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침해소! 청춘뉘우스~

한글을 지킨 조선의 건축가 정세권 선생을 아시나요?

10월 9일은 한글날 573돌
한옥계의 거장 건축왕 정세권 선생
그가 한글과 한옥을 지켜온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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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기 목원대학교 명예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스냅타임)

한국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북촌한옥마을을 만든 이는 누구일까. 바로 한 평생 한옥을 위해 살아온 독립운동가 기농 정세권 선생이다. 정세권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부동산 개발회사 ‘건양사’의 대표이자 독립운동가다.

흥미로운 사실은 건축가인 정세권 선생이 한글을 지키는데 큰 공을 세운 애국지사라는 점이다. 조선의 건축가가 한글을 사랑하기까지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지난 7일 한글날 573돌을 맞아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이왕기 목원대학교 건축학과 명예교수의 ‘한글을 사랑한 건축왕 정세권과 한옥’ 강좌가 개최됐다.

 

‘한글을 사랑한 건축왕 정세권과 한옥’ 강연 포스터(사진=국립한글박물관)

건축왕 그리고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시절 경성에는 이른바 ‘세 명의 왕’이 있었다. 유통왕 박흥식, 광산왕 최창학, 건축왕 정세권. 박흥식과 최창학은 반민족인이었다. 반면 정세권 선생은 반일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였다.

정세권 선생은 1920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주거 단지 개발 회사 ‘건양사’를 설립했다. 그는 북촌 일대에 조선식 근대 한옥을 대량으로 지어 공급하는 일을 했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 민족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조선인의 거주 공간을 지키고자 애썼다. 당시 경성으로 인구가 몰리면서 그가 지은 집들은 불티나게 팔렸고 빠르게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 정세권 선생은 한옥에 대한 뚝심을 지키며 근대식 한옥을 지었다. 이 교수는 “정세권 선생은 도시상황에 맞게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규모의 편리한 조선식 집을 공급했다”며 “지금도 완전히 전통만 고집하기보다 상황에 맞게 바꾸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1923년 정세권 선생은 조선물산장려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조선물산장려운동은 두루마기, 치마, 음식, 생활용품 등에서 조선 산품을 사용하는 등 민족의 경제자립을 위한 운동을 의미한다. 그는 1929년 조선물산장려회 서울 회관을 지어 기증하면서 조선물산장려운동을 도왔다. 특히 그는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제휴하여 창립한 민족운동단체 ‘신간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한 독립운동가였다.

정세권 선생(사진=연합뉴스)

건축가가 한글을 지킨 방법

그는 국어학자 이극로 선생과의 인연으로 애국단체인 조선어학회에 후원을 시작했다. 1929년 조선물산 선전 대강연회에서 이극로선생은 한글 사전인 ‘조선어사전’을 완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우리 민족은 말과 글이 오래전부터 있지만 통일 되지 못하였고 사전이 없으니 나는 이 점을 깊이 느끼어 말과 글을 통일하여 사전 완성을 일생의 사업으로 하겠소”라고 말했다.

이에 감명을 받은 정세권 선생은 건축으로 일궈낸 자신의 부와 재능을 민족운동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는 조선어학회의 활동을 지지하고 후원하기 시작했다. 1935년에는 서울 화동에 조선어학회 회관을 기증했다. 뿐만 아니라 사업에 필요한 일체의 재정적 뒷받침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건축을 통해 모은 재산을 민족운동에 쏟아 부은 것이다. 그의 재정적 뒷받침 덕에 조선어학회는 지속적으로 한글에 대한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조선어학회 지원으로 인해 그는 1942년에는 홍원경찰서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으며 당시 개발을 대비해 선생이 소유하고 있던 뚝섬의 대규모 토지를 일제에 강탈당하기도 했다.

이후 정세권 선생은 1965년 78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그가 세상을 뜰 무렵 그의 손에 남아 있던 것은 작은 쌀되 하나, 우리말큰사전 그리고 생필품 몇 가지 뿐 이었다. 그는 조선 사람을 위해 집을 지었고 그로 인해 번 돈을 민족을 위해 쓰는 사람이었다.

 

이 교수는 “건축계에 이런 역사적 위인이 있음을 소개할 수 있어 뿌듯하다”며 “앞으로도 정세권 선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스냅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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