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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형부터 코리안 힙 국악까지, 1030 뒤흔든 K장르

 Q.다음은 1030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글 내용 중 일부다. 빈칸에 들어갈 말을 차례로 쓰시오.

1.“아이돌 덕질도 안 해봤는데 ○○○ 가수에 빠졌다...수능 끝나고 봐요."

2.“○○ 아이돌 생겼으면 좋겠다. 의상은 매번 다른 한복...도포도 좋고

3.“○○○ 중독성 미쳤냐. 나도 모르게 자꾸 !○○○소리가 나옴

: 트로트/국악/테스형

1030세대가 기성세대들에게 더욱 친숙한 트로트와 국악 장르에 푹 빠졌다. 올 한 해 대한민국을 강타한 트로트 열풍부터 가황의 귀환이라 불리는 나훈아, 코리안 ‘힙’이라 불리는 이날치밴드의 국악까지.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장르가 1030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추석 연휴 9월 30일. 포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테스형’돌풍이 불었다.(사진=이데일리(왼), 커뮤니티캡처(오))


"아이돌 공연 보는 것 같다"... 2030의 밈이 된 테스형 나훈아

지난 추석 연휴 첫날인 9월 30일, 포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테스형’돌풍이 불었다.

KBS에서 방영한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가수 나훈아의 16년 만의 지상파 방송 출연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부모님 때문에 나훈아 콘서트 보고 있다’는 푸념 섞인 글로 시작했지만 방송이 이어질수록 ‘나훈아 나이’, ‘나훈아 사내’, ‘테스형!’ 등이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올랐다. SNS는 이내 2030 네티즌들이 만든 나훈아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으로 도배됐다.

흔히 떠올리던 데뷔 54년된 트로트 가수의 콘서트가 아니었다. 젊은이들은 70대의 나이에도 건재한 나훈아의 가창력과 퍼포먼스, 무대를 꾸미는 젊은 감각에 감탄했다. 나훈아는 흰색 민소매 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올라 탄탄한 체격을 자랑했다. 체크무늬 셔츠에 통기타를 걸친 모습부터 중후한 한복까지. 폭발적인 가창력과 화려한 무대 매너로 꽉 채워 2시간 30분동안 진행된 나훈아 콘서트는 그의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이세정(25·남)씨는 “나훈아 콘서트를 보면서 ‘가황’이라는 생각이 든 이유가 저 연차에도 무대가 올드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것 같다”고 전했다.  ‘사내’를 부른 후 물에 뛰어드는 퍼포먼스, 일명 ‘코로나 화형식’으로 불리는 그래픽 등 나훈아가 직접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무대 연출들은 아이돌 콘서트와 견줘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생동감이 넘쳤다. 나훈아의 공연은 공연 직후 밈으로 제작돼 화제가 됐다.

이후 네티즌들은 ‘[속보] 하와이 해안가에서 성지발견’이라며 ‘나후나(Nahuna)’섬 지도를 올리고, ‘나훈아 무대는 100점이 아닌 95점이다. 오점이 없으니까’라는 밈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1020세대가 주 이용자층인 커뮤니티에는 ‘내가 살다 살다 70대 할아버지 짤을 팬아저(팬 아닌데 저장의 줄임말)할 줄은 몰랐다’, ‘나훈아 콘서트 티켓팅 성공해서 부모님 보내드리려 했는데 내가 가야겠다’ 등의 글을 줄을 이었다.

일명 ‘어록’이라 불리는 멘트도 여럿 나와 밈으로 제작됐다. 특히 나훈아가 선보인 신곡 ‘테스형!’무대에 열광하며 ‘테스형, 내일은 왜 출근인가요’라며 테스형을 부르짖었다.

밈 열풍은 곧 음원사이트에도 반영됐다. 음원사이트 지니뮤직에 따르면 추석 연휴가 포함된 지난주 ‘테스형!’스트리밍은 직전 주보다 무려 3733%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훈아의 전체 곡 스트리밍도 직전 주 대비 264.9% 증가했다.

허재훈(25·남)씨는 “부모님 세대의 스타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번 언택트 콘서트를 통해 그가 왜 부모님 세대에게 사랑받는 가수였는지 알게 됐다”며 “나훈아의 ‘무시로’는 ‘킹시로’라고 불러야한다”고 말했다.

TV조선 예능 미스트롯, 미스터트롯과 MBC 놀면 뭐하니의 ‘유산슬’ 등 트로트의 발랄한 변신이 1030세대가 보고 듣는 장르로 자리 잡게 했다. (사진=커뮤니티 게시글 캡쳐)


젊어진 트로트, 10대까지 팬층 확장

올 한해는 트로트의 재발견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TV조선의 예능프로그램인 '미스트롯', '미스터트롯'과 MBC의 놀면 뭐하니의 ‘유산슬’ 등 트로트의 발랄한 변신이 1030세대가 보고 듣는 장르로 자리 잡게 했다. 젊은 트로트 가수들의 등장과 예능에 녹아든 트로트가 1030을 트로트에 빠지게 했다.

이희진(19·여)양은 “트로트 예능에 젊은 가수들이 많이 나와 보게 됐다”며 “젊은 가수들이 나와 거부감이 덜했다. 어느 순간 단순한 멜로디와 구성진 노랫말 때문에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5월 결혼 정보회사 듀오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30 응답자 10명 중 7명(68.0%)이 10년 전과 비교해 트로트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는 'TV 예능 프로그램'(33.6%), '젊은 트로트 가수들의 데뷔'(20.2%) 이 압도적이었다.

