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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 노동에 치매 간병까지” 영 케어러 만나다

[이데일리 염정인 인턴 기자]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지금은 그 생각을 아예 버렸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나란히 앉아 있는 제보자 성시훈(27)씨 (사진=독자 제보)


 

경상도 영천시에 사는 성시훈(27)씨는 현재 조부모 돌봄 6개월 차 ‘영 케어러(Young Carer)’다. 영 케어러란 질병·장애·정신건강·알코올 중독 등 문제를 가지고 있는 가족 구성원을 직접 돌보는 청(소)년을 말한다. 스냅타임은 ‘영 케어러’ 3인을 만나 이들의 ‘돌봄 부담’을 들어봤다.

성시훈(27)씨의 다른 가족들은 모두 서울에서 직장을 다녀 혼자 할머니를 돌보고 있다. 성씨의 할머니께선 치매 진단을 받았다.

성씨는 할머니 간병을 시작하기 전엔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 치매 증상이 심해지자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성씨는 “모든 게 무너졌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할머니의 곁엔 누군가는 꼭 있어야 하기에 후회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성씨의 긍정적인 다짐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어렵다.

성씨는 “(회사에서) 점심시간마다 밥도 못 먹고 회사 차를 빌려 할머니 집을 다녀오기 일쑤”라고 말했다. 실제 성씨는 12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할머니를 돌본다. 성씨는 “일하러 가면 할머니가 혼자 있을 수밖에 없어 불안하다”며 “할머니를 함께 돌봐줄 사람, 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성씨의 부탁으로 경로당 마을 할머니들께서 수시로 성씨의 할머니 댁을 찾아가 안부를 확인한다. 마을 할머니들의 따뜻한 행동으로 성씨는 불안함을 달래고 있지만, 여전히 ‘할머니를 함께 돌볼’ 사람이 필요하다.

성씨는 현재 할머니가 70년간 사셨던 집이 철거 예정이라 주거 불안을 겪고 있기도 하다. 주거·일자리·미래계획 등 성씨가 겪고 있는 문제는 복합적이다.

그럼에도 성씨는 “나보다 어린 나이에 간병을 시작하신 분들도 많을 거다”라면서 “현재 할머니가 요양원 입소를 원치 않으신다. 힘이 닿는 한, 할머니가 70년간 사셨던 마을과 집에서 모셔보려 한다”고 밝혔다.

박채아(39)씨는 가족 간병 브이로그를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사진=염정인 인턴 기자 캡쳐)


 

한편 올해로 부모 돌봄 10년 차에 접어든 박채아(39)씨는 29세부터 아버지 간병을 시작했다. 박씨 역시 돌봄과 일을 양립하기 어려웠다고 강조했다. 사업을 하는 박씨는 “회사 직원들과 아빠를 함께 챙겨야 해 버거웠다”며 “아빠를 옆에 앉혀두고 집에서 회의를 하거나 한 달에 한 번 출근하면서 아빠를 돌봤다”고 밝혔다. “정말 힘들었을 땐 몇 달 동안 한 달에 2~3일도 일을 못했다”며 “모아둔 돈을 다 써가면서 버텼다”고 전했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현재 박씨는 ‘내 삶’과 돌봄 간의 균형을 찾았다. 박씨는 “아빠가 주간보호센터(데이케어)를 다녔는데 중간에 증상이 심해지자 쫓겨났다”며 “이후 혼자 버티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입주 요양보호사와 아빠를 함께 살게 하는 형태로 정착하게 됐다”고 밝혔다. 즉, 주중엔 입주 요양보호사가 아빠를 돌보고, 주말엔 박씨가 아빠를 돌본다.

박씨는 “나라에서 부담하는 것을 제외하고서라도 자부담이 한 달에 400만 원(생활비 포함) 가까이 드는 방법이지만 현재로선 최선”이라 답했다.

이어 박씨는 “오랜 간병을 이겨내려면 아무리 힘들어도 사회생활을 병행해서 내 삶과의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박씨는 “처음 간병을 시작할 당시, 다른 보호자들은 대부분 50대라 내가 손녀인 줄 알더라”라며 “비교적 어리니까 어디서든 날 너무 불쌍히 여기고 제대로 된 보호자로 인정해주지도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영 케어러는 동정의 대상이 되는 한편 보호자로서의 위치를 쉽게 무시당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청한 청년 K(25)씨는 얼마 전 50대 어머니의 초로기 치매 진단 이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엄마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치매 진단을 받아 가족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며 “현재 대학 생활을 잠정 중단하고 본가로 와 엄마를 어떻게 모실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K씨는 “엄마가 갑작스레 조금씩 일상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아직 대학생이지만 책임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어 “학업이나 진로와 같은 ‘나’에 관한 고민은 잠시 내려 놓게 됐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청년정책조정위원회의 ‘가족 돌봄 청년 지원대책 수립 방안’에 따르면 ‘케어러’ 중 ‘영’ 케어러만의 특수성이 있다. 복지부는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돌봄을 맡느냐에 따라 돌봄 부담이 다르다”며 “영 케어러의 경우 돌봄의 어려움이 현재뿐 아니라 생애 전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영 케어러’들은 일반적인 돌봄 문제에서 겪을 수 있는 경제·심리적 부담은 물론, 진로를 결정하고 미래를 계획해야 할 청년 시기에 ‘큰 불확실성’을 떠안게 된다. 초고령화시대 영 케어러를 위한 지원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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