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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탈코르셋부터 영화제작까지 필요했던 것은 용기”

이미해 감독(사진=대학영상연합UVA)


“한 때 화장은 나를 완벽하게 만드는 도구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행위라고 생각했죠. 탈코르셋 운동을 보며 ‘주체적 꾸밈’이 주체적이지 않음을 깨달았어요. 그렇지만 화장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두려웠어요. 이미 내가 가야하는 방향에 대해 깨달았지만 용기가 필요했죠. 그 용기가 쌓이고 쌓인 어느 날 저는 머리카락을 잘랐습니다.”

평범한 대학생의 모습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묵직하고 강인했다. 대학영상연합 UVA에서 탈코르셋을 주제로 제작 중인 다큐멘터리 영화 '머리카락'의 이미해 감독을 만났다. 이 감독은 2018년 대학영상연합 UVA 영화제에서 상영한 단편영화 '초록이 들려올 때면'를 제작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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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록이 들려올 때면> 포스터 (사진=대학영상연합 UVA)[/caption]

선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

이 감독의 첫 작품인 '초록이 들려올 때면'은 고등학생 시절의 풋풋한 사랑이 보이는 따뜻한 영화였다. 반면 제작 중에 있는 '머리카락'은 탈코르셋 운동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선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웃음과 재미 그리고 감동을 주는 예능피디가 되어 그 목표를 이루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능이라는 장르가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복합적 감정을 다루고 메세지를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며 "다양한 장르를 통해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머리카락에 대해 ‘자기반성적 영화’라고 설명했다. 이전 작품인 초록이 들려올 때면에 주인공으로 여자 1명과 남자 2명을 캐스팅한 것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실 영화 속 정민이라는 역할은 원래 성별을 정해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성별은 상관없었지만 그래도 정민의 역할에 여성 배우를 쓰는 게 맞지 않았나 생각했다. 여성 지원자의 수는 남성 지원자의 다섯 배에 달했다. 하지만 세 명의 주연 중 여자는 1명 남자는 2명이었다. 여성이 설 자리를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내가 많이 부족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교사의 꿈을 접고 영상제작의 꿈을 갖기까지

이 감독은 ‘역사의 대중화’라는 큰 포부를 가지고 초등학생 때부터 역사교사를 꿈꿨다. 그래서 숙명여자대학교 역사문화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대학에서 좋고 나쁜 일들을 겪으며 자신이 갇혀있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어떤 일들을 겪었냐는 물음에 그는 담담하게 지하철 역사에서 당한 성추행 사건에 대해 털어 놓았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일상적인 공간에서 성범죄가 일어난다는 것은 여전히 충격이다. 그는 “내가 성추행을 당한 이후로도 다른 여성들이 당한 성범죄 소식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왔다. 이런 사회의 문제를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물론 안 좋은 일만 겪은 것은 아니다. 그는 대학에서 답사부 활동을 하며 찍사(사진 찍는사람) 역할을 맡았다.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어느 시골 동네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기도 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자신이 보고 들으며 즐긴 것을 영상을 통해 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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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머리카락>  스틸컷 (사진=대학영상연합UVA)[/caption]

조선 최초의 단발머리 기생 강향란

머리카락은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여성성에 대해 조명한다. 10대 학생, 대학 교수, 페미니즘 책의 저자, 탈코르셋을 한 대학생, 하지 않은 대학생, 페미니스트 유튜버 등 다양한 사람들이 출연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머리카락이 역사적으로 가지는 의미에 대해 알리는 작품이다.

어떤 역사를 다루냐는 질문에 “1920년대 모던걸에 대한 이야기다. 1922년 기생 강향란은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긴머리를 잘라낸다. 중절모에 양복을 입고 시내를 걸으니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고 수군거렸다”라며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여성은 사회가 정해놓은 여성성을 벗어날 때마다 손가락질 받아야 했다. 모던걸의 역사를 통해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과거 단발머리는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거부하고 조선 민족의 가정과 미래를 어둡게 하는 위험한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주체적 삶을 위한 선택이 매력을 드러내고자 머리를 자르는 신여성의 욕구인 것으로 당시 언론에 보도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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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머리카락> 스틸컷(사진=대학영상연합UVA)[/caption]

이미해라는 사람은

자신만의 소신을 담은 영상을 만드는 이미해 감독. 사실 평범한 대학생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우선 11월 중으로 머리카락의 제작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9월에는 크라우드 펀딩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 감독은 탈코르셋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여성인권 향상이라는 목표 하에 사람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립운동가들 또한 임시정부를 세운 이들,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장투쟁을 한 사람들 등 다양한 노선이 있었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여성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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