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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구현? 마녀사냥? ‘사적 신상털이’ 논란 반복

'OO동 택시기사 무차별 폭행한 20, XX년생 XXX (서울 OOOO동 거주)', 'XX년생 택시기사 폭행한 XXX 신상ㅋㅋ', 'OO OO동 택시기사 가해자 신상 [폭행남] XXX'

누리꾼들이 특정 인물의 신상 정보를 캐내 이를 온라인 상에 공개하는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특히 강력 범죄 등 반사회적 사건을 두고 '단죄가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개인정보로를 무차별적으로 공개하는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신상털이’가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된다. 주변인에 대한 2·3차 피해를 낳고 가짜뉴스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적 신상공개 게시글 예시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범죄자·피의자 아니더라도 이목 끌면 신상털이

지난 9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2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인물에 대한 신상이 공개됐다. 60대 택시기사를 무차별 폭행하는 영상으로 공분을 샀다는 이유에서다.

누리꾼들은 해당 남성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화면을 갈무리해 프로필 사진·이름·직업·연락처 정보를 일부 노출했다. 게시글엔 “통쾌하다”, “정말 저 사람이 맞느냐”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이처럼 신상털이는 주로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특정인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이를 두고 ‘알 권리’라는 공익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과 개인의 명예 훼손이라는 입장이 충돌해 왔다.

신상 공개만을 위한 전용 인터넷 사이트도 등장했다.

지난해 성범죄자 등의 신상을 올려 옹호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던 ‘디지털교도소’와 양육비를 고의로 지급하지 않는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한 ‘배드파더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범죄자가 아니더라도 언론·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경우 신상털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최근 ‘한강 실종 대학생’ 손모(22)씨와 함께 술을 마셨다고 알려진 친구 A씨 또한 참고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정황상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상세한 신상 정보가 공유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성범죄 피의자 등의 신상 정보 및 선고 결과 등을 무단 게시한 혐의로 영상실질심사에 출석하는 '디지털교도소' 1기 운영자 A씨. (사진=뉴시스)


 

전문가 사적제재 정당화될 수 없다”...단순 신상 공개론 처벌 불가능

법조계는 이같은 신상 공개 및 비난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창윤 변호사(법률사무소 덕명)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적제재(국가 또는 공공의 권력이나 법률에 의하지 않고 개인이나 사적 단체가 범죄자에게 벌을 주는 일)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복수나 정의감에 따른 행동이라도 범죄에 해당한다면 정당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상털이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의 적용을 받는다.

정보통신망법 제70조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적시한 내용이 거짓일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조세희 변호사(법률사무소 밝은빛)는 “인터넷으로 사실이나 거짓의 사실을 게시하고 그 내용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것이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신상 정보를 노출하더라도 비난·모욕을 담고 있지 않다면 처벌 대상이 아니다.

조 변호사는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내용일 때 성립하는 범죄이므로 단순한 이름·전화번호 적시 등은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어 “다만 이름이나 전화번호와 같은 개인정보를 취득하는 과정의 불법 여부는 별개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사법 체계 불신·영웅심리가 원인 돼 작용

누리꾼이 나서 범죄자·피의자의 신상 정보를 적극 공개하는 것은 사법체계 불신으로 비롯한 잘못된 정의감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반인륜적 범죄 내용에 비해 처벌 수위가 약하다고 느껴 일종의 ‘영웅심리’가 작동한다는 해석이다.

조영일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법 체계에 대해 (가해자가) 충분한 처벌을 받지 못한다는 불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중이) ‘집단 지성을 통해 또 하나의 의사 결정권자가 되어 처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이버 범죄의 기본적인 특성이 영웅심리에서 발동한다는 것”이라며 “‘그냥 지나치면 안 되겠다’는 정의감 때문에 온라인상에 정보를 유포한다”고 전했다.

 

온라인 정보 맹신해 엉뚱한 피해자 낳기도

신상털이의 부작용으로는 가짜뉴스 확산과 추가 피해자 양산을 꼽을 수 있다.

온라인에 게재된 정보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데도 사실인 것처럼 유포하거나 특정인의 가족·친구 등 지인의 신상정보까지 공개하는 식이다. 비슷한 신상을 가진 인물을 오인해 제3의 피해자를 낳기도 한다.

조 교수는 “(잘못된 집단 지성의 결과) 확증 편향이라는 문제가 나타난다”며 “집단이 믿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그 믿음과) 다른 것들은 전부 버려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연구위원은 “오히려 제2·3의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며 "전파 가능성이 무한한 온라인 특성상 (신상털이라는) 그릇된 문화가 확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적 제재에 해당하는 신상털이가 법치주의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상털이를 두고 “국가가 형벌권을 독점하는 이유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형벌을 (국가가 아닌) 많은 개인들의 다양한 방식과 기준으로 실현하게 되면 법치가 아닌 야만의 상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형벌의 목적은 응보(應報)도 있지만 현대 사회로 올수록 예방과 재사회화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냅타임 윤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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