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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배낭여행] 뉴트로 감성 폭발...'바쿠'에도 DDP가 있다?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마치고 나니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카자흐스탄을 여행하는 것, 다른 하나는 ‘카스피해(Caspian Sea)’를 건너서 ‘아제르바이잔(Azerbaijan)’으로 넘어가는 것. 애초에 ‘중앙아시아 여행’을 떠난 것이니 카자흐스탄까지 여행을 하는 게 원 목적에 부합하는 거였다. 하지만 이미 익숙해진 중앙아시아 대신 좀 더 새로운 환경, 예상치 못한 곳으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결국 아무런 준비도 없이 덜컥 아제르바이잔행 티켓을 끊었다.

이름도 생소한 아제르바이잔에서 처음 발을 내디딘 곳은 수도 ‘바쿠(Baku)’였다. 아는 게 없어서 기대도 없었지만 웬걸, 바쿠는 첫 만남부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밤에도 환한 바쿠 시내. 유럽풍 건물들이 늘어선 뒤쪽으로 불꽃 모양의 ‘플레임 타워’가 보인다.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중세 반 현대 반 불맛 많이, 바쿠

바쿠의 첫인상은 ‘요즘것들’이었다. 작지만 세련된 디자인의 최신식 공항부터 시작해서 유럽풍 건물들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는 시내까지. 도착 전까진 이름도 모르는 도시였는데 도착하고 나니 ‘왜 바쿠를 몰랐었지?’로 생각이 바뀌었다.

현대적인 도시 느낌이 물씬 드는 바쿠를 상징하는 건 바로 세 개의 불꽃 모양의 ‘플레임 타워(Flame Tower)’다. 불을 숭배한다고 알려진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조로아스터(Zoroaster)’의 출생지, 그리고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한 ‘불의 나라’ 아제르바이잔을 상징하는 플레임 타워는 도시 어디서든 볼 수 있을 만큼 우뚝 솟아 있다. 또 밤에는 빌딩 전체를 둘러싼 LED 조명이 형형색색으로 바뀌어 살아 있는 불꽃처럼 보인다.

플레임 타워가 바쿠의 현재라면 ‘메이든 타워(Maiden Tower)’가 있는 ‘올드 시티(Old City)’는 바쿠의 과거 그 자체다. 현대적 도시의 심장부에 위치한 올드 시티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채 7~12세기 중세시대에 만들어진 궁전, 모스크(mosque, 이슬람 사원), 탑을 간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메이든 타워는 12세기에 건축된 탑인데, 그 위에서는 성벽 하나를 두고 과거와 현재가 같이 서 있는 바쿠의 기묘한 풍경이 보인다. 역사가 좀 오래됐다 싶은 도시에 항상 붙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이란 수식어는 사실 바쿠를 위한 말이 아닐까.

조로아스터교 세계 3대 성지인 아테시카 사원.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플레임 타워가 보여준 ‘불맛’을 더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아테시카 사원(Ateshgah Temple)’으로 가자. 바쿠의 동쪽 외곽에 있는 사원은 세계 3대 조로아스터교 성지로 꼽히는데 불을 성스럽게 여기는 종교답게 사원 중앙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 천연가스와 석유가 풍부하니 과거부터 불을 접하기 쉬웠을 것이고, 거기서 생긴 불에 대한 경외심이 조로아스터교로 이어진 게 아닐까 추측을 해봤다.

원래 수도원이었던 사원 내부는 박물관으로, 각 방마다 조로아스터교에 대한 설명문과 사진, 모형들이 배치돼 있다. 그 중에서 제일 흥미로웠던 건 ‘배화교(拜火敎, 불을 신격화해서 섬기는 종교)’로도 불리는 조로아스터교가 불을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란(!) 점이었다. 박물관 설명에 따르면 조로아스터교의 유일신은 불의 신이 아닌 빛과 지혜의 신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이며, 불은 그 존재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다. 그럼에도 조로아스터교에서 불을 신성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기독교나 불교, 나아가 힌두교나 이슬람교도 아니고 조로아스터교에 대해서 배우는 경험을 바쿠가 아닌 어디서 해볼 수 있을까?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와 같은 건축가의 작품인 '헤이다르 알리예브 센터'. (사진=이미지투데이)


조금 뜬금없는 얘기지만 바쿠와 서울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같은 건축가가 디자인한 건물이 있다는 것. 아제르바이잔 3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헤이다르 알리예브 센터(Heydar Aliyev Center)’는 물결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곡선형 디자인으로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한다. 이 건물은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디자인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서울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를 디자인했다. 어쩐지 익숙한 감성이다 싶었다면 제대로 봤다. DDP의 외국 버전을 보고 싶다면 헤이다르 알리예브 센터로 가보자. 박물관, 도서관, 공연장 등 내부 시설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그 독특한 외관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곳이다. 다른 나라 사람은 몰라도 한국 사람이라면 반가워서라도 한번 가보지 않을까 싶다.

고부스탄 암각화 공원에는 선명하게 그려진 암각화가 사방에 널려 있다.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2만 년 전 암각화와 진흙 화산을 한 번에, 고부스탄

바쿠를 둘러본 다음엔 약 2만 년 전 암각화들이 있는 ‘고부스탄(Qobustan)’ 암각화 공원으로 갔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곳의 암각화들은 약 5천 년에서 2만 년 전에 그려졌다고 한다. 소나 말, 낙타 등 동물의 모습, 사냥을 하는 모습 등 맨눈으로도 선명히 보이는 그림들이 넓은 사암지대에 흩어져 있어 길을 따라 돌아다니며 찾는 재미가 있다. 또 나무 하나 없이 풀과 돌, 바위벽만으로 이루어진 공원의 풍경도 이색적인 장소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주 요인이다.

암각화 공원 입구에 있는 현대식 박물관도 가볼 만하다. 고부스탄의 역사, 암각화에 대한 소개뿐 아니라 선사시대 생활상 전반을 보기 쉽게 설명해놓은 박물관은 여태 갔던 곳 중 손에 꼽힐 만큼 세련되고 알찼다. 암각화 공원에 올라가기 전에 박물관부터 살펴본다면 공원 구경을 더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용암 대신 진흙이 흘러내리는 고부스탄의 진흙 화산.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고부스탄의 또 다른 볼거리로 진흙 화산(Mud Volcano)이 있다. 전 세계 700여 개의 진흙 화산 중 대부분이 아제르바이잔에 분포하는데 고부스탄에서도 진흙 화산을 만나볼 수 있다. ‘화산’이라고 해서 한라산이나 백두산처럼 큰 화산을 기대하고 간다면 규모와 크기 때문에 실망할 수도 있다. 정확히 그 이유 때문에 첫인상이 조금 실망스럽긴 했지만, 자그마한 화산 분화구에서 진흙이 끊임없이 부글거리는 모습은 볼수록 은근히 중독성이 있었다.

분출된 진흙은 화산을 타고 흘러내려 빠르게 식은 뒤 굳기 시작하는데, 이때 완전히 굳지 않은 진흙을 잘못 밟는다면 발이 깊숙이 빠질 뿐 아니라 굳어 가는 진흙의 점성 때문에 신발을 빼지 못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물론 실제로 겪은 일이다.

/스냅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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