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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의길]금강산을 두 눈에 담고 오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는 관광객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을 기념하는 ‘DMZ 평화의길’ 프로그램이 4월27일부터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분단 후 약 70년 동안 민간인은 갈 수 없던 비무장지대(DMZ)가 일반 국민에게 개방된다는 소식에 마음이 들떴다.

DMZ 평화의길 고성코스엔 통일전망대에서 해안 철책을 따라 금강통문까지 걸어간 다음 차를 타고 금강산전망대로 가는 A코스(일 정원 40명)와 통일전망대에서 바로 금강산전망대로 차를 타고 이동하는 B코스(일 정원 160명)가 있는데, 이 중 A코스는 경쟁률이 20대 1을 가볍게 넘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신청은 해봤지만 예상대로 추첨에서 떨어진 A코스에 미련을 버리고, ‘그래도 금강산전망대를 언제 또 가볼까’라는 생각으로 지원자 미달의 B코스를 한 번 가봤다.

히치하이킹과 카풀, 차 없이 통일전망대 가는 법 

아침 일찍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강원도 고성의 거진 터미널에 도착했다. 집결지인 통일전망대로 가려고 택시를 잡았는데 통일전망대 가는 요금이 5만원이라길래 순간 귀를 의심했다. 통일전망대 입구인 출입신고소에서 내린다고 끝이 아니고, 출입신고를 한 뒤 통일전망대까지 들어갔다가 나올 때도 같은 차가 다시 태워서 나와야 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해서 5만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서울에서 거진으로 오는 3시간짜리 버스 요금이 2만4200원인데, 차로 20분이면 가는 거리가 왕복으로 5만원인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택시에서 바로 내렸다.

택시에서 내리긴 했지만 딱히 별 다른 방법도 없어서 고민을 하다가 예전에 히치하이킹으로 국내 여행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아무리 시골이어도 통일전망대로 가는 차 하나쯤 못 잡을까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통일전망대 쪽으로 걸으며 차를 잡았다. 지나다니는 차가 많지는 않았지만 20분 정도 걷다가 겨우 차를 한 대 잡았다. 통일전망대 반대방향으로 가려던 분인데 차도 잘 안 다니는 곳에서 차를 잡으려는 모습이 안쓰러워 출입신고소까지 태워주겠다고 하셨다. 프로그램 참여도 못하고 서울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과 5만원을 아꼈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으로 차를 탔다.

출입신고소에 도착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차에서 내린 뒤 출입신고서를 작성하려고 신고소에 들어갔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B코스 집결지가 출입신고소에서 10km 더 들어가야 있는 통일전망대 6.25전쟁체험전시관 앞 주차장인데 차 없이는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신고소 직원이 택시라도 불러보라고 해서 전화를 걸었더니 아까 만났던 기사보다 더 비싼 7만원을 부른다.

그냥 전망대만 보고 오는 게 아니라 코스가 끝날 때까지 1시간 반을 기다려야 하니까 시간이 더 길어서 그렇단다. 더 들을 것도 없이 전화를 끊었는데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여기선 또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는데 DMZ 평화의길 B코스로 간다는 노부부가 신고소에 들어와 출입신고서를 하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정말 안 된다는 생각에 절박한 마음으로 정중하게 사정을 말씀 드렸더니 흔쾌히 차를 태워주겠다고 하셨다. 차가 없으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가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며 차를 얻어 타고 집결지로 이동했다.

지난 27일 문재인 대통령 방문 당시 "평화로 가는 길 이제 시작입니다"라는 현판이 평화의길에 걸렸다. (사진=문체부)


말로만 듣던 금강산, 걸어서 가는 날이 올까

집결지로 가는 길에 검문소에서 신원 확인을 하고 집결지인 통일전망대 6.25전쟁체험전시관에 도착해서 다시 한 번 신원 확인을 했다. 신원 확인을 마친 뒤엔 평화의길 B코스 참가자들 모두가 형광색 조끼를 받아 착용했다. 민간 개방이 시작되긴 했지만 이곳이 여전히 안보적으로 중요한 곳이라서 다소 조심스럽고 약간의 긴장감까지 감도는 느낌을 받았다.

