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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돌고래도 동료에 느껴요"

“제가 돌고래 연구한다고 그러면 친구들이 꼭 돌고래가 저를 알아보냐고 물어봐요.”

돌고래 해양생태연구자인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장수진 연구원이 연단에 서자 한마디로 웃음을 유발했다. 강의가 시작되고 30여 명의 시민들이 스크린에 시선을 집중한다. 지난 26일 오후 7시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과학 강의 현장이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2013년부터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과학 강연을 이어오고 있다.

시민들 누구에게나 열린 이 과학 강연은 2013년 개강과 동시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날도 늦은 저녁시간이었지만 강연을 듣기 위해 수강생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어린 학생부터 주부, 직장인까지 직업과 나이를 초월하고 이뤄지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과학 강연 현장을 스냅타임이 찾아갔다.

시청각실 앞에 과학 강연 내용을 팻말이 먼저 안내하고 있다. (사진 = 민준영 인턴기자)


'돌고래 이야기' 듣기 위해 몰려온 시민들

해가 뉘엿뉘엿 진 6시 55분 쯤 박물관에 도착했다. 6시 폐관인 박물관 문은 이미 굳게 잠겨있었다. 한켠에 불이 켜져 있어 불빛을 따라가 보니 작은 문 하나를 발견했다. 이곳에 들어서자 곧장 과학 강연이 열리는 강연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강연 주제는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는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요?’로 강의 전부터 관심을 끌게 했다. 2009년 제주 바다에서 불법 포획된 후 돌고래쇼에서 혹사당한 제돌이 이야기를 다룬 강의였다. 2013년 시민단체의 지적으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 제돌이를 당시 관찰했던 장수진 연구원이 이날 단상에 올랐다.

장수진 연구원은 고래 개체수 보호가 철저한 캐나다, 미국, 멕시코에 비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보호수단이 극히 부족하다고 입을 열었다. 북미 대륙은 개체수 보호로 2만 마리가 넘는 고래들이 해양을 누리지만, 동아시아는 최대 400마리를 유지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장 연구원은 준비해온 도표를 보이며 동아시아에 살던 고래마저도 보호가 잘되는 북미 해양으로 옮기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때 자리에 앉아 강의를 듣던 청중들은 일제히 “와~”소리를 내며 문제를 같이 공감하기도 했다.

고래에 유독 관심이 많은 것은 역시 학생들이었다. 친구들과 같이 온 초등학생들은 고래 사진이 나올 때 마다 눈을 떼지 못했다. 특히 돌고래가 지능이 높아 복어를 가지고 노는 장난을 한다고 설명한 대목에서는 “이야~ 그게 더 잔인한데!”라며 깊이 몰입하기도 했다. 그럴만도 했다. 돌고래들이 복어 지느러미를 물고, 흔들고, 던져서 기절 시키는 사진을 봤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꾸밈없는 반응에 강연장은 짧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강의 직전 시청각실에 시민들이 앉아 있다. (사진 = 민준영 인턴기자)


자연 방류 뒷 이야기 꺼내자 모두들 "우와"

장 연구원은 제돌이를 비롯해 복순이와 춘삼이, 태산이, 삼팔이를 같이 소개했다. 제돌이와 함께 방류 훈련지에서 보호를 받고 있던 친구들이었다. 그는 삼팔이를 호기심이 많은 아이라고 먼저 얘기를 꺼내더니 잠시 생각에 빠졌다. 삼팔이는 2013년 6월 22일에 방류한 돌고래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방류 훈련중 미세하게 파손된 가둔지 구멍을 유유히 빠져나가 탈출한 아이다. 도망을 간 셈이다. 장 연구원은 “보통 돌고래는 그물이 찢어져도 주둔지를 벗어나지 않는 습성이 있는데, 호기심이 가득한 삼팔이는 역시 남달랐다”며 다시 얘기를 꺼냈다.

