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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동떨어진 ‘심리서비스법’ 추진에 준비생들 ‘황당’

“4년 내내 상담학을 공부했어요. 그런데 심리학을 전공해야만 상담사가 될 수 있다니 황당합니다.”

박모(28·여)씨는 상담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안고 대학에서 상담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최근 입법을 추진 중인 심리서비스법 소식을 듣고 당황했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법안이 통과되면 돈과 시간을 들여 대학에 다녔음에도 꿈을 이룰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억울하다"고 했다.

또 다른 상담학과 졸업생 김모(25·여)씨도 상담사를 꿈꿔 여러 대학에 개설된 심리상담학과·상담학과에 입학해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김 모씨는 "갑자기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으면 상담사를 못한다는 규정은 당장 우리의 생계를 끊는다는 말로 들린다"며 "의사처럼 국가 차원에서 양성 체계를 도입한다는 것도 아니고 심리상담 등의 심리서비스 제공자를 단순히 '심리학 전공자'로만 국한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리학 전공자만 심리사 될 수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불안·우울이 확산되며 정신건강 서비스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6일 발표한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울 평균점수는 5.7점(27점 기준)으로 2018년 지역사회 건강조사 당시 결과(2.3점)보다 2배 이상 높아졌다.

심리상담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작년 3월에는 1.02점이었으나 이번 실태조사에서는 1.46점으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심리상담 등 심리서비스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법제화를 통해 질 좋은 심리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심리학회는 보건복지부가 발주한 '심리서비스 입법 연구'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4월 ‘심리서비스 법률 1안’을 발표했다. 해당 법률안은 심리상담 등의 심리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을 ‘심리사’로 규정했다. 심리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이들은 국가시험에 응시해 심리사 면허를 취득하도록 했다.

또 심리사 면허 없이 심리상담을 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토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심리사가 아닌 이들은 심리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제한해 전문성을 보장하겠다는 것.

그런데 이를 두고 상담사 준비생들의 수심이 깊어지고 있다.

심리서비스 법률 1안 제 7조에 따르면 심리사 국가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선 심리학 학사·석사학위를 취득하거나 심리학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해 실무수련을 이수해야 한다. 혹은 보건복지부의 인정기준을 만족하는 해외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해 졸업하고 해외 심리사 면허를 소지해야 한다.

대학·대학원에서 상담 등 심리학이 아닌 다른 분야를 전공하고 상담사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법안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법안에 따르면 심리상담 등 심리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심리사 면허를 따야 하는데 심리학 전공자만이 심리사 국가시험에 응시할 수 있어 불합리하다는 목소리다.

심리상담 관련 학회 및 전문가는 심리상담이 심리학 지식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심리학 전공 여부가 전문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는 심리서비스법이 "심리상담이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해 의사·변호사처럼 전문성 보장을 위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겠다는 취지"라면서도 ‘심리학 전공’이 그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심리학과 상담은 별개"...상담엔 학문적 다양성 필요

(사진=이미지투데이)


상담사 준비생들은 심리학에 대한 지식을 갖추는 것과 심리상담을 진행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상담학을 전공하면서 인간 심리 전반에 대해 배우는 심리학과는 차이가 크다고 느꼈다.

그는 “심리학 전공자에 비해 인간 심리 전반에 대한 폭넓은 지식은 부족할 수 있다"면서도 "상담 과정에서 중요한 내담자의 고민을 이끄는 ‘질문 기법’ 같은 분야는 자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심리상담과 관련한 법을 마련하는 것은 환영이라면서도 “심리서비스법은 심리상담에서 중요한 요소인 학문적 다양성을 보장하지 못한 법안”이라며 "상담이라는 분야는 심리뿐 아니라 교육학·아동복지학 등 다양한 학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상담학을 전공한 하모(25·여)씨도 상담이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다루는 영역인 만큼 상담사들의 전문성 보장과 법제화 필요성에는 공감한다고 했다. 그러나 심리서비스법은 상담사가 되기 위해서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생들과 현직에 있는 상담사들을 존중하지 못하는 법이라고 했다.

 

학회·전문가, '심리학 전공=심리상담 전문성'은 아냐

학회와 전문가는 심리서비스법이 다양한 전문영역으로 발달해온 심리상담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법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상담학회 관계자는 “상담학·교육학·아동학·사회복지학 등 비심리학 전공 영역에서도 상담 관련 대학원 수준의 필수 과목을 이수하고 훈련받은 상담사들이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수임 단국대 상담학과 교수는 심리상담사의 주요 역할은 내담자에 대한 평가와 개입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심리학 안에는 상담심리나 임상심리같이 상담에서 중요한 평가와 개입을 수련하는 분야도 있다"면서도 "이와 상관없는 기초심리 분야도 많다. 평가와 개입을 체계적으로 수련한 상담 관련 전공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질 좋은 상담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인간 전반에 대한 이해와 변화를 위한 지식을 갖추고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기존에 상담학·교육학·아동복지학 등의 학과와 관련 학회에서 이를 체계적으로 수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업선택의 자유 제한으로 볼 수도 있어"

심리서비스법안이 확정되지 않은 법률안이라고 하더라도 자칫 직업선택의 자유(헌법 15조)를 제한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최희수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심리상담이라는 분야가 매우 광범위하고 포괄적인데 심리학과를 졸업해야만 한다는 자격 요건을 요구하는 것은 위헌의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도"(심리사가) 의사나 변호사처럼 전문성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 국가시험 응시 자격에 ‘심리학 전공’이라는 제한을 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심리학 전공 유무가 의대나 로스쿨처럼 전문성을 담보할 만큼 교과과정의 내용과 질이 통제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장 교수는 이어 “의과대학의 경우 전문성 보장을 위해 교과과정과 실습 시간을 법으로 규정한다”며 "심리학 전공자에게만 심리사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면 교과과정을 제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한국심리학회가 추진하는 심리서비스법은 복지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스냅타임 권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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