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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로 대응한다, 청년 세입자 시민단체 '민달팽이'

[이데일리 안수연 인턴기자] "내가 뭔가 불편했는데 그게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주는 언어들이 있다. 주거에서도 ‘이건 세입자의 권리야’ , ‘이건 당연히 우리가 누려야 되는 주거권이야’라고 얘기해 줄 수 있는 언어를 만드는 게 우리가 하는 일"-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지난 2011년 연세대학교 내에서 주거 문제로 고민하는 대학생들이 모여 청년 세입자 당사자 연대인  ‘민달팽이유니온'을 출범했다. 연세대 내 주거 취약 대학생, 원생을 선발하여 주거보조금 성격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시작해 청년 주거정책 전반과 세입자 권리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민달팽이유니온.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을 만들고 비영리 주거 모델을 공급하고 있기도 하다. 북아현동에 위치한 민달팽이유니온 사무실에서 위원장 지수씨를 만나 청년 주거권에 대해 물었다. 

사진=주거권대행진에 참여중인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본인제공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원래 살던 집에서 급히 나가야 하는 상황에 우연히 민달팽이에서 운영하는 주택협동조합을 알게 됐다. 당시 가지고 있던 보증금과 월세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고시원밖에 없었지만 '민달팽이유니온'에서 추진하고 있는 비영리주거모델 덕분에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민달팽이 집에 살게 된 입주자였지만 집을 돈벌이 수단으로 쓰는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변화를 만들기 위해 시도하는 활동가들의 모습에 매료돼 활동가를 선택했다.

Q 민달팽이 유니온은 어떤 단체인가

A 민달팽이유니온은 새롭게 주거취약계층으로 대두된 청년층 당사자 연대로 청년 주거권 보장과 주거불평등 완화를 미션으로 하는 단체다.

Q 민달팽이유니온은 어떤 계기로 출범하게됐나

A: 청년들이 겪고 있는 이 시대의 주거 문제는 개인이 노력해서 자신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걸 넘어서 구조적으로 불평등한 문제가 있다. 개인이 노력해서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 인식에 공감하고 실제로 제도 개선이나 사회적 실험을 같이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민달팽이유니온이 시작됐다.

민달팽이가 처음 만들어질 때 제일 주목했던 것 중 하나가 대학교 기숙사 문제였다. 한국에서 왠만큼 교육받고 일자리를 얻으려고 하면 대도시를 가야 하고 그중 많은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대학교들은 기숙사를 제대로 마련하고 있지 않다. 1학년들은 웬만하면 다 살 수 있게 해주는 학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학교도 많다.

그렇다보니 타지로 독립을 해야 하는 선택을 아예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한다. 또는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 가는 청년이 마련할 수 있는 최대의 비용으로 선택할 수 있는 주거 환경은 너무나 열악하다. 이런 공간을 집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 사회의 상식인가 라는 것에 문제 인식을 가졌던 것이 민달팽이의 시작을 함께 했고 그 인식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Q 민달팽이유니온은 어떤 일을 하는가

A 주거 문제에서 지금 가장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제도적으로 허점이 큰 부분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그 문제를 정말 해결하기 위해서 연대해 같이 목소리를 낸다.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주거 교육, 주거 상담을 진행하면서 부당하게 겪고 있는 임대인, 중개사와의 갈등·분쟁에 관해서 현안 대응을 같이 하기도 하고 주거 정책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청년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서 제도 개선 요구를 하기도 한다.

진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 뭔가 발휘하는 과정을 주도하기도 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문제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 대중을 상대로 캠페인도 꾸준히 하고 있다.

Q 청년 주거 상담을 진행하다보면 어떤 유형의 상담주제가 많은가

A 청년 세대 안에서 살게 되는 집의 형태는 다양하게 분포하지만 겪고 있는 주거 문제는 양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전세 사기가 많이 회자되는데 전세 사기로만 청년이 세입자로 사는 불안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전세 사기가 아니어도 보증금을 제때 못 돌려받는 청년들 정말 많기 때문이다. 계약이 끝날 때가 됐는데 집주인이 “다음 세입자 못 구하면 보증금 절대 못 준다. 배 째라” 는 식으로 나오거나 카카오톡을 차단하고 연락 두절하는 경우도 있다. 세입자가 고장 내지 않은 기존의 주택 하자 문제를 들먹이면서 “보증금 일부를 떼고 주겠다”라고 우기는 일도 많이 겪는다.

청년들이 이런 일을 겪을 때 주변에서는 “어쩔 수 없다. 세상 배우는 값이라고 생각하고 일단 주고 빨리 나와라” 혹은 보증금 못 받은 경우에는 일단 나와서 기다리라고 조언한다. 오랫동안 형성된 ‘관행’ 때문에 세입자들에게 그렇게 말하는데 우리는 이걸 세입자에 대한 일종의 가스라이팅이라고 말 한다. 세입자에게 열악한 위치를 계속해서 강제하는 구조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청년주거 교육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이 나라에서 주거권이 어떻게 보장되고 있고 청년들이 세입자로 살면서 겪게 되는 권리 침해에 대해서 짚어준다. 당신이 무엇을 권리로 보장받을 수 있고, 관행은 그럴 수 있어도 원칙적으로 부당한 것에 대한 대응 방법에 대해 함께 얘기한다.

