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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건 전 여친이 당했다는‘가스라이팅’, 나도 당하고 있다?

사람들한테 관심 받고 싶어서 그러냐, 네가 옷을 다 벗고 다니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냐, 진지하게 정신과 상담을 받아봐라, 차라리 히잡을 쓰고 다녀라라고 말하며 저를 정신적으로 괴롭혀왔습니다.

더불어민주당 2호 영입인재 원종건 씨의 전 여자친구라고 밝힌 A씨가 지난 27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의 일부다. A씨는 원씨로부터 성폭행, 가스라이팅 등 데이트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파문이 일자 원 씨는 기자회견을 열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가스라이팅이란 가해자가 의도적으로 상황을 조작해서 피해자가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을 뜻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A씨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가스라이팅'이 사회적 주목을 받고 있다. 가스라이팅이란 가해자가 의도적으로 상황을 조작해서 피해자가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을 뜻한다.

김소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소장은 “상대방이 자신의 입장만 고수하면서 지나치게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면 가스라이팅”이라고 설명했다.

연인, 가족 등 친밀한 관계에서 나타나는 가스라이팅

전문가들은 가스라이팅이 일종의 정서적 학대이며 주로 친구, 연인, 가족 등 친밀한 관계나 직장 등에서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관계는 수평적이기 보다 비대칭적 권력으로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하려 할 때 나타난다.

가족이나 친구 등 친밀한 관계에서 흔히 발생하다보니 법적 처벌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또 관심과 간섭의 경계에 있는 경우도 많아 피해자만 힘든 경우가 대다수인 상황이다.

대학생 한은지(23·가명)씨는 전 남자친구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한씨의 전 남자친구 B씨는 한씨의 외모에 사사건건 관여했다고 한다. 한씨는 “B씨가 자신은 긴 머리가 좋으니 자르지 말아라. 치마가 너무 짧지 않냐는 등의 간섭이 심했다”고 말했다.

한씨는 외모에 대해 강요하지 말라고 했지만 오히려 B씨는 한씨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계속해서 보였다고 한다. 한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간섭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며 “결국 내 자존감만 바닥을 친 연애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너는 ‘착한’ 딸이잖아 △엄마 마음 다 이해하지? △엄마 말 들어.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등의 말을 지속적으로 주입하는 것도 가스라이팅에 속할 수 있다.

직장인 박원영(28·가명)씨는 어머니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한다. 박씨는 “일을 시작한 이후로 집안 사정이 어렵다며 금전적 지원을 자주 요청했다”며 “어머니가 오빠에게 집안사정이 힘들다고 하면 오빠는 화를 내고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에 비해 나는 ‘착하니까’ 편하게 말할 수 있어서 좋다더라”고 말했다.

박 씨는 “효녀, 착한 딸 등의 프레임에 갇혀 나도 모른 채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로 이어졌다”며 “‘착한 딸’이기에 힘들어도 부모님을 돕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고 내 생각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가스라이팅을 겪는 이들도 있다. 공기업에서 근무 중인 김준형(28)씨는 상사에게 감정이나 능력에 대한 무시를 종종 받아왔다. 김씨는 부당한 대우에 반발해보기도 했지만 상사는 오히려 “왜 이렇게 예민하냐”며 “나 아니면 너한테 이렇게 지적해줄 사람도 없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정서적 학대 처벌할 법안 없어...인식 제고 필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의 김보화 책임연구원은 "가스라이팅은 2차 가해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며 "가해자는 피해 책임을 피해자에게 묻고 가해를 정당화한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데이트폭력이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관심과 사랑이고 어디까지가 폭력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스라이팅 등의 정서적 폭력이나 물리적 폭력을 가한 뒤로 애인에게 사과의 의미로 꽃을 선물하는 등의 행동이 반복되는 경우가 있다"며 "이는 데이트폭력 피해의 장기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가스라이팅과 같은 정서적 학대의 경우 법적 규제나 처벌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규제 마련에 앞서 데이트폭력이나 가스라이팅 등에 대해 사회·문화적 인식 개선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김 연구원은 '의사소통 교육'과 '젠더 감수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해외에는 성과 관련한 의사소통 교육이나 연구 프로그램이 많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성폭력이란 무엇인지', '성희롱은 무엇인지' 등 단편적 교육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갈등 관계를 해결하는 방법이나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이해하고 사과하는 문화 등에 대한 구체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스냅타임 김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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