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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분위기 배낭여행] 킬리만자로에 표범은 없지만...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인 킬리만자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나 정상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사진=공태영)


‘킬리만자로(Killimanjaro)’. 누군가는 ‘표범’을 연상하겠지만 사실 킬리만자로에서 표범이 관측된 건 1926년 딱 한 번뿐이다. 표범이 없는 그곳엔 대신 화보집에 나올 법한 풍경, 고도가 변하면 따라 변하는 갖가지 풀과 나무들,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있다. 킬리만자로에 와 있다는 이유만으로 절친한 동료가 되는 사람들도 킬리만자로가 주는 선물이다. 짧게는 5일, 길게는 10일 이상 걸리는 '킬리만자로 트레킹'은 그 안에 다양한 장소와 경험, 희로애락을 담은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다.

고도에 따라 풍경도 바뀌고 산소는 떨어지고

킬리만자로에 오르는 길은 총 일곱 가지 루트(route)가 있는데, 그 중 '마랑구 루트(Marangu Route)'는 전체적인 난이도가 높지 않고 다른 루트와 다르게 텐트가 아닌 오두막 모양의 ‘헛(hut, 산장)’에서 숙박할 수 있어 가장 대중적인 루트로 ‘코카콜라 루트’라고도 불린다. 마랑구 루트의 제일 짧은 4박5일 일정은 첫 3일 동안 해발고도 4700m까지 오른 뒤 넷째 날 자정부터 해발 5895m의 정상으로 올라가서 일출을 보고 다시 출발점으로 내려오는 식이다.

첫 날 트레킹을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 날까지 주변 풍경은 매일 바뀐다. 트레킹 시작점인 ‘마랑구 게이트(Marangu Gate, 해발 1980m)’에서 첫 날 숙소인 ‘만다라 헛(Mandara Huts, 2720m)’까지는 키 큰 나무와 초록풀이 우거져 정글을 방불케 하는 열대우림이다. 그 다음 목적지 ‘호롬보 헛(Horombo Huts, 3720m)’으로 가는 길에는 키 작은 나무들이 서 있고 한국에서 못 보던 다양한 꽃들이 군데군데 피어 있다. 여기부턴 구름보다 높은 곳을 걷게 된다. 고도가 더 높아질수록 키가 점점 작아지던 나무들은 3일차 숙소인 ‘키보 헛(Kibo Huts, 4700m)’을 앞두고는 아예 자취를 감춘다. 대신 눈앞엔 황량한 고원사막이 펼쳐진다. 마지막으로 해발 5000m를 넘어 정상에 가까워지면 주위에 만년설이 깔리고 빙하도 볼 수 있다. 산 하나를 올랐을 뿐인데 여러 지역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트레킹 1일차에는 풀과 나무가 우거진 열대우림을 걸어간다. (사진=공태영)


3일차에 고도 4000m를 넘어가면 식물이 점점 사라진다. (사진=공태영)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생명체를 찾기 힘들다. (사진=공태영)


마랑구 루트는 대체로 완만하다. 정상에 이르기까지도 급격한 경사 없이 한 줄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묵묵히 걸으면 그날그날의 목적지에 도착한다. 하지만 급경사가 없다고 해서 트레킹이 쉬울 것이라 생각하면 착각이다. 실제로 킬리만자로의 정상 등정 성공률은 50% 미만에 불과하다. 이런 낮은 성공률의 원인 중 하나는 고도가 높아질수록 산소가 부족해져서 생기는 ‘고산병(altitude sickness)’이다.

고산병에 걸리고 안 걸리고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해발 4000m를 넘어가는 3일차 일정부터는 확실히 많은 사람들이 두통, 메슥거림, 구토 등의 고산병 증상을 호소한다. 이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천천히 움직이고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다. 때문에 산을 오르는 내내 트레킹 가이드는 ‘천천히’를 의미하는 스와힐리어 “폴레(pole)”를 연발하며 물을 충분히 마시라고 매일 권한다. 또한 같은 루트라도 일정이 더 길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고산에 적응하는 기간을 따로 추가한 것이다. 물론 이런 예방책들이 고산병을 완전히 막아준다는 보장은 없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의지와 상관 없는 고산병으로 힘들어한다.

죽을 고생을 하며 올라간 '우후루 피크'에선 아프리카 대륙을 깨우는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공태영)


킬리만자로의 일출과 은하수, 그리고 사람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키보 헛에서 정상으로 오를 때다. 정상에서 일출을 보려면 산장에서 자정에 출발해야 하는데, 깜깜한 밤, 부족한 산소, 온몸이 얼어붙는 기온에 1000m의 고도를 6시간 동안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고산병까지 더해지면 걸어다니는 시체가 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상을 눈앞에 두고 이 구간에서 포기해서 발걸음을 돌린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딛다 보면 주위가 조금씩 밝아지고 어느새 표지판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우후루 피크(Uhuru peak), 5895m’. ‘우후루(Uhuru)’는 스와힐리어로 ‘자유’를 뜻한다. 이곳 자유의 봉우리에서 더 이상 오를 곳은 없다. 여기가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이다. 때마침 운해를 뚫고 떠오르는 태양은 지난 6시간 군림하던 어둠을 한순간에 내몰고 온 주위를 그 빛으로 물들인다.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이 장면을 만끽하며 사진을 찍기도, 서로의 등정을 축하하기도 한다.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올려다보는 밤하늘의 광경도 킬리만자로 트레킹의 매력 중 하나다. 고도가 낮은 만다라 헛과 고도가 너무 높아 고산병이 심해지는 키보 헛 사이에 있는 호롬보 헛은 별 구경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구름보다 높은 곳이라 밤에 기온이 뚝 떨어지긴 해도 그만큼 하늘에 더 가까워서 별이 선명하게 빛나는데, 때문에 한 번 보면 추위도, 시간도 잊고 서서 별구경만 하게 된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은하수는 가까이에 펼쳐져 있다.

트레킹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걷는 가이드와 포터. 이들 없이는 트레킹도 없다. (사진=공태영)


킬리만자로를 오르다 보면 꽤 많은 사람과 친해진다. 전 일정 동안 바로 옆에서 함께 걷는 가이드는 매일 컨디션을 점검해주고 일정을 알려주며 말동무까지 해주기 때문에 안 친하기가 더 어렵다. 숙소에서 만나는 다른 여행자들과도 꽤 쉽게 친해진다. 국적과 쓰는 말이 달라도 같은 곳을 목표로 같은 고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서로를 가까워지게 한다. 특히 고산병이 심한 사람끼리는 동병상련의 감정이 흘러넘쳐서, 고난의 6시간을 거쳐 정상에 같이 오르기라도 하면 세상이 갈라놓을 수 없는 끈끈한 사이가 된다. 산을 오르고 내리며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과 주고받는 가벼운 인사, 격려의 말도 작지만 귀중한 힘이 된다. 혼자라면 절대 오르지 못했을 킬리만자로를 다양한 이들과 함께 정상까지 오른다. 짧은 순간의 동행이지만 킬리만자로에 있는 순간만큼은 다들 ‘공동체’를 경험한다.

/스냅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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