Q 민달팽이유니온에서 상담한 사례 중 해결된 청년 주거 상담 사례는 어떤것이 있나

A 역세권 청년주택 민간사업차 측에서 입주 청년들에게 계약서에 없는 비용을 요구한 사례가 있었다. 역세권 청년주택이 전부 서울시나 공공이 소유한 것이 아니고 80% 정도는 민간 사업자가 운영하는 집이다. 청년들에게 계약서에 없는 관리비 명목 요금을 요구하면서 이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보증금 잔금을 전부 내도 입주할 수 없다라고 강제하던 상황이 있었다.

변호사와 서울시 모두 청년 세입자에게 이 상황이 ‘어쩔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현행법과 제도권 내에선 그렇지만 너무 부당했다. 민달팽이가 시민단체이기 때문에 발휘할 수 있는 것과 노력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 언론, 서울시의원 등과 간담회를 열어 우리가 중재하는 내용이 결국 수용됐었다.

결과적으로 부당하게 요구 받았던 돈을 내지 않아도 청년들이 청년 주택에 입주할 수 있었고 이미 돈을 냈던 사람들도 반환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제도적으로 무언가가 보장되었기 때문에 청년들의 세입자로서의 권리를 지켰다라고 말할 수 없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이런 노력을 하는거다.

법, 제도가 개선되는 게 더디다고 해서 우리 삶의 시계가 천천히 도는 것이 아니지 않나. 우리는 그럴 때마다 그 순간 순간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한다. 민달팽이가 시민단체로 있어서 누군가에게는 비빌만한 언덕이 되어 주는 것. 그게 우리가 하는 활동의 일환이다.

 

Q 청년 주거 문제 중 해결 돼야 할 시급한 사안이 뭐라고 생각하나

A 계속해서 나쁜 집은 늘어가고 집값은 더 빠른 속도로 올라간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가 나에게 주거 마련 자산을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 누군가한테는 엄청난 무기력이 되기도 한다.

청년 세대를 자산을 기준으로 상위, 하위 20%씩 묶어 비교를 하면 35배 정도의 격차가 생긴다. 소득도 6~7배 정도의 격차가 나는데 이 정도 소득 격차만으로는 자산 격차를 설명할 수가 없다. 이 자산은 세습되는 불평등에서 기반한 것이다.

특정 자산과 특정 소득 수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은 공공임대가 아니고서는 살 만한 집을 마련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런 계층을 위해 국가에서 공공임대주택을 지어야 하는 거다.

이처럼 어떤 청년에게는 공공임대주택이 필요한데 지금 윤석열 정부에서는 공공임대주택 예산 30%를 삭감해놓고선 청년 원가 주택을 짓는다고 정책 홍보를 하고 있다.  6~7억짜리 원가 주택이 지어지면 50년 동안 월 100만 원, 200만 원씩을 부담해야하는데 하위 20%의 청년들이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한지를 짚어봐야 한다.

청년 주거 문제는 대출 늘려주고 분양 주택 몇 개 짓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대출 늘리고 분양 주택 짓는 것으로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생색내는 건 우리 청년 세대와 이 사회에 대한 기만이다. 지금 이런 생색을 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왜 이런 주거 불평등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뻔히 다 아는 사람들이다. 최소한 청년의 탈을 쓰고 투기꾼이나 집 많이 가진 사람들이 개발을 통해서 이익을 보는 것을 대변하는 정책은 그만 나와야 한다.

앞으로 청년 세대에 필요한 건 본인이 갖고 있는 자산이나 소득이 어느 수준이든 간에 내 삶을 안전하게 계획하고 미래에 어느 지역에서 계속 정착하면서 살 수 있을지를 주체적으로 고민하며 살 수 있는 환경이다.

Q 민달팽이유니온의 최종목표는

A 청년들이 함부로 안 쫓겨났으면 좋겠고 보증금, 월세를 임대인 마음대로 못 올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시도가 있을 때 민달팽이든 제도든 누군가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세입자나 청년 ‘혼자’ 그 문제 앞에 놓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그렇게 세입자들을 함부로 내쫓고, 보증금이나 월세를 많이 올리고, 많은 동네를 갈아엎고 고가 아파트를 짓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민달팽이가 이야기하는 것에 동의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마주쳤으면 좋겠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전체 주택의 40%가 공공임대주택이라고 한다. 네덜란드에 다녀온 활동가분한테 들었었다. 너무 충격이었다. 한국에서 볼 땐 판타지 세계관이니까.  그런데 판타지 세계관이 아니다. 이미 주거권이 보장되고 있는 해외사례도 많고 우리나라에서도 할 수 있다. 그런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에 많은 시민이 언젠가 함께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그때까지 민달팽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겠다.

내가 가지고 있는 노동권이 뭐고,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권리들이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는 데에는 중요한 지점이 있다. 주거에서도 이 전환점은 올 것이다. 누군가는 대중이 우매하다고 하지만 집단으로 학습해서 다 같이 더 나은 다음 단계를 밝는 순간은 분명히 온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집을 가진 사람들이 또 집을 가지게 되고, 계속 집값이 오르면 그 돈을 부담할 수 없는 사람들은 더 많이 생기게 된다. 그때 사람들이 겪고 있는 불평등을 타인에게 말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할 것이고 민달팽이 활동가들이 하는 일은 사람들이 자기가 겪는 불안이나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게끔 그 언어를 여기저기 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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