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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대라고 글씨 못 쓴다? 인스타그램 봐 주세요”

“‘내일들 룬비하는 대탄민국든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딪지 닪민늡니다’라고 읽힌다.”, “디지털 세대, 컴퓨터 세대들의 글씨체는 원래 다 이런가. 그렇다면 죄송하다.”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의원)

지난 14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다소 삐뚤빼뚤한 필체가 화제가 됐다. 한 전직 국회의원이 ‘디지털 세대’를 언급하며 조롱 섞인 반응을 보이자 ‘꼰대 논란’이 일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고사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는  ‘젊은 손글씨도 살아 있다’고 받아친다. 손글씨 쓰기와 그 감성은 특정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

이들에게 ‘디지털 세대라서 손글씨를 잘 쓰지 못한다’는 비판은 성급한 일반화다. 전자 기기를 자주 활용하면서도 여전히 손글씨의 매력을 느끼고 꾸준히 연습하는 또래들이 있어서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4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참배한 뒤 남긴 방명록. (사진=연합뉴스)


 

10~20세대 손글씨, 일상 사용보다는 취미·문화로 자리매김

10·20세대에게 손글씨 쓰기는 일종의 취미이자 주변과 공유할 수 있는 문화가 됐다. 일상에서는 손글씨를 사용하는 빈도가 줄었지만 대신 시간을 들여 자기 개발을 위해 펜을 드는 모습이다.

여기엔 직접 쓴 글씨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인증’하는 작업이 더해진다.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답게 온라인 공간을 활용해 ‘손글씨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공부 계획을 공유하는 ‘공스타그램’이 한 예시다. 매일의 진도와 세부 목표, 다짐 등을 반듯한 손글씨로 적은 후 촬영해 게시글로 올리는 것. 동기부여를 목적으로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유행해 왔다.

‘윤슬’이라는 계정명의 공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배모(15·여)씨는 “메모·일기 애플리케이션으로 (공부 계획을) 기록하는 게 더 편리하지만 손글씨가 주는 따뜻함이 좋아 공스타그램을 시작했다”며 “직접 반듯하게 글씨를 썼을 때 만족스러움과 뿌듯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문학 작품의 글귀나 노래 가사를 따라 쓰는 필사와 캘리그래피(calligraphy·손글씨를 이용한 시각 예술)도 꾸준히 인기다. ‘1일 1필사’ 등 자기관리와 습관 만들기에 관심을 두는 MZ세대의 특성이 반영된 챌린지도 있다.

다양한 펜으로 직접 손글씨를 쓰는 영상을 올리는 ‘글씨 유튜버’도 등장했다. 손글씨 쓰는 법을 알려주거나 문구 제품을 리뷰하기도 한다. 각각 33만·1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크리에이터 ‘NAIN나인’과 ‘ASMR펜크래프트’는 모두 1990년대생이다.

 

손글씨를 사용한 '공스타그램' 게시글. (사진=인스타그램 @luna._peach 제공)


 

개성있는 손글씨에 정감 느끼는 건 젊은층도 다르지 않아

손글씨 쓰기를 즐기는 젊은 세대는 ‘타이핑’으로는 느낄 수 없는 특유의 감성과 향수를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연습을 거듭하며 나아지는 글씨에 성취감을 얻는다고도 덧붙였다.

배씨는 “손글씨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사람마다 특색이 다르다는 것”이라며 “어릴 적 일기를 보고 간단한 소감을 적어주던 선생님의 글씨나, 반 친구들에게 받았던 롤링페이퍼에 적힌 글씨를 보면 자연스레 당시의 추억이 떠오른다”고 설명했다.

글씨 교정을 목적으로 5년 전 캘리그래피를 시작한 주서희(19·여)씨는 “연필·볼펜을 비롯해 붓펜과 딥펜(dip pen·잉크를 찍어 사용하는 펜) 등 다양한 펜을 사용하며 서로 다른 필기감에 흥미를 느꼈다”며 “가지런한 모습으로 발전하는 글씨체를 보며 성취감을 얻는다”고 전했다.

6년 전부터 취미로 캘리그래피를 하고 있는 강민서(18·여)씨도 “글자 하나마다 필자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전달할 수 있다는 게 디지털 화면의 글씨와 다른 손글씨 고유의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사진=강민서 씨 제공)


 

디지털에 길든 세대? “SNS·태블릿PC가 오히려 손글씨에 도움

이들은 ‘이준석 방명록’으로 촉발된 ‘디지털 세대 글씨 논란’에 대해 일반화를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주씨는 “시대를 막론하고 글씨를 바로 쓰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며 “‘디지털 세대는 손글씨를 잘 쓰지 못한다'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씨 또한 “예전에 비해 (젊은 세대가) 손글씨를 덜 사용하기 때문에 글씨체가 바르지 못할 수 있다”면서도 “손글씨의 진정한 가치는 글씨체보다 글의 내용과 필자의 진심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이들은 ‘디지털 세대’이기 때문에 손글씨 쓰기를 더욱 잘 즐길 수 있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SNS에 결과물을 공유하며 동기부여를 받거나 태블릿PC로 손글씨를 연습하고 있어서다.

주씨는 “온라인에서 캘리그래피를 접한 후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금까지 꾸준히 해올 수 있었다”며 “SNS 게시물을 보고 ‘나도 글씨체를 바꿔볼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기며 오히려 디지털 매체가 손글씨 쓰기를 장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을 이용해 손글씨를 쓰고 있는 박상혁(25·남)씨는 “설정을 변경해 여러 종류의 펜을 가진 것처럼 활용할 수 있고 결과물 수정과 보관이 편리하다”며 장점을 설명했다. 박씨는 “다양한 배경화면을 다운받아 그 위에 손글씨를 쓰며 더욱 재미를 느끼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주서희 씨 제공)


 

디지털 대세라도 손글씨 중요...올바른 필법 익히고 연습해야

일각에선 “젊은 세대가 손글씨를 잘 쓰지 못한다는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며 올바른 필법(筆法)을 익혀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사단법인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검정위원인 여운부 펜글씨닷컴 원장은 “디지털 세대가 손글씨를 잘 쓰지 못하는 것은 현실이며 어느 정도 타당한 견해”라며 “상업적인 캘리그래피를 익힌다고 해서 일상에서 사용하는 펜글씨를 잘 쓰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여 원장은 “글씨도 제대로 쓰는 방법, 즉 필법이 있다”며 “악기나 운동처럼 올바른 방법을 배우고 연습하면 (젊은 세대도) 손글씨를 잘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특히 사법·행정고시 등 (내용 전달이 핵심인) 논술 시험을 치러야 하는 경우 손글씨 학습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혁시 대한글씨검정교육회 이사장도 “바른 글씨는 학습과 교양 쌓기의 기초가 된다”며 “정교한 손놀림이 뇌 발달을 촉진하기 때문”이라고 손글씨 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냅타임 윤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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