가 이곳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집사로서의 온 정성을 쏟을 뿐. 아직도 한편으론 솜이를 찾는 누군가가 있지는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웃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있는 이 동네에 외진 곳에 솜이가 길에 있었던 것은 우연은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든다.





묘연이란 그렇다.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온 솜이. 이제는 편안한 모습의 솜이.길에서 죽을 수도 있었던 솜이는 지금 이곳에서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하지만 솜이는 잊지 못할 것이다. 길에서 보낸 힘들었던 그 시간을.


글·사진=박서영 고양이정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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