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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이 보내는 추석은 어떨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 구절만큼 추석을 형용할 수 있는 표현이 있을까. 그만큼 추석은 설날과 더불어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대명절이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척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도란도란 앉아 마음껏 웃고 떠드는 날이다.

하지만 추석에도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중 대표적인게 군인이다. 추석에도 나라를 위해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면 이들의 희생은 항상 소중하다. 그렇다고 해서 군인들이 추석 내내 경계근무만 서는 것은 아니다.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나름대로 명절 분위기를 내고 그들끼리 추석을 즐긴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추석만큼은 못하지만 그 안에서 명절을 즐기는 군인들의 추석을 들여다봤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썼기에 부대별로 다소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철책을 정밀정찰 중인 군인들 (사진=국방일보)


★★★ 군단장님! 사랑합니다!”

자대에 전입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추석을 맞았다. 그런데 추석을 며칠 앞두고 군단장이 위로차 부대에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단장은 봤지만 군단장은 처음이었다. 몸부터 움직여야 했다. 소초 배수로 청소와 외곽청소를 했고 외벽 페인트칠도 열심히 했다. 위병소 앞 낙엽을 쓸다가 누군가 버리고 간 군번줄도 찾았다. 전역자 군번줄 같았다.

그렇게 사흘간 정리를 힘겹게 하고 군단장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소초장이 경례 구호를 새롭게 하자고 제안했다. “군단장님! 환영합니다!”, “군단장님! 반갑습니다!” 여러 가지가 후보로 발탁됐지만 결국 “군단장님! 사랑합니다!”로 결정됐다.

“군단장님! 사랑합니다!” 드디어 군단장이 소초를 방문했다. 군단장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병사 한 명 한 명 악수하며 덕담을 건넨다. 그리고는 명절에도 타성에 젖지 않는 병사들이 자랑스럽다며 엄지를 척 들고 위병소를 나간다. 군단장이 머무른 15분, 잔뜩 긴장했지만 무사히 넘어간 듯해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명절이 되면 한 번씩은 부대 최상급자가 방문한다. 가끔은 사복 차림으로 방문하는 때도 있어 알아채지 못할 때도 있어 집중해야 한다. 실제로 연대장도 사복을 입고 격려차 방문을 했는데 모르고 지나칠 뻔한 적이 있었다.

추석을 맞아 윷놀이를 하고 있는 군인들(사진=국방부 블로그)


'' 나와라, '' 나와라 뚝딱

군단장이 휩쓸고 간 부대는 어느덧 한산해졌다. 본격적으로 휴일을 맞은 병사들은 부대에서 진행하는 윷놀이를 하기 위해 취사장으로 모였다. 그나마 냄새가 덜 나는 A급 판초우의를 바닥에 깔자 부소초장이 어디선가 윷을 가져왔다. 보통 명절날 윷놀이는 포상휴가가 걸린 경우가 많지만 포상휴가는 없었다.

부대원들과 명절 분위기를 내며 윷놀이에 몰입했지만 아쉽게 첫 경기에서 졌다. 그래도 무료할 법한 부대 안에서 윷놀이를 즐기니 심심하지는 않았다. 윷놀이가 끝난 뒤 전화 부스는 추석을 앞두고 부모님과 친척, 여자친구한테 안부 전화를 하기 위한 행렬이 줄을 이었다. 전화를 대신해 사이버지식정보 방에서 SNS로 대화하는 병사들도 많았다. 명절날 근무 때를 제외하고는 휴식 여건을 보장해줘 다들 개인정비 시간을 즐겼다.

운동에 관심 있는 병사들은 간부들과 팀을 짜 족구를 하기도 한다. 대부분 땀을 빼기 싫어 안 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족구에 필요한 인원만큼은 모인다. 공격은 대부분 간부가 도맡는다. 항상 느꼈지만 부사관들의 족구 실력은 놀라울 정도다. 빈 곳을 노려 허점을 찌르는 건 수준급이다. 공을 받기 모호할 정도의 높이로 오는 서브를 받다 보면 공은 매번 몸을 맞고 튕겨 나간다.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부사관은 족구를 못하면 임관을 못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인가 싶기도 했다.

조상은 달라도 큰 절은 한마음으로

해가 지고 추석 당일 아침이 밝았다. 추석 아침에는 소초에서 제사를 지냈다. 제사상이 나름대로 구색을 갖춰서 제사 지내기에 무리는 없었다. 조상은 다르지만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큰절을 올렸다. 제사가 마무리되고 다들 한 입씩 음복한다. 추석에는 송편이 빠지지 않는데 군인들한테도 역시 송편은 최고의 음복 거리다. 아침 식사를 해야 하지만 제사를 지내고 주전부리를 하는 바람에 조식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조금 먹고 시간이 지나 배가 고프면 공불(공화춘 짜장+불닭볶음면)에 빅팜(가공 햄)을 넣어 섞어 먹는다. 근무 철수 뒤 먹는 조합이지만 역시 명절이나 개인정비 때 먹기에도 제격이다. 소초에는 PX가 없어 1주일에 한 번 황금 마차(이동식 매점)가 오는데 추석을 앞둔 전 주에 충분히 사지 않으면 명절날 '공불'은 그림의 떡이다.

점심이 조금 지나서는 종교 활동을 한다. 종교 활동은 강제성이 없어 대부분 참여를 하지 않지만 추석에는 상황이 다르다. 소초 생활 여건상 기독교만 종교 활동을 했지만 당시 군종 장교는 추석을 기념해 점보 피자와 치킨을 사 들고 왔다. 그 순간 만큼은 모두가 신실한 기독교도가 됐다.

피자와 치킨을 먹고 30분쯤 지나면 화장실은 첫 번째 칸부터 네 번째 칸(군대에서는 '1사로부터 4사로'라고 통칭한다) 까지 전부 꽉 차있다. 오랜만에 기름진 음식을 먹으니 배탈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명절이 아니면 부대에서 접하기 힘든 음식이어서 다들 열심히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추석 연휴 한 밤중에도 경계근무는 계속된다. 온종일 휴식을 하면 근무 투입이 더 힘들 수밖에 없다. 명절에 근무를 나가는 게 여간 서러운 일이 아니지만 경계작전을 위해 만발의 준비를 한다.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는 군가의 한 소절처럼 그들이 있기에 올 추석도 마음 편히 단잠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시각에도 근무에 여념이 없을 군인들에게 심심한 격려를 보낸다.

 

/ 스냅타임 민준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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