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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 산학협력단 소속 ‘유령 연구원’이었다

대학 연구소에서 교수와 학생 사이에 갑질, 인건비 유용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연구소에 이름만 올려놓으면 10만 원을 나눠준다고 하셨지만, 막상 주신 적은 없었어요. 오히려 졸업하자마자 변변한 벌이도 없이 학자금을 갚게 생겼죠”

경기 시흥시 소재 대학을 졸업한 권수정(가명) 씨는 학교 산학협력단 소속 ‘유령 연구원’이었다. 학부 졸업을 1년 앞두고 전공 교수로부터 “연구소에 직원으로 이름을 올리면 연구원 인건비를 받을 수 있는데, 일부 금액을 나눠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직함은 연구소 직원이지만 출근 및 업무가 전혀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권 씨에게 지급된 금액은 한 푼도 없었다.

교수 계좌로 들어간 인건비

지급된 돈을 처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연구소 이름으로 약 250만 원의 급여가 권 씨의 통장으로 입금됐다. 여기에는 권 씨의 임금 명목으로 ‘연구원 인건비’가 포함돼 있었다. 권 씨는 이 돈을 전공 교수의 개인 계좌로 입금했다. 명목상 ‘연구원’인 권 씨에게 인건비가 정상 지급된 것으로 기록됐지만, 다시 교수에게 돌아간 셈이다.

권 씨의 통장 거래내역. 연구소 임금으로 받은 돈은 물론 인센티브까지 그대로 교수의 개인 계좌로 송금했다. (자료=권수정(가명) 씨 제공)


수 백만 원에 달하는 인센티브도 나왔지만 교수에게 입금하는 방식은 같았다. 교수는 일부를 떼어 주겠다고 했지만, 권 씨는 돈은커녕 연말 정산도 받지 못했다.

권 씨는 졸업하고 나서도 연구소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졸업을 앞둔 권 씨는 담당 교수에게 “바로 취업을 하게 될 것 같아 이름을 그만 올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교수는 졸업 후 권 씨를 퇴사 처리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권 씨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취업을 미루게 되자, 권 씨의 이름은 연구소에 계속 남아있었다. 교수는 "퇴사 처리를 했다”며 “잘 모르는 일”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권 씨가 고용노동부와 지역 세무서에 연락해보니 연구소 직원 신분 그대로였다. 세무서는 여전히 재직 상태였으며 퇴사 처리도 없었다고 전했다.

'기록상' 재직자 상태로 임금을 받다보니 졸업 후에는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의 상환 기일까지 앞당겨졌다. (자료=권수정(가명) 씨 제공)


결국 월급 없는 재직자 권 씨는 고용노동부가 미취업 청년들에게 지급하는 내일배움카드도 신청할 수 없었다. 한국장학재단의 ‘취업 후 상환 학자금’도 7월까지 일정 금액을 상환하라는 안내문이 날아왔다. 학기 중에 용돈이나 벌자고 시작한 일이 취업을 가로막는 악수가 됐다.

드문 일, 비일비재한 일

교수와 대학원생 내지 학부생으로 구성된 대학 연구실의 급여 순환은 오래전부터 논란이 됐다. 지난 2015년에는 대전 모 국립대 교수가 연구실 학생들의 인건비를 횡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권 씨와 마찬가지로 지원기관이 지급한 인건비였지만, 연구실에서 통장을 일괄 관리하면서 학생들은 손에 쥐어보지도 못했다. 200만원이 넘는 급여 중 학생들에게 지급된 것은 30만원에 불과했다.

당시 연구실을 관장하던 교수는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해 지원했다”며 “각종 학회도 데리고 다녔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부족한 인건비만큼 학생들에게 열의를 다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학생들은 해당 교수가 인건비를 횡령했다고 주장했고, 결국 교육부가 감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대학 본부가 학생들을 회유하려던 모습도 포착됐다.

해당 대학 산학협력단 관계자는 스냅타임과의 통화에서 권 씨의 사례를 “처음 듣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산학협력단은 연구소의 교과과정 활성화, 운영 지원, 심의 및 평가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소에서 연구 과제를 수행해 발생한 연구원 인건비는 산학협력단에서 관리하지 않는단 입장이다. 권 씨의 경우 졸업을 앞둔 학과 학생들 사이에 쭉 이어져 내려오던 ‘유령 연구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산학협력단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산학협력단 감사실에서는 "익명을 원하는 학생 처지를 고려해 일정 범위에서 부당금을 조사 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대학원생들도 “연구실에선 충분히 있을법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학원생이 연구 후 받는 인건비를 연구소가 관리하는 것은 이미 관례처럼 자리 잡았다는 얘기다. 대학원생 양재원(가명·25) 씨는 “인건비를 온전히 못 받는 게 다반사”라면서도 “유령 연구원으로 돈을 그대로 보내는 방식은 특이하지만 있을법한 일”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대학원생 김형주(가명·25) 씨도 “유령 연구원은 물론, 연구가 많은 곳에서 인건비를 전부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뜻을 더했다.

대학교육연구소는 “산학협력단이 대학 내 산학 재정지원 사업을 맡아서 하는 경우가 많다”며 “권 씨의 사례도 재정지원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 벌어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구소에서 교수가 연구원 인건비를 속칭 ‘돌려받기’ 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고 덧붙였다. 감사원에서 대학 재정지원 사업 실태를 검증하고 있지만, 부당 실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는 실정이다. 대학교육연구소는 “적발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계속 생기다 보니 감사를 더욱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내부 고발자는 사실상 전공 포기해야

지난 2018년 서울대에서 대학 연구실 인권침해,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H 교수는 앞선 혐의는 물론 횡령과 폭언 갑질 의혹도 받았다. 심지어 지시를 따르지 않는 학생을 따돌렸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당시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 대책위원회 학생들은 고발된 H 교수가 3개월 정직을 받자, 징계 수위에 항의하며 자퇴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스승의 날인 지난달 15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교수 갑질·성폭력에 항의하는 스승의 날 행진 시위'에서 기획단원들이 행진을 마친 후 대학 본관 앞에 설치한 근조화환에 카네이션을 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생물학 연구정보 커뮤니티 BRIC에서도 앞선 대전 모 국립대와 비슷한 시기에 불만이 터져 나왔다. 지난 2014년에는 “현재 랩실(연구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며 “인건비 통장은 다 교수에게 넘어갔고 일부가 학비로 나오고 있다”는 글이 게재됐다. 이어 “회의비라는 명목으로 각종 영수증을 처리하고 있다”며 “신고하고 싶긴 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큰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동조하는 댓글도 달렸다. 한 이용자는 “우리도 회의비로 적발됐는데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거들었다. 다른 이용자는 “평생 짐을 안고 살게 될 것”이라며 “절대 내부 고발자가 되지 말라”는 씁쓸한 충고도 더했다. 내부 고발자가 되려면 먼저 이 분야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앞선 사례의 권 씨는 취업을 다시 준비하며 그동안 수학했던 전공을 바꿨다. 교수와의 ‘갑을 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권 씨는 “만약 전공을 그대로 유지했다면 이렇게 나서기도 어려웠을 것”이라며 “처음엔 학과 친구에게 제의받았던 만큼, 비슷한 사례가 더 있을 것 같다”고 씁쓸한 심정을 밝혔다. 교수와 제자의 관계 속에서 부당한 처우가 꾸준히 늘고 있지만, 대학(원)생들의 인권 보장과 고발 장치는 여전히 미비한 실정이다.

/스냅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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