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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낭비 지적 받는 '경기버스라운지'... 뒷광고 논란까지

지난 15일 오후 6시40분께. 경기도로 이동하려는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다.(왼쪽), 같은 시각 경기버스라운지에는 1명의 손님이 방문해 있는 모습(오른쪽). (사진=고정삼 기자)


서울 지하철 사당역 4번 출구 앞에 조성된 ‘경기버스라운지’. 이곳은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는 도민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경기도가 9억원의 예산을 들여 사당역 인근에 조성한 공간이다.

유지비도 연간 최대 3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지 않은 예산을 책정했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한 이탈리아 여성의 브이로그(Video+Blog) 영상이 경기도가 제작을 의뢰한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나오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정류장 앞엔 200명가량 줄서는데...라운지엔 5명 미만

경기버스라운지는 지난 10월 5일 운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초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는 도민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조성 취지와는 반대로 실제 이용객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당역 버스정류장은 저녁 퇴근 시간대에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인파행렬이 200m에 이를 정도로 붐빈다. 그나마 이 줄을 서면서 기다리지 않으면 버스를 타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사당역 인근에 설치한 버스라운지를 이용할 필요성을 느끼는 도민은 사실상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실제 기자가 현장을 찾은 지난 16일 오후 7시20분께 사당역 4번 출구 앞에는 7770번(수원역-사당역)과 7780번(수원여자대학교입구-사당역)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만 약 207명에 달했다. 버스가 도착해 45명씩을 태우고 이동해도 새로 유입되는 시민들로 대기 행렬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반면 같은 시각의 버스라운지 4층에는 단 한 명만이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어 퇴근한 직장인들로 붐비는 바깥 모습과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해당 라운지가 서울에서 경기도로 넘어가는 약 21개의 버스를 담당하고 있음에도 운영 시작 시각인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40분께까지 전체 이용자는 출입명부 기준 약 24명에 불과했다. 라운지 직원은 평균 오후 4시~7시대에 30%의 이용률을 보인다고 답했지만, 전체 몇 명 중의 30%인지는 밝힐 수 없다고 했다.

7780번 버스를 이용하는 서모(58·남)씨는 “라운지가 있는 건 알고 있지만 이용해본 적은 없다”며 “줄을 서고 있어야 앉아서 갈 수 있는데 (라운지를) 이용하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라운지가) 1층에 있었어도 똑같이 이용하기 어렵다”며 “비싼 임대료를 내가면서 만들어 놓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방배동에 위치한 직장에서 퇴근해 778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김모(31·남)씨도 “라운지가 있는걸 몰라서 이용 안 하는 게 아니다”라며 “라운지에서 배차 간격을 보고 내려와도 어차피 줄을 서야 버스를 탈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들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진=(유튜브 채널 '어썸 코리아'에 게시된 '한국에서 버스 기다리는 이탈리아 여자에게 일어난 충격적인 상황' 영상 캡처)


'뒷광고' 의혹에 휩싸인 이태리 여성의 버스라운지 방문 영상

이러한 상황에서 라운지의 실효성을 홍보하는 이탈리아 여성의 유튜브 브이로그 영상에 대한 논란도 발생했다.

유튜브 채널 ‘어썸 코리아’에 게시된 해당 영상은 오후 2시40분에 사당역에 도착한 이탈리아 여성 한태리씨가 버스 도착 예정 시각이 오후 4시라는 것을 확인하고, 빈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우연히 발견한 경기버스라운지를 이용하는 내용이다.

그는 영상에서 “(이런 장소를) 이전부터 알았다면 여기 와서 대기해 버스를 탔을 것”이란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8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태리씨를 감동시킨 경기버스라운지’라는 글을 게시하며 해당 영상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 지사는 "한국에 사는 이태리 여자 한태리씨가 경기버스라운지를 찾았다"며 "버스를 기다리며 1시간 넘게 추운 바깥에서 보낼 뻔했는데 마침 경기도가 마련한 휴식 공간을 발견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시민들과 온라인상에서는 사당역에서 오후 2시40분에 1시간20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없다는 의문을 시작으로 경기도가 의뢰해 제작한 ‘뒷광고’ 영상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었다.

해당 버스 정류장에는 일반적으로 퇴근 시간대에 유동인구가 집중될 뿐만 아니라 배차 간격도 10~15분으로 편성돼 있기 때문이다. 출퇴근으로 7770번 버스를 이용하는 이모(32·남)씨는 “사당역 버스 정류장은 출퇴근 시간대에만 사람이 많지, 오후 3시쯤에 줄을 서야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해당 영상을 본 일부 시청자들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저기서 기다리면 버스를 못 타는데 영상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영상이 순수하지 못한 것 같다’, ‘이거 광고 영상이죠?’, ‘정작 버스 기다리는 시민들은 이용하지 않는데, 이탈리아 여성이 좋아하면 뭐 하나’ 등의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해당 영상의 논란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유튜브 채널 ‘어썸 코리아’와 동영상 크리에이터 한태리씨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을 하지 않는 상태다.

앞서 경기도가 해당 라운지를 홍보하는 영상에서 이용객의 인터뷰가 논란이 됐던 점도 ‘뒷광고’ 의구심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경기도 홍보 영상에서 라운지 이용 소감을 밝히는 남성 인터뷰이가 사실 경기도 자원봉사센터 9기 홍보 기자단 출신이었을뿐만 아니라 여성 인터뷰이는 자신의 SNS에 ‘(인터뷰) 기회를 준 경기도청에 감사하다’는 글을 남기면서다.

경기도는 외국인 유튜버가 소개한 경기버스라운지 영상은 경기도가 광고를 의뢰해 제작한 것이 아닌 자발적으로 촬영한 것이라고 입장을 전했다.

인터뷰이 논란과 관련해서도 경기도 관계자는 “자원봉사센터 홍보 기자가 자발적으로 찾아와 취재하는 과정에서 다른 기자가 모르고 (이분을) 인터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전세버스 대절 등 증차가 더 효율적"

시민들은 유동인구가 집중적으로 몰리는 출퇴근 시간대에 전세버스 대절 등을 통한 증차로 배차 간격을 줄이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역삼동에 있는 직장에서 수원으로 퇴근하는 송모(29·여)씨는 9번 출구에 조성된 7800번(호매실동차고지-사당역) 버스를 타야 해서 4번 출구 앞에 조성된 버스라운지를 이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고 답했다. 9번 출구에서 4번 출구까지는 약 320m가량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송씨는 “퇴근 시간대에 사당에서 수원으로 내려가는 버스는 줄을 서야만 갈 수 있는데, 라운지를 이용하면 줄을 설 수가 없다”며 “차라리 전세버스를 빌려서 배차를 늘리는 방향이 훨씬 이용객들한테는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사당역 앞 도로는 넓힐 수 있는 만큼 넓힌 상황이다. 그렇다고 버스를 증차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시민들의 피로도를 덜어주기 위해 쉼터 공간을 조성해주는 것은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로 (경기버스라운지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개인 운송업자하고 공동 운수협정을 맺어서 전세버스를 증차하는 방안도 재정부담을 경기도가 전부 맡는 것이기 때문에 증차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중교통을 1시간 정도 이용하는 사람은 응급 상황들이 있다. 생리적인 현상, 갑작스럽게 아프다거나 혹은 임산부나 노인층들이 있을 수 있다”며 “시간이 급한 게 아니라 중간에 쉴 장소가 필요할 때 안식 공간으로 이용하도록 만든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스냅타임 고정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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