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세대를 위한 뉴스

snaptime logo

방과후강사 두 번 울리는 일선학교의 이상한 설문조사

일선 초등학교에서 2학기 방과후학교 운영여부 결정을 위해 실시한 설문조사가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다. 설문조사 과정에서 학교측이 방과후학교 운영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주장이 나와서다.

울산시에 있는 A초등학교는 지난 15일 2020학년 2학기 방과후학교 운영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540여명의 학부모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토요방과후학교 운영과 관련한 질문이 도마에 올랐다.

토요방과후학교 운영여부에 대한 의견을 묻는 과정에서 1번 보기는 ‘주중 방과후학교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예방 및 대응이 힘든 토요방과후학교는 학생의 건강권을 고려하여 운영하지 않음’, 2번 보기는 ‘2020학년도 방과후학교 개강 시기와 맞춰 운영’이다.

이에 대해 방과후학교 강사(방과후강사)들은 설문내용의 객관성이 결여됐을뿐만 아니라 해당 조사 결과를 근거로 학교측이 2학기 방과후학교 운영을 중단키로 결정했다고 방과후강사들은 반발했다.

특히 올해 상반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사실상 수입이 없었던 방과후강사들에게는 혹독한 하반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방과후학교 운영중단 위한 설문 아니냐"

이는 비단 울산지역 초등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부산 B초등학교도 ‘원격수업 중인 학생들의 방과후수업 참여에 따른 안전 관리 우려’, ‘비말 확산이나 신체 접촉이 우려되는 프로그램 운영 방법 문제’, ‘많은 어려움과 자녀의 안전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설문에 응답해달라’는 문구를 설명으로 포함했다.

이에 방과후강사들은 객관적 중립성이 결여된 설문조사임을 지적했다. 설문내용이 학생과 학부모들의 실수요를 반영하지 못한 왜곡된 결과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같은 지역에서 방과후학교를 안전하게 정상 운영하고 있는 학교들이 많다는 것이다.

부산지역 초등학교에서 15년째 독서논술을 가르쳐온 이모(45)씨는 “우연히 가정통신문에 실린 설문지를 봤는데 방과후학교 운영을 중단하려는 설문조사라고 느껴졌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매번 방과후강사와 관련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당사자들은 소외되고 있어 내가 학교에서는 필요없는 유령 같은 존재 같았다”며 참담한 심정을 전했다. 이어 “방과후학교 계획이 정해지면 수업준비가 필요해 다른 일자리도 구하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현재 단기 일자리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너무 힘들다"고 푸념했다.

 

아울러 방과후학교 운영계획을 미리 고지하지 않는 점도 방과후강사들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학교 측으로부터 운영 시기를 늦춘다는 내용을 문자 메시지를 통해 갑작스럽게 통보받거나 각 가정에 배포된 가정통신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집단 반발에 나섰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C초등학교는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방과후학교 운영 중단 결정을 내린 뒤 일방 통보했다.

이에 일방적 통보를 받은 방과후강사들은 교육부 운영지침도 어기면서 방과후학교 운영을 중단하려는 것은 관리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방과후학교에서 10년째 영어수업을 가르쳐온 주모(40대)씨는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쳐오면서 뒤처지는 아이들까지도 세심하게 챙기고 싶어 교사의 마음으로 방과후학교 수업을 시작했다”며 “학교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대책을 마련하려는 노력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운영을 중단한다는 문자를 받고 나니 자괴감이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부산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방과후학교 운영 시기를 결정하기 위해 시행한 설문조사 (사진=독자 제공)


부산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방과후학교 운영 시기를 결정하기 위해 시행한 설문조사 (사진=독자 제공)


교육부 운영지침 어긴 일방 통보

차영란 수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설문조사는 조사 주체가 자신에게 유리한 설문 문항을 구성해 특정 답안으로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설문지 만들 때는 혼자 하지 않고 2~3명이서 같이 한다”며 “공정성과 중립성이 지켜져야만 한쪽으로 치우친 엉뚱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초등학교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있는 상황에서 해당 문구를 넣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며 “코로나가 심각해도 학부모들이 방과후수업을 원하면 언제든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반박했다.

B초등학교 관계자는 “우리 학교는 학생 수만 1400명이 넘는 부산에서 몇 안 되는 과밀학급”이라며 “학생 건강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고, 학교 사정을 잘 모르는 학부모들을 위해 판단의 근거 자료를 넣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해서 해당 문구를 넣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부 초등학교의 이같은 결정은 교육부의 방과후학교 운영지침을 따르지 않아 더 문제가 된다.

교육부가 각  시·도교육청과 함께 만든 방과후학교 운영지침에 따르면 '방과후학교 운영은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반영하고 강사와 협의하여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결정된다'고 명시했다.

C초등학교 관계자는 “1학기 당시에 학부모와 상의해 학교장 재량으로 방과후학교 운영 시기를 결정하라는 공문을 받았다”며 “강사와 협의하라는 지침은 없었지만 방과후강사님들 입장은 고려한다”고 해명했다.

경기도교육청은 “학생, 학부모 요구와 수요를 반영해 학생들의 안전이 확보된 상황에서 학생운영위원회 심의 등 방과 후 운영 절차를 준수해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라는 공문을 보냈다”며 “2학기 개학을 앞두고 교육과정과 관련한 내용의 공문을 다시 보낼 계획을 하고 있다. 그때 설문조사도 오해 없이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추진하라는 내용을 명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방과후학교 운영 중단 결정과 관련한 일방적 통보 메시지 (사진=독자 제공)


6개월째 수입 ‘0’...생계 대책 마련 시급

방과후강사들은 코로나19사태로 사실상 6개월째 수입이 없다.  2학기까지 방과후학교 운영을 중단한다면 방과후강사를 포기하고 대체 일자리를 서둘러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양경숙(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받은 ‘코로나19가 고용보험 사각지대 대면 여성 일자리에 미친 영향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방과후강사의 월 수입은 2만7000원에 불과하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월 223만9000원)과 비교하면 98.8%나 감소한 것.

이에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방과후강사노동조합은 방과후수업을 정상 운영하고 있는 전라도와 제주도를 제외한 26개 지역에서 2학기 방과후학교 운영을 촉구할 예정이다.

김경희 민주노총 방과후강사노동조합 위원장은 “방과후학교는 주로 저학년이 대상"이라며 "설문조사는 전체를 대상으로 시행해 실수요자들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6개월째 수입이 끊긴 방과후강사들을 위해 교육부 차원에서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냅타임 고정삼 기자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