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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서대문구 첫 영케어러 조사 열어보니...10명 중 7명은 '한부모가정'

[이데일리 염정인 인턴 기자] 올해 19살이 되는 K씨는 상피내암, 무릎 관절 수술로 아프신 아버지를 부양하기 위해 건설 현장을 다니며 막노동을 했다. 마땅한 집이 없어 아버지를 여관에 모시고, 자신은 돈을 벌기 위해 죽어라 뛰었다.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여관비를 대는 것도 버거웠다.

저소득층으로 분류되던 K씨는 자신이 주거 지원 대상이라는 것도 몰랐다. 절망 같던 일상이 이어지던 중, 서대문구청에서 연락이 왔다. ‘영 케어러’ 발굴 사업을 통해 K씨의 사연을 알아차린 구청은 LH 매입임대 지원을 안내해 안정적인 거주지 확보를 도왔다.

이른 나이에 가족을 돌보는 영 케어러들은 성장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데일리 스냅타임 9월 6일자 기사 ‘“12시간 노동에 치매 간병까지” 영 케어러 만나다’ 참고.) 일과 돌봄이 양립되지 못하다 보니, 다른 사회적 관계로부터 고립될 뿐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노동을 하기도 어렵다. 자연스럽게 영 케어러는 ‘가난 대물림’의 굴레에 들어가게 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영 케어러 실태조사 살펴보니한부모가정이 위험하다

영 케어러에 대한 실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부터 △중·고등학생 △학교 밖 청소년 △대학생 △일하는 청년(만 34세까지)을 대상으로 전국 영 케어러 현황조사에 착수했지만, 구체적인 조사 결과는 올해 말 발표될 예정이다.

제한적인 조사지만 서대문구청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5월까지 6개월간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영 케어러 발굴에 나섰다. 이데일리 스냅타임이 서대문구청으로부터 전달받은 영 케어러 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 특히 한부모가정에서 영 케어러가 발생할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대문구청이 보건복지부 시스템 ‘행복e음’ 시스템을 활용해 1차 조사에 나선 결과, 만 9~24세의 ‘영 케어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29가구(위기정보 발굴대상) 중 25가구가 ‘한부모 가정’이었다.

이후 2, 3차 조사를 통해 총 3955가구 중 44가구의 영 케어러가 발굴됐다. 이렇게 찾아낸 영 케어러 중 72%가 한부모 가정(32가구)이다. △기존 복지대상자(차상위·맞춤형급여 등) 6가구 △청각 장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를 지칭하는 코다(CODA)가정 6가구도 있었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지난 7일 “1차 조사에서 집계된 ‘위기정보 기획발굴대상’은 그 자체로 영 케어러는 아니지만 한부모가정에 위기가구가 많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며 “이에 2차 조사는 특별히 한부모가정만을 대상으로 진행했고, 조사한 인원 중 45.1%에 달하는 영 케어러를 발굴하게 됐다”고 밝혔다.

 

복지 정보 모르는 영 케어러들...‘학교가 연결 고리

영 케어러들은 사회 경험이 부족해 정부의 복지 정책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앞서 기자가 만났던 영 케어러’ 성시훈(27)씨와 박채아(39)씨도 모두 ‘복지 정보’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박씨는 “처음엔 정보가 너무 없어서 매번 울기만 했다”며 “이후 치매 노인 관련 네이버 카페를 알게 돼, 거기서 많은 경험담을 읽고 정보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전엔 모든 걸 하나하나 검색하고 겪어봐야 알 수 있었는데 네이버 카페를 알게 된 후로, 정보를 찾기 훨씬 좋아졌다”고 답했다.

보건복지부는 ‘가족돌봄 청년 지원 대책 수립 방안’을 통해 “병원·학교 등의 초기 창구 역할이 미흡하다”며 “병원·학교와 연계한 발굴 작업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영 케어러 복지가 잘 갖춰져 있는 영국에서도 영 케어러 실태 조사를 위해 교육 관련 부서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이번에 영 케어러 조사를 실시한 서대문구청 역시 “체감상 학교와의 연계가 도움이 됐던 것 같다”며 “발굴조사 당시, 학교에서 많이 협조해주셨다. 높은 조사율에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고 밝혔다.

 

전문가 영 케어러에 진로 설계 정책 추가돼야

영 케어러의 발굴과 기존 복지 시스템 연결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기존 복지 시스템이 ‘영 케어러’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 케어러 연구를 진행 중인 김보영 영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상담을 통해 기존 제도를 연계하는 데 그치는 건 한계가 있다”며 “단순한 상담만으론 조금이라도 지원 자격에 미달하는 청년들은 다시 방치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영 케어러의 경우, 청년들의 진로·생애 설계를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이 추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부모를 간병하는 많은 청년이 ‘부모가 아픈데 난 내 살길 찾아 나서도 되나’라며 굉장히 죄책감을 느낀다”며 “사회적으로 이런 청년들을 지지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통상적으로 돌봄의 책임을 요구받지 않던 청년들이 주된 돌봄자가 됐다는 건 이전에 이미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면서 “누군가를 돌봐야 할 땐 병원비 등 주로 경제적인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영 케어러의 경우엔 이에 더해 ‘미래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추가적인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또한 김 교수는 ‘진로·생애 설계’ 지원뿐만 아니라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비롯한 전반적인 돌봄 서비스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가족구조가 변했고 이젠 가족이 돌봄을 오로지 감당할 수 없다. 돌봄 부담을 공적으로 나누는 구조가 너무나 미발달돼 있다”며 “노인장기요양보험을 통해 통상 하루에 지원 받을 수 있는 시간은 3~4시간이다. 최소 8시간 정도 노동을 해야 하는 보호자들에겐 턱없이 짧은 지원시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원 세 모녀 사건’이나 ‘방치되는 발달 장애인’ 사례 등을 언급하며 “사회적으로 돌봄의 책임을 나누는 구조를 어서 만들지 않으면, 앞으로도 우린 계속 비극적인 사건을 만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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