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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과잠, 학벌주의의 조장인가 소속의 증표인가?

대학생들의 ‘과잠 시즌’이 돌아왔다.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서도 과잠(과 점퍼)과 학잠(학교 점퍼) 공구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대학생의 상징과도 같은 과잠은 단순한 야구잠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한 벌의 옷이 신입생에게는 자랑거리이자 소속감을 주고 고학번에게는 옷 걱정을 덜어주는 필수 아이템과도 같은 존재이다. 이렇듯 정체성의 표현수단이기도 한 과잠을 두고 ‘학벌주의의 상징이 아니냐’는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google)


옷 한 장이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로 작용...

과잠은 최근 10여 년 사이 크게 유행했다. 학과 티셔츠를 행사 때만 입던 과거와는 다르게 현재 대학생들은 과잠을 교복처럼 애용한다. 하지만 학교 밖에서 과잠을 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학교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새긴 옷이다 보니 소속되지 않은 타인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 일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이들은 ‘학교 자랑하려고 입나’라며 수군대기 일쑤. 때문에 한 Y대생은 학교 대나무숲에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추워도 옷을 벗고 들고 다니게 된다”라고 털어놓았다.

이러한 고충이 명문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방의 모 대학에 다니는 김진태(23,가명)씨는 “버스에서 고등학생들이 내 과잠을 가리키며 지잡대라고 비하하는 것을 들었다. 나름 열심히 해서 온 곳이었는데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덧붙여 “학벌주의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명문대가 아니면 과잠 입는 것도 눈치봐야한다는 현실이 슬프다”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반면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대학생들도 있다. 자신이 전국 1%의 수재들만 간다는 SKY를 갔다는 자부심 때문. 즉 본인의 높은 학력을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함이다. 힘든 수험생활을 마친 신입생들에게 과잠은 그간의 노력을 증명해주는 하나의 결과물이나 마찬가지이다. 고생한 만큼 학교에 대한 애교심도 엄청날 터. 학잠과 과잠으로는 모자라 학교 로고와 이름이 박힌 에코백과 필기구, 텀블러 등을 모으는 학생들도 종종 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20대들이 이토록 학벌에 집착하는 이유는?

대학만 나오면 비교적 취직이 쉬웠던 부모님 세대와는 달리 밀레니얼세대는 날 때부터 경쟁사회 속에서 자라났다. 그렇다보니 성취하기 어려운 경쟁 사회에서 갖게 된 명문대학교 타이틀 이야말로 본인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것.

전문가들은 "학창 시절부터 과한 경쟁을 하며 자라온 지금 대학생들은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과시하고 남과 계급을 구분하며 안정을 얻는다"며 "과잠을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얻어낸 상징으로 여겨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좋은 대학에 가야만 성공한 인생이라는 어른들의 말씀, 올해 초 국민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입시 드라마 ‘스카이캐슬’ 등만 보아도 그렇다.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사회에 내딛는 출발선이 되어주는 대학. 주변 환경을 구성하는 부모와 학교 그리고 여러 매체들로부터 세뇌를 당한 아이들이 커가면서 학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길 수밖에 없는 씁쓸한 현실이다.

(사진=google)


같은 학교 아래 다른 출신...“나는 너희랑 달라

학벌 우월의식은 대학교에만 그치지 않는다. 학내 고등학교 동문끼리 과잠에 출신고의 이름을 새기면서 비난이 들끓었다. 같은 학교에 입학했더라도 출신 고등학교에 따라 학벌 계급을 나누는 것이다. 마치 신라 골품제도에서 성골과 진골을 나누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S대학교에 다니는 김태훈(27,가명)씨는 “자기들끼리 자사고 혹은 특목고 나온 것을 과시하려는 것 같다. 물론 소속감의 표시일 수도 있겠지만 일반고 출신의 학생들은 위축되기 마련이다”라고 밝혔다. 다 같이 힘들게 들어간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말하는 ‘특목고 부심’을 부리는 학생들. 이러다 과잠에서 수시 출신 혹은 정시 출신 등의 글자도 적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 섞인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의대나 수의학과와 같이 특수한 과의 과잠도 비슷한 사례에 포함된다. SKY 대학을 갈 수 있을 정도의 높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지방 국립대 의예과에 진학한 학생들은 학교 이름보다도 과 이름을 과잠에 크게 새기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과잠을 통해 ‘자신들만의 세상’을 느끼고, 교내의 타과 학생들은 의예과를 보며 ‘그들만의 세상’을 느낀다. 몇몇 이들은 아예 교내 의예과 학생들을 다른 학교 학생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사진=K대학교 에브리타임)


대학 부설기관 학생들의 과잠 착용에 부정적 시각...

과잠은 최근 대학 부설기관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K대학교 내의 미래교육원생들끼리 학교 과잠을 맞춰 입은 것이 화두. 미래 교육원은 평생교육기관으로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수능을 치지 않고도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자신을 미래교육원 재학생이라고 밝힌 학생은 K대 대나무숲에 “서울에 있지도 않은 제 2캠퍼스는 같은 학교 학생이라고 해주면서 같은 서울 캠퍼스에서 생활하는 부설기관 학생들은 왜 차별하냐”며 “수능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는 옷마저 차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이 글은 2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며 재학생들의 엄청난 공분을 샀다.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들어온 자신들과 다르게 등록금만 내면 입학 가능한 부설 교육원생들이 학교 학생인척 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댓글에는 “K대학교는 이원화 캠퍼스기 때문에 둘은 같은 학교가 맞지만 평생교육원은 부설기관일 뿐. 그렇게 따지면 K대 유치원과 초중고도 다 K대겠네” “스타벅스에서 아르바이트하면 스타벅스 정직원이라고 해도 되느냐. 같은 대우 받으려는 것이 짜증난다” 등 글쓴이를 비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대학의 공식 의류가 아님에도 학생들이 이토록 과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에는 과잠을 통해 소속과 정체성을 표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 이에 K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미래교육원 출범 이후 줄곧 논란이 됐던 사안"이라며 "사태 정리를 위해 미래교육원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가톨릭대학교 동아리 ‘가대야’ 김지선씨 제공)


"우리는 하나" 연대감과 소속감에 편리함까지

물론 과잠에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소속감과 친밀감의 표시라며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도 존재한다. 과 전체가 똑같은 디자인으로 옷을 맞춰 입음으로써 개인에게 ‘우리는 하나’라는 소속감과 연대감을 준다. 이는 동잠(동아리 잠바)에도 해당된다. 학교를 벗어나 동아리 MT를 갈 때도 동잠은 동아리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싼 가격과 편리함 때문에 과잠을 즐겨 입는 학생들도 많다.

대학생 김지윤(20,가명)씨는 “무엇보다도 가성비가 최고다. 겨울용 돕바도 6~7만원대로 대학생들에게 부담이 없다. 게다가 손목 부분의 이니셜과 같이 내 개성이 묻어나는 옷이라 더 애정이 간다” 고 말했다. 대학생 이훈종(24,가명)씨 역시 “평소에 과잠과 돕바를 애용하는 편이다. 보온성은 물론이거니와 아무 때나 입을 수 있어서 정말 편하다. 주변 친구들도 많이 입고 다니기 때문에 옷차림을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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