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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1인 가구도 일대일 맞춤 정책 필요해"

안소연(25·여)씨는 2016년 집을 떠나 서울 관악구에서 홀로 자취를 시작했지만 이듬해 주거침입을 의심할 만한 일을 겪었다. 분명 잠그고 나간 문이 열려 있던 것. 더러워진 채 널브러진 옷가지와 피우지 않는 담뱃갑도 눈에 들어왔다. 안씨는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막막함 때문에 더 두려웠다”고 말했다.

서울시 1인가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청년 1인가구가 위급상황 시 대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혼자 살아온 기간이 비교적 짧고 대다수 고향을 떠나왔기 때문에 거주 지역 사회와 연결고리가 약한 까닭으로 풀이된다.

이를 두고 현행 서울시 1인가구 정책이 청년층을 세밀하게 포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위급상황에 실효성이 있는 안전·범죄예방 대책을 강화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청년 1인가구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1인가구를 종합 지원하는 전담부서를 설치해 증가하는 1인 가구와 관련한 입체적인 대책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청년 1인 가구는 혼자 생활하면서 가장 곤란한 점으로 '위급상황 대처 어려움'을 꼽았다. (사진=2020 서울시 복지실태조사 보고서)


 

서울 1인가구 중 청년 41.2%로 최다...위급 시 대처 어려움 호소

서울시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2020년 서울시 복지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 1인가구는 전체 가구의 33.3%로 가구형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1인 가구 중에서도 청년(만 19~34세) 1인가구가 41.2%로 가장 많았다.

청년 1인가구는 혼자 생활하며 가장 곤란한 점으로 ‘위급상황 대처 어려움’(42.2%)을 꼽았다. 이는 같은 질문에 중장년가구가 1순위로 ‘외로움’(33.1%), 노인가구가 ‘경제적 불안감’(34.3%)을 선택한 것과 대비된다. 청년 1인 가구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위급한 상황에 취약함을 더 많이 느끼고 있는 것.

복지실태조사를 수행한 김승연 서울연구원 도시사회연구실장은 “대다수 청년 1인가구는 부모와 함께 살다가 독립하는 경우”라며 “혼자 삶을 가꾸는 경험 자체가 처음이기 때문에 위급상황이 닥쳤을 때 대처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안전·건강 위협받을 때 대처 어려워...지원책 있으나 사각지대 발생

청년 1인가구가 겪는 가장 큰 위급상황은 안전과 건강에 대한 위협이다. 이들은 1인가구 지원책으로 주거지원(57.3%)에 이어 안전정책(18.8%)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 살고 있는 김도형(26·남)씨는 지난해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당혹감을 느꼈다. 각막염이 생겨 잠에서 깬 뒤 눈을 뜰 수 없던 김씨는 “앞을 거의 볼 수 없어 한참 더듬은 후에야 겨우 휴대폰을 찾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허예슬(26·여)씨는 과거 동대문구에 살던 시절 방문판매원을 가장해 밤늦은 시간 문을 두드리는 신원미상자 때문에 사비를 들여 출입구에 방범 장치를 설치했다.

서울시가 여성 1인가구의 불안감 해소와 범죄예방을 위해 방범창, 창문잠금장치 설치 등을 지원하는 ‘SS존(Safe Singels Zone)’ 사업을 11개 자치구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당시 허씨가 거주하던 동대문구는 사업 해당 지역이 아니었다.

허씨는 “대학가 원룸촌엔 으슥하고 CC(폐쇄회로)TV가 없는 골목이 아직도 많다”며 “안전한 귀갓길을 만드는 게 우선이지만, 지자체가 나서 방범 장치나 호신용품 등 개인 안전을 위한 물품 구입비를 지원해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씨는 “일대일 돌봄을 제공하는 장애인활동지원사의 경우처럼 위급상황에 한정해 청년층을 일대일로 지원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시는 갑작스러운 일시적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돌봄 SOS 사업’을 전 자치구에서 운영 중이지만, 정보 상담을 제외한 건강 지원·단기 시설 이용 등 7개 서비스는 만 50세 이상의 성인(모든 연령의 장애인 포함)만을 대상으로 한다.

 

전문가 청년들 특성 고려한 맞춤 정책 펼쳐야

이에 대해 전문가는 현행 청년 1인가구 정책의 미비점을 지적하며 사후 대책이 아닌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등 기술 발전이 도움이 될 거라는 조언도 건넸다.

복지·청년정책을 연구하는 변금선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 청년 1인가구 지원책이 청년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변 연구위원은 "기존 청년 1인가구 지원책은 ‘청년 반상회’ 등 청년들의 사회적 고립을 막기 위한 네트워크 형성에 초점을 뒀다"면서 "하지만 생활 양식이나 성향 등에서 청년들은 굉장히 개인화된 특성을 보이기 때문에 (이같은 정책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청년 1인가구는 어려움이 있을 때 직접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선택적인 기회를 원하고 있다"며 "청년 그룹이나 네트워크를 정책 차원에서 일부러 만들어 주는 건 지나치게 공급자 중심의 생각이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1인가구 중 청년층을 대상으로 초점을 맞춘 정책이 거의 없고 그나마 월세 지원이 대표적"이라며 "주거비 부담이 크니까 우선적으로 월세 지원 정책이 나왔는데,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소득이 단절됐을 때 청년 1인가구를 도울 수 있는 긴급 지원책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 연구위원은 “위급상황에 처한 청년들을 제때 찾아내 지원하기 위해서는 청년 1인가구가 어디에 많이 살고, 어떤 경로로 서울에 이주해 살고 있는지 등 기본 정보부터 파악해야 예방적 조치가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혼자잘살기연구소’를 운영하는 이중식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는 “기술·정보 시스템이 (청년 1인가구의) 관계와 자원을 매개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오프라인 모임보다 온라인 소통에 더 익숙한 청년층의 특성을 활용하자는 것.

실제 혼자잘살기연구소는 지난해 관악구의 한 ‘코리빙 하우스(Co-living House·독립된 개인 공간과 공용 공간이 함께 존재하는 주거형태)’ 각 방에 ‘스마트 스피커’를 설치했다.

이 교수는 “인공지능 스피커를 사용해 일종의 게시판을 만든 것”이라며 “1인 가구원 사이 주변 동네 시설에 대한 정보 공유 등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사진=이데일리)


 

서울시 1인가구 위한 종합지원 전담조직 설치

한편 서울시는 지난달 19일부터 ‘1인가구 특별대책추진단TF’를 가동하고 증가한 1인가구 수요 대응에 나섰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1호 공약’을 실천한 것.

오 시장은 선거운동 당시 1인가구가 겪는 △안전 △질병 △빈곤 △외로움 △주거 등 5대 고충을 해소하기 위한 전담기구를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시는 1인가구 수요조사를 통해 5대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수요자 맞춤형 정책을 개발해 순차적으로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조직 개편과 함께 출범 예정인 ‘1인가구 특별대책추진단’은 TF보다 규모를 키워 2개 반(과장급) 6개 팀, 총 32명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오 시장은 지난달 22일 취임사에서 “1인 가구의 세대별 특징을 분석하여 2030 청년층, 50대 이상 중장년층, 여성 1인 가구에 맞는 맞춤형 대책도 함께 준비하여 실행할 계획”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추진단 출범에 대해 “주택·복지·안전 등 각 사업 분야별로 흩어져 추진해 온 1인가구 지원책을 총괄적으로 마련하려는 목적”이라며 “(1인가구가) 연령별로 필요로 하는 내용이 조금씩 다르므로 기존 사업을 정비하고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스냅타임 윤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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