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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배송 싫어요” 반기 든 소비자

 

(사진=이미지투데이)


당일 배송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신선식품 새벽 배송이 가능해지면서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라스트마일 딜리버리(소비자에게 도달하는 최종 구간을 차지하는 것)'에 뛰어드는 추세다. 쿠팡의 로켓 프레시, 롯데마트의 롯데 프레시, 이마트의 쓱 배송 굿모닝, BGF리테일의 헬로 네이처 등 줄줄이 ‘새벽 배송’에 나서고 있다.

선두를 달리는 마켓컬리는 서울·경기 기준 밤 11시 전에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7시 전에 배송하는 샛별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기에 더해 반려동물용품을 판매하는 펫 프렌즈는 서울 지역 내에서 1시간 이내에 배송하는 ‘펫 프라이더’를 도입했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빠른 배송에 만족감을 표하지만 당일 배송을 도리어 피하는 소비자도 나타나고 있다.

당일 배송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내가 편리할수록 누군가 노동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가영(가명·23) 씨는 쿠팡 로켓 배송을 한번 시켜본 뒤로 "더는 당일 배송을 시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이씨는 어느 겨울 토요일 오후 2시에 과자 여러 박스를 주문했다. 하루만인 다음 날 일요일 오전 11시에 택배가 도착했다. 그는 “집 앞에 놓인 택배를 보고 빠르다는 만족감보다 일요일 오전에 배송하기 위해 새벽부터 나선 노동자가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고 밝혔다.

"24시간 사회는 잠시도 쉬지 않고 무한히 소비하고 일할 수 있다는 관념을 그럴듯한 것으로 만들고, 그 어떤 시간도 자원으로 활용하지 못할 시간은 없다는 판타지를 불러일으킨다." (책 <달빛노동찾기> 中에서)

이씨가 느낀 감정은 이후 야간노동자와 관련된 책 <달빛노동찾기>를 읽으며 구체화됐다. 이씨는 야간 노동이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의 국제암연구소는 2007년 야간노동을 자외선, 배기가스와 동일한 수준의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주요 소비층 2030의 시각은?

온라인 쇼핑몰의 주요 소비층인 2030 세대의 시각은 엇갈렸다. 윤리적인 소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택배기사의 처우'를 주요 동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트위터 상에서 마켓컬리의 새벽 배송 문제점을 지적한 트윗이 4000번가량 리트윗되기도 했다.

(사진=트위터 @dailyamumal)


대학원생 김성은(가명·25) 씨는 "보통 쇼핑몰의 당일 배송은 워낙 흔해 별생각 없이 이용했지만, 새벽 배송을 하는 쇼핑몰은 한 번도 이용해본 적이 없다면서 "은연중에 있던 새벽 배송에 대한 불편함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조금은 다른 시각도 있었다. 회사원 정석민(가명·24) 씨는 “야간 배송 기사의 처우를 개선하는 건 중요한 일이지만, 내가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게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당일 배송이 확대되는 산업의 흐름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노동자를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밝혔다.

‘당일 배송’이 상식이 되는 사회

도서 전문 온라인 업체 알라딘은 주문페이지에서 따로 선택하지 않으면 당일 배송으로 설정된다. 소비자로서는 따로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레 당일 배송을 선호하게 된다. 물량이 점차 많아져 당일 배송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알라딘은 당일 배송을 하지 못하면 ‘금일 배송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다.

메시지가  온 지 한 시간 후인 밤 11시에 책이 도착했다. 당일 배송을 위해 11시까지 일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사진=이데일리)


상품이 당장 필요한 경우에 당일 배송 서비스는 유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까지 당일 배송으로 받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 연구원은 "밤에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도 밤에 하게 되"고 "야간 노동자들이 많아지면서 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또 다른 야간 노동자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최 연구원은 "한국 사회 전체가 7일 내내 가동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유통업계는 소비자를 유인할 수 있는 마케팅 수단으로 당일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당일 배송은 마케팅이 아닌 '노동'이다. 정찬무 공공운수노동조합 조직쟁의국장은 "새벽 배송이나 당일 배송은 없는 수요를 만들어서 공급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배송 시간을 억지로 줄이면서 경쟁하는 운송유통업체를 환영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택배는 오전에 하든, 오후에 하든, 새벽에 하든 단가로 계산하기 때문에 받는 돈은 똑같다"면서 "새벽 배송 노동자의 경우 야간 수당을 받는 게 아니라 노동시간을 한 시간 줄여 수당이 계산되게끔 만든다"고 덧붙였다.

당일 배송이나 새벽 배송에서 노동의 맥락을 삭제하는 광고도 문제다. 한 유명 연예인을 등장시킨 새벽 배송 광고를 보면 노동으로 인한 '힘듦'은 삭제되어 있다. 최민 연구원은 "배달 노동자, 물류창고 노동자들의 현실과 괴리가 있다"면서 "광고에 노동은 없고 편리한 물건과 소비자만 남는다"고 비판했다.

/스냅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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