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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결혼식도 거짓말 하고 안 가"... 경조사 '보이콧'하는 2030

결혼식과 돌잔치, 장례식 등이 몰린 5~7월은 직장인들에게 '경조사의 계절'로 통한다. 그러나 최근 재정적 부담 및 바뀐 사회적 분위기 등 영향으로 경조사 참석을 기피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불청객의 계절'로 바뀌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작년이랑 올해 받은 청첩장만 30장은 족히 됩니다. 솔직히 부담스러워요, 그렇게 결혼한 사람들이 또 좀 지나서 아이 낳고 돌잔치를 연다고 초대장을 보내오겠죠. 그 경조사 다 참석했다면 5만원씩만 내도 1년에 100만원 지출은 훌쩍 넘을걸요."

회사원 김지연(가명·28)씨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쭉 '경조사 보이콧'을 실천 중이다. 돌잔치와 결혼식 등 수없이 많은 청첩장과 초대장을 받아왔지만 가장 친한 초등학교 친구의 결혼식에 한 번 참석한 게 전부다. 얼마 전 직장 내 같은 팀 직속 상사의 결혼식이 열렸으나 적당한 핑계를 대 참석하지 않았고 축의금도 보내지 않았다. 김씨는 "그렇게 시간과 돈을 들여 경조사에 참석하는 게 내 인맥과 앞길에 그다지 큰 이득을 주진 않는 것 같다"며 "자기계발하고 먹고 싶은 걸 먹는데 쓸 돈도 부족한데 왜 형식적인 인사치레로 그 많은 돈을 써야 하나"고 말했다.

결혼식과 돌잔치, 장례식 소식이 몰린 5~7월은 직장인들에게 '경조사의 계절'으로 통한다. 이 '경조사의 계절'은 최근 점점 '불청객의 계절'로 여겨지고 있다. 비혼을 선언하고 주거난·실업·물가상승에 재정 부담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지자 직장인들 사이 경조사 참석을 기피하는 현상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미래보단 현재를 중시하고 개인의 행복에 우선순위를 두고 싶어하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2000년대 출생)들에게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월 6일 벼룩시장구인구직이 직장인 219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경조사비 인식 설문조사 결과. (사진=벼룩시장구인구직)


내 코가 석자...재정 부담이 낳은 경조사 '패싱'

경조사 참석을 부담으로 여기는 풍조로 변화한 건 통계로 확인할 수 있다. 벼룩시장구인구직이 지난 5월 직장인 219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경조사비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잡자의 93.2%(2043명)가 '경조사 참석이 부담스럽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담으로 느끼는 경조사를 참석하지 않고 '그냥 넘긴다'고 응답한 직장인도 449명(22%)이나 됐다.

회사원 박희진(가명·27)씨는 "평생 몇 번 보지 않을 사람들과 인사 한 번 나누려 그 돈을 쓰는 게 이해되지 않아 어릴 적부터 경조사를 싫어했다. 그렇게 남에게 낸 경조사비를 자식을 통해 악착같이 돌려 받으려 결혼, 출산을 종용하는 부모님 세대의 인식도 부질없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남에게 주지 않고 나도 받지 않을 생각으로 대부분의 경조사 참석을 넘긴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윤선호(가명·30)씨도 "친한 가게 손님들이 청첩장, 돌잔치 초대장을 들고 올 때가 정말 난감하다"며 "단골 손님의 호의를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만 당장 가게를 운영할 자금도 부족해 대관 행사로 가게 영업을 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이들이 상대방과 서먹해질 관계를 감수하고도 경조사 참석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정 부담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벼룩시장구인구직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응답자의 월평균 경조사비는 8만 9000원이었고, 30대는 월 11만 6000원, 40대는 월 12만 4000원 등 연령대에 비례해 지출 규모가 늘어나는 형태를 보였다.

특히 지난 2009년 5만원권이 처음 발행된 이래 축의금 하한선이 높아지면서 '경조사비 인플레이션'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5만원권의 82%가 경조사비에서 쓰인 것으로 조사됐고 5만원권 도입 전인 2007년 16만 4800원이었던 가구당 경조사비 지출 비용이 도입 이후인 2009년 18만 5400원으로 급증한 것으로 기록됐다.

지난 16일 네이트판에서 '축의금 때문에 절교함'이란 제목의 고민 게시글이 실시간 인기글에 오르며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을 낳았다. (사진=네이트판 캡쳐)


축의금 갈등에 절교까지...경조사비 월급 공제에 불만도

비혼을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도 한 몫한다. 프리랜서 강지영(가명·32)씨는 "자신은 비혼을 선언했기에 비혼식을 열어 축의금을 받아내지 않는 이상 남들에게 투자한 경조사 비용을 돌려받을 길이 없다"며 "반면 결혼한 친구들은 결혼식 축의금에 좀 지나면 돌잔치 축의금까지 달라며 연락이 온다. 그런 친구들과는 사이가 서먹해져도 좋으니 경조사에 안 가고 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조사 참석 및 비용 문제로 갈등을 겪어 인간관계가 틀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16일 네이트판에는 '축의금 때문에 절교당함'이란 제목의 톡 게시글이 조회수 10만 이상을 기록하면서 누리꾼들 사이 화제가 됐다. 게시글을 쓴 글쓴이는 대학 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결혼식 축의금으로 10만원을 보냈지만 정작 친구는 1년 후 자신이 결혼했을 때 축의금은커녕 축하 메시지 한 통 보내지 않아 2년 넘게 연락을 끊었다고 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결혼, 장례식 등 큰 일 치르며 거른 친구들이 많다", "서로 얼굴 붉히느니 결혼식도, 돌잔치도 없애거나 가족끼리 하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등 반응을 보였다.

회사가 사내 구성원에게 지급하는 경조사비를 동료 직원들의 월급에서 일괄 공제하는 제도에 불만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클리앙에서 한 누리꾼은 "개인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경조사비를 공제한다. 경조사 한 번에 공제되는 금액은 소액이지만 1년 단위로 생각하면 적은 금액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네이트판에서도 "회사가 자기들 이름으로 생색내는 건 상관없는데 왜 그 돈은 오너가 아닌 직원 주머니에서 나가야 하나", "싫어하는 직장 상사의 경조사비까지 내 월급에서 나가야 하는 거냐" 등 비난 댓글이 이어졌다.

(사진=아하 커뮤니티 홈페이지 화면 캡쳐)


경조사비의 '보험' 기능 약화...부담 주는 문화로 퇴색

전문가들은 공동체 의식이 약화하면서 경조사비가 지니고 있던 보험의 성격도 옅어지고 있다는 방증으로 분석한다. 손혜림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조사비 문화는 한 가구가 경조사 준비로 짧은 시간에 큰 지출을 하느라 발생할 수 있는 소득의 위험을 완화해줄 수 있는 보험처럼 작동하고 있었다"며 "최근 결혼 연령이 늦어지거나 수명이 길어지고, 비혼 인구가 늘어나다보니 한 가구가 경조사비를 지출하는 시점과 이를 회수하는 시점에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 때문에 보험처럼 작동하던 경조사비의 역할도 약화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험으로서 긍정적 기능을 제공하던 경조사 문화가 힘을 점점 잃어가니 요즘 세대에게는 특히 전통이란 핑계로 남에게 부담을 주는 안 좋은 문화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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