고등학생 수험생이 모인 포털 커뮤니티 게시판에도 ‘고3인데 이찬원 보는 낙으로 살고 있다’며 ‘수능 끝나고 본격적으로 덕질을 하겠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젊은 트로트 가수들의 팬층은 아이돌 못지않다.

전모(25·여)씨 역시 “어리고 예쁜 사람들이 트로트를 부르니 볼 맛이 난다”며 “트로트의 아이돌화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전씨의 말처럼 요즘 트로트 무대는 정적인 무대보다 아이돌 뺨치는 군무와 퍼포먼스, 빠른 템포로 구성돼있다.  가령 임영웅의 ‘이제 나만 믿어요’는 발라드와 트로트가 만난 곡으로 트로트에 대한 거부감 없이 쉽게 들을 수 있다.

고등학생 김민희(18·여)양은 “예전에는 댄스나 발라드 위주로 들었는데 트로트 방송을 보다 보니 노래들이 요즘 발라드랑 꽤 비슷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김 양은 “또 (트롯이) 요즘 노래보다 사람들의 일상이나 감정들이 잘 느껴지는 것 같아서 흥미가 생겨 찾아 듣게 됐다”며 “부모님, 친구들과 트롯 얘기를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마찬가지로 댄스, 힙합 등 1030이 즐겨듣는 장르와 트로트가 만나면서 트로트 열풍은 계속되고 있다.

신 씨는 “이날치 밴드를 접하고 난 뒤 다른 국악 크로스오버 무대들도 찾아 보게 됐다”며 유튜브에서 국악 무대를 찾아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다양한 국악 크로스오버는 한국의 정서를 살린 K-크로스오버라는 평과 함께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왼쪽부터) 한국관광공사 유튜브 캡쳐, JTBC 유튜브 캡처)


해진 국악에 2030이 들썩

트렌디해진 국악도 인기를 끌고 있다.

올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실시한 2020 6월 수능 모의평가 고전소설 파트에는 영화 ‘전우치’ 시나리오 일부가 지문으로 등장했다. 해당 지문 장면은 도사 전우치가 궁궐에 등장해 궁중악사들에게 음악 연주를 시키며 춤판을 벌이는 장면이다. 영화 개봉 당시 해당 장면에서 삽입된 힙합 리듬이 가미된 국악이 화제가 됐는데, 6월 모의평가 출제를 계기로 3년전 올라온 영상에 댓글이 달리며 유튜브에서 역주행 하고 있다.

해당 영상에는 ‘6모 문학 풀다가 머릿속에서 쿵짝쿵짝 자동재생돼서 비문학 먼저 풀었다’, ‘평가원이 유튜브도 연계했나. 그런데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등 음악에 중독성을 호소하는 학생들의 댓글이 달렸다.

해당 음악은 전통적인 국악 장르와 달리 빠른 리듬과 힙합에서 사용하는 추임새가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또 다른 국악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가 무려 2억 6000만회를 달성했다.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한 우리나라 홍보영상이다.

해당 영상에 출연하는 판소리 밴드 ‘이날치’는 한복 대신 ‘힙’한 스트릿룩으로 무대에 오른다. 소리꾼과 고수가 아닌 소리꾼과 베이스기타, 드럼으로 구성됐다. 얼핏 들으면 힙합같기도, 디스코같기도 한 이 노래에 2030이 빠져들었다.

신형상(30·남)씨는 “익숙하지만 진부하고 재미없다고 느껴지던 국악이 이렇게 힙하게 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신 씨는 “이날치 밴드를 접하고 난 뒤 다른 국악 크로스오버 무대들도 찾아 보게 됐다”며 유튜브에서 국악 무대를 찾아본다고 말했다.

이들 무대는 모두 전통적인 국악에 머무르지 않고 변주를 가미하거나 다른 장르와 결합해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템포나 리듬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 ‘좌우나졸’ 등의 공연 영상에는 ‘힙합 랩의 원조는 조선의 판소리다’, ‘조선의 힙이 바로 이것’이라며 국악에 흠뻑 빠진 네티즌들의 댓글이 줄을 잇는다.

차분한 느낌의 정적인 국악 무대에서 벗어나 소리꾼이 부채대신 마이크를 잡고 무대를 자유롭게 활보한다. 절로 리듬을 타게 되는 빠른 비트는 국악이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부신다.

JTBC 팬텀싱어에 출연한 보컬그룹 라비던스가 부른 성악과 판소리의 크로스오버곡인 ‘흥타령’과 소리꾼 이봉근이 부른 가요 방탄소년단의 ‘봄날’과 판소리 ‘심청가’크로스오버 역시 한국의 정서를 살린 K-크로스오버의 대표곡이라는 평과 함께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김치호 한양대 교수(문화콘텐츠학과장)는 소위 트로트 국악 등 K장르가 2030에게 인기를 끄는 요인에 대해 “딱 한가지로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TV, SNS, 인터넷 등 매체의 다양화로 콘텐츠가 공유되는 범주가 넓어진 것도 한 부분을 차지하고, 이를 공유하는 2030만의 코드도 결합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30이 소비하는 레트로 장르는 중장년층의 레트로와 공통점도 있지만 분명히 다르다”며 “이들이 보고 듣고 소비하는 콘텐츠에는 분명 이들 세대만이 공감하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 스냅타임 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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