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침해소! 청춘뉘우스~

천안함 배지·페미니즘 티셔츠…’가치’에 지갑 여는 2030

2030 사이 '미닝아웃' 소비 대세
소비로 적극적 의견 표출, 동참 독려
세월호·촛불, '작은 힘이 모여 세상 바꾼다' 신념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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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돕는 기업 마리몬드에서 제작한 에코백. (사진=마리몬드 홈페이지)

대학생 김정우(25)씨는 라면을 사러 마트를 갈 때면 진열대 앞에서 고민하지 않고 ‘오뚜기’ 제품을 고른다. 11년 간 라면 가격을 올리지 않고 마트 시식직원까지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오뚜기 기업 회장의 미담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접한 뒤부터다. 그가 입고 있는 맨투맨 티셔츠는 마리몬드 제품이다. 마리몬드는 휴대폰 케이스, 에코백, 티셔츠 등을 판매하는 패션 잡화 업체로 수익금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돕는 곳이다. 김씨는 최근 오는 26일 천안함 폭침 9주기를 앞두고 천안함 희생 장병들을 기리는 기념 배지도 구입했다.

김씨는 “특별히 이들이 생산하는 제품이 저렴하거나 탁월해서 구매를 고집한다기보다는 이들이 수행하는 사회적 공헌 활동에 감동한 것이 크다”며 “나 한 명이 제품을 구매한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힘 없는 개인들의 소비력이 모이면 변화가 있지 않을까란 기대감 때문에 이런 상품들을 소비하는 것 같다. 이런 좋은 취지의 제품에 지갑을 여는 것 만으로 나의 가치관을 표현하고 지키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만족감도 든다”고 말했다.

2030세대 청년들을 중심으로 정치적, 사회적 신념을 소비 행위로 표현하는 ‘미닝아웃(Meaning out)’ 소비가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신념과 가치관을 장황한 말 대신 자신이 먹고, 입고, 사용하는 상품들로 자유롭게 표현한다. 또 이를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노출함으로써 타인의 동참을 독려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게 무례로 여겨지던 기존의 사회적 분위기가 변했고, 지금의 청년들이 작은 손길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민초(民草)의 힘을 촛불집회 등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깨달은 세대이기 때문에 이같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비, 표현의 효과적 수단…세상 바꿀 작은 힘

미닝아웃은 ‘신념’을 의미하는 ‘미닝(Meaning)’이란 단어와 ‘벽장에서 나오다’란 뜻을 지닌 ‘커밍아웃(Coming out)’이란 단어를 결합한 신조어다. 자신이 간직한 정치, 사회적 신념과 가치관을 소비 행위를 통해 표현하고 이를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노출함으로써 인식 변화를 촉구하려는 소비 행태를 뜻한다. 이같은 소비 행태가 특히 2030 청년 세대 사이에서 눈에 띄게 관찰된다.

회사원 박윤영(27·여)씨는 페미니즘 가치관을 표방한 기업들의 상품을 애용하고 있다. 그가 입는 티셔츠, 휴대폰 케이스, 에코백 등에는 ‘Girls can be anything(소녀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We should all be feminists(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 등 문구가 새겨져 있다. 박씨는 “강남역 살인사건 등을 거치며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여성학을 공부하며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며 “내가 지향하는 가치관에 부합하고 상품을 통해 이를 확산하려는 좋은 취지의 기업의 매출이 오르는데 조금이나마 일조함으로써 신념을 어느 정도 실천할 수 있다는 묘한 만족감이 있다. 또 말로 구구절절 나의 생각을 설명해 전달하는 것보다 강렬한 슬로건이 박힌 상품들을 소비하는 것만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물 애호가인 대학원생 곽민지(28·여)씨는 유기견을 후원하는 업체가 생산한 에코백을 메고 다닌다. 얼마 전에는 후원금을 멸종위기 동물 보호를 위한 기부 활동에 사용하는 패션소품 스타트업의 크라우드 펀딩에 투자했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5년째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가방에 세월호 추모 배지를 달고 있다. 곽씨는 “나에게 깊은 충격과 슬픔 등 감회를 안겨준 사건과 순간들을 잊지 않으려는 나름의 각인행위”라며 “굿즈가 담은 슬로건을 볼 때마다 당시 내가 느꼈던 다짐을 잊지 않고 가치관을 지켜나가겠다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문제를 잊지 않고 변화시키려는 생각을 끊임없이 가지고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 세상이 더욱 좋게 변화하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왼쪽부터)마리몬드가 제작한 맨투맨 티셔츠를 입은 인기 먹방 BJ 밴쯔, 페미니즘 관련 슬로건을 담은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가수 선미.(사진=밴쯔, 선미 인스타그램)

밴쯔·수지 등 연예인도 동참…업계도 미닝아웃 집중 공략

연예인과 유투버, 인플루언서 등 유명인사들의 가치 소비도 이같은 미닝아웃 트렌드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인가 먹방(먹는방송) BJ 밴쯔가 대표적인 예다. 밴쯔는 마리몬드가 제작한 티셔츠를 입고 방송을 하거나 마리몬드가 위안부 피해자 고 이순덕 할머니를 기리며 만든 동백꽃 휴대폰 케이스를 사용하는 모습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려 화제가 됐다. 가수 겸 배우인 수지도 마리몬드 휴대폰 케이스와 위안부 소녀상 배지를 착용해 선행에 동참했다.

배우 김혜수와 가수 선미는 페미니즘 슬로건을 담은 티셔츠를 입고 공식석상에 등장하고 SNS에 인증샷을 올려 화제가 됐다.

업계에서는 이미 미닝아웃 소비가 트렌드가 되었다고 여기고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팔을 걷고 나섰다.
해외 명품 브랜드 디올에서는 일찍이 이같은 현상을 먼저 포착해 ‘We should all be feminists(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는 문구가 담긴 티셔츠를 선보였다. 많은 유명인들이 해당 티셔츠를 입어 인증샷을 올렸고 비슷한 가치관을 담은 다른 업체들의 상품들이 잇따라 출시되는데 활력을 불어넣었다.

국내에서는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 배지와 열쇠고리, 천안함 희생 장병 배지 등 역사적 사건을 기리는 추모 상품들이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아울러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돕는 마리몬드 제품, 수익금 일부를 유기 동물을 위해 쓰는 ‘SAVE US'(세이브 어스) 상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작은 힘이 모여 세상 바꾼다’…의견 표출에 당당한 청년들

업계 관계자는 “상품에 어떤 사회적 책임과 의미를 담는지 여부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며 “앞으로도 미닝아웃족을 사로잡고자 사회적 공헌 활동 및 캠페인에 열을 올리는 움직임이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것이 과거에는 무례한 행동이나 두려운 일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지금 세대는 SNS의 발달 등 사회 변화의 영향으로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 이같은 소비 행태에 한 몫했다”며 “자신을 자유롭게 드러냄으로써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심리가 함축되어 있으며 이같은 자신의 소비 활동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지금의 청년 세대는 세월호 참사와 천안함 사건, 탄핵 등 일련의 역사적 순간들을 거쳤고 이 과정에서 촛불 집회 등 시민의 힘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과정을 눈 앞에서 목격했다”며 “이런 작은 움직임이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냅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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