삼팔이가 도망가자 다시 잡아와야 한다는 연구원과 방류 후 상황을 지켜보자는 연구원이 첨예한 토론을 했다는 후문도 꺼냈다. 고민끝에 삼팔이는 결국 방류하기로 결정하고 꾸준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장 연구원은 삼팔이의 뜻하지 않은 방류 장면을 이날 강연에서 공개했다. 배를 따라 자연스럽게 자연을 누비는 영상을 보며 좌중은 일동 환호를 지르기도 했다. 그렇게 호기심 소년 삼팔이는 마지막 까지 존재감을 드러내며 사라진 것이다.

기자가 사진 촬영을 위해 움직여 잠시 소란스러웠지만 시민들은 아랑곳 않고 강의에 집중했다. 강연을 혼자 들으러 온 한 학생은 박물관에서 나눠준 다과를 손에 놓지 않으면서도 강의에 푹 빠져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방해가 될까 차마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건너편에 앉은 청년은 강의 장면을 잊고 싶지 않은 듯 동영상 촬영까지 하고 있었다.

강의가 끝나갈 무렵 장수진 연구원은 인상 깊은 영상 하나를 또 보여줬다. 제주 연안에서 죽은 돌고래 사체를 육지로 끌고 오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동료 돌고래가 끌려가는 죽은 동료를 꺼내오기 위해 보트를 따라오고 있었다. 속도를 조금만 늦추면 배를 때리면서 선내를 어지럽힐 정도였다. 무사히 육지까지 사체를 끌고 왔지만 동료 돌고래는 5분간 육지 주변을 뱅뱅 멤돌며 죽은 동료를 애도했다.

고래 사진을 보여주고 있는 장수진 연구원 (사진 = 민준영 인턴기자)


"강의 듣고 싶어 인천에서 왔어요"

장 연구원은 "IMF 경제학자들이 계산하기로는 고래 한 마리가 기후 변화에 있어 나무 수 천 그루 역할을 한다"말했다. 그의 말은 묵직하게 다가왔다. 더 이상의 불법 포경을 막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더 나아가 동아시아 국가도 고래 개체수 증가를 위해 철저한 규제와 보호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끝으로 그는 제돌이의 소식도 전했다. 자연에 방류된 제돌이를 비롯한 5마리 돌고래들은 위성 추적 장치와 동결 표식을 하고 방류를 한다. 연구원들은 이 위치 추적 시스템과 표식으로 방류한 돌고래들을 찾아다닌다. 제돌이를 꾸준히 지켜보고 있는 장수진 연구원은 “제돌이는 지금 다른 개체들과 함께 어울려 잘 적응하고 있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자리에 앉은 시민들은 안도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강연이 끝나자 뜨거운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두 시간 가량의 강의를 마쳤지만 누구하나 지친 기색 없이 강연장을 빠져나갔다. 아쉬운 듯 박물관 로비를 조금 더 둘러보던 가족단위 참석자가 눈에 띄었다. 아들 최호현(13)군, 최용진(9)군과 함께 인천에서 왔다는 조연안 씨 가족이었다. 조연안 씨는 “아들이 평소에 과학에 관심이 많아 이곳에 가끔 참석한다”며 “3월에 있던 전영범 박사 천문학 강의에도 왔다”고 했다.

호현 군은 “천문학 강의를 듣고 나서 천문학자로서의 진로도 관심이 생겼다”고 대답했다. 인천에서 박물관까지는 거리가 멀어 번거롭지는 않았을까. 조연안 씨는 “이 곳 만큼 명사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곳이 드물어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종종 올 것”이라고 했다. 호현 군과 용진 군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이강환 관장은 매주 목요일 진행하는 과학 강연에 애정을 갖고 있었다. 특히 국립도, 시립도 아닌 지자체 예산으로 건립한 구립 박물관이어서 더 애틋한 모양이었다. 그는 "본 박물관 과학 강연은 강연자와 청중에게 명망 높은 강연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강환 관장은 특히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과학은 정답이 아니라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그 지식이 어떻게 얻어지는지 그 과정을 이해하는 것에도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불이 다 꺼진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을 빠져 나왔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 박물관을 빠져나온 시민들 목소리만이 분위기를 밝혔다. 매주 목요일 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의 흔한 풍경이다. 이날도 여전히 박물관 불은 늦은 시간에 꺼졌다.

 

/스냅타임 민준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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