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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 기준 없는 ‘벽간소음’...행정 공백이 이웃 간 갈등 키운다

[이데일리 장시온 인턴기자] 최근 옆집에서 들려오는 각종 생활소음에 시달리는 ‘벽간소음’ 관련 분쟁이 늘고 있는 가운데 대화 소리 등 사람의 육성은 법적으로 벽간소음으로 분류되지 않고 있어 관련 문제가 행정적 공백 상태에 놓인 것으로 확인됐다. 세대 간 경계벽은 바닥재와는 달리 시공 시 데시벨 기준 소음 규정이 없어 부실시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법적 기준이 모호한 만큼 관련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벽간소음 피해를 겪은 정 모씨(24)가 거주하고 있는 건물. 세대 간 거리가 1m도 채 되지 않아 소음 관련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장시온 인턴기자)


 

 “옆집 통화 내용까지 들리는데...” 환경부 "‘말소리’는 벽간소음 아니다"

서울 금천구에 거주하는 최 모씨(24)는 옆집에서 들려오는 생활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최 씨는 “옆집 사람이 어떤 영상을 보는지, 어떤 내용의 통화를 하는지 전부 다 들린다. 한 세대에서 세탁기를 돌리면 위아래 층 모든 세대가 알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 씨는 현행법 상 벽간소음 피해자가 아니다. 사람이 내는 소리(대화 소리, 통화 소리, 싸우는 소리 등)는 법적으로 벽간소음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토부와 환경부 공통부령인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층간소음(벽간소음 포함)은 뛰거나 걷는 동작 등으로 발생하는 ‘직접충격 소음’과 텔레비전, 음향기기 등의 사용으로 발생하는 ‘공기전달 소음’으로 나뉜다. 이 공기전달 소음에 사람의 육성이 포함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사람의 육성은 행위자의 노력으로 경감이 가능한 소음이기 때문에 벽간소음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대화소리 등은 사생활의 영역이기 때문에 분쟁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 방음재를 설치하거나 서로 원만한 합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층간소음 전문기관은 경찰에 신고하라

사람 육성으로 인한 벽간소음 문제는 층간소음 전문기관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통상 층간소음 문제가 발생하면 건물관리인을 통해 협의하거나 한국환경공단 산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등의 상담기관을 통해 분쟁을 해결한다. 그러나 뛰는 소리 등이 대부분인 층간소음과 달리 벽간소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람 육성이 법적으로 벽간소음이 아니기 때문에 이 경우 센터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실제로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사람 육성으로 인한 벽간소음 분쟁 조정이 가능한지 문의해보니 “법적으로 규정된 소음만 다룬다”면서 “사람 육성으로 인한 벽간소음 민원이 들어오면 관할경찰서에 인근소란죄로 신고하라고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국가소음정보시스템)


경범죄 처벌법 제3조에 따르면 ‘악기, 라디오, 텔레비전, 전축, 종, 확성기, 전동기 등의 소리를 지나치게 크게 내거나 큰소리로 떠들거나 노래를 불러 이웃을 시끄럽게 한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고의성 입증이 쉽지 않아 처벌이 실질적으로 거의 이뤄지지 않는 데다가 처벌이 경미한 수준이라 실효성이 떨어지고, 신고 이후 보복 위험도 있어 미봉책에 불과하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정 모씨(24)는 “집에 동생 혼자 있는데 옆집에 사는 사람이 칼을 들고 찾아와 ‘조용히 좀 하라’며 협박한 적도 있다”면서 “층간소음으로 칼부림도 일어나는 마당에 무작정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혼잣말도 들릴 정도면 이건 구조적 문제”...허술한 시공 기준이 이웃 간 분쟁 조장

점차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층간소음과는 달리, 입주자의 개인 생활습관이 아닌 모호한 경계벽 시공 기준으로 인해 잇따르는 부실공사가 원인인 경우가 많은 벽간소음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 금천구에 거주하는 최 모씨(24)는 “어느 날은 지인과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 혼잣말로 ‘시끄럽다’고 중얼거렸는데, 그때부터 갑자기 조용해졌다”며 “잠시 영상을 볼 때도 소리를 1로 설정하고 보거나 이어폰을 껴야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정도 소리도 옆집에 들릴 정도면 이건 생활습관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 아니냐”면서 “세대 경계벽을 두드리면 텅 비어있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이는 현행법 상 세대 간 경계벽에 대한 소음 기준이 없어 경계벽 부실 시공이 잇따르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현재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14조에서는 층간소음 방지를 위해 건물의 각 층간 바닥의 충격음이 49데시벨 이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14조. 상-바닥재 소음 기준이 데시벨 기준으로 마련되어 있다. 하-세대 간의 경계벽은 소재와 두께만 규정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장시온 인턴기자)


그러나 바닥과 달리 세대 간 경계벽의 경우 소재와 두께만 규정하고 있을 뿐 데시벨 기준 소음 규정이 없다. 벽간소음이 심각해 시공사에 항의해도 “벽간소음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국토부 제도 정비 필요성 인지...건축비 증가 측면도 고려해야

국토부는 벽간소음 방지를 위한 세대 간 경계벽 시공 기준 강화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점진적으로 제도 정비가  이뤄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데일리 스냅타임과의 통화에서 “경계벽 소음 기준에 대해서는 정비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앞으로 강화를 해나가야 하는 영역임을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건축 비용 증가와 직결되는 측면이 있어 이 부분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며 “대부분의 벽간소음은 벽돌조 경계벽의 시공 불량이 원인인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기준을 새로 마련한 상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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