A코스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이곳 통일전망대에서 금강통문까지 해안 철책을 따라 도보로 이동한다고 들었다. 지금까지 일반인에겐 최북단이었던 통일전망대에서 북쪽으로 2.7km를 직접 걸어서, 그것도 금강산을 두 눈에 담으면서 올라갈 수 있는 A코스 참가자들이 내심 부러웠었는데 북쪽이 훤히 보이는 통일전망대에 오니 부러운 마음이 배로 커졌다. 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고 오늘의 목적지인 금강산전망대에선 또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생각을 하니 다시 기대감이 커졌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전망대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DMZ 평화의길 고성 B코스 집결지인 통일전망대 6.25전쟁체험전시관. (사진=문체부)


버스는 삼거리를 거쳐 4km 정도를 달리고 금강산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 금강산이었다. 어릴 때부터 보고 들은 뉴스와 어른들 말씀을 종합하면 금강산은 누가 봐도 ‘금강산이다’라고 생각할 만큼 특별한 산이었다. 특히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있던 정비석의 ‘산정무한’은 언젠가 금강산의 절경을 두 눈으로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망대에서 실제로 보는 금강산은 이웃동네에 있을 법한 바위산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가고 싶어 하는 그 산이 바로 저 평범해 보이는 산이었다. 저 산의 어디가 그렇게 아름답고 어떤 감동을 주는지를 직접 보고 만지고 느껴보고 싶은데 이렇게 멀리서만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금강산전망대에서 보이는 금강산과 감호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금강산 구선봉과 채하봉을 눈으로 훑는데 날이 맑아서 구선봉 아래쪽으로 북한 건물 몇 채가 보였다. 두 눈으로 직접 북한 마을을 보는 게 처음이라서 느낌이 새로웠다. 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외국 사람이 아니고 똑같은 한민족일 텐데, 생긴 것도 비슷하고 서로 말도 통할 텐데 왜 저기로 직접 가서 인사하지 못하고 만날 수 없을까 아쉬움이 들었다. 북한과 맞닿아 있는 곳에 와서야 현재 남한과 북한이 어떤 관계인지를 실감하게 됐다.

금강산의 여러 봉우리와 능선, 선녀와 나무꾼의 배경이라는 감호, 금강산 못지않은 해안 절경 해금강 등 오늘이 아니면 보지 못할 북쪽의 모습을 차곡차곡 두 눈에 담다보니 어느새 버스 타고 돌아갈 시간이 됐다. 기대했던 것만큼 엄청난 것을 보진 못했지만, 오늘 본 금강산 일대의 모습을 더 가까이서 제대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남북한 협력의 첫걸음으로써 DMZ 평화의길이 생긴 것처럼, 남북 관계가 더욱 진전되어 언젠가 금강산까지 도보로 걸어서 가는 날이 오기를, 그때는 구선봉 아래의 그 마을에 찾아가 마을 사람과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참가자 유의 사항에 제일 중요한 차량 이야기는 적혀 있지 않다. (사진=공태영)


개인 차량이 필수, 꼭 알려주세요

평화의길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가장 크게 들었던 생각은 차량 없이는 프로그램 참여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평화의길 코스가 시작되는 통일전망대는 개인 차량이 없으면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생전 처음 통일전망대에로 가본 탓에, 출입신고소에 도착하기 전까진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신고소 앞에서 만난 몇몇 여행객들도 자가용 없이 고속버스를 타고 온 터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행히 인심 좋은 분들을 만났으니 망정이지, 프로그램 마치고 터미널로 돌아갈 때도 히치하이킹에 응해준 분이 아니었으면 1시간30분을 걸어서 터미널로 돌아갈 뻔했다. 개인 차량이 없어 느낀 당혹스러움은 평화의길만큼이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평화의길 접수 사이트나 안내 문자에서 개인 차량이 필요하다는 문구 한 줄만이라도 알려줬다면 어땠을까. 평화의길은 값진 여행임이 틀림없지만 이 미흡한 부분은 다소 아쉽다. 스냅타임과 일부 관광객들이 출입신고소 앞에서 겪었던 당혹감을 다시 겪는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스냅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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