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세대를 위한 뉴스

snaptime logo

“꿈에 그리던 직장이에요”…도 넘은 ‘자소설’



[취업난맥①]블라인드채용 확대로 서류 비중 높아지자
‘부풀리고 대필하고’…‘가짜 자소서’ 넘쳐나
채용 객관성 확보 위해 필기·면접 비중 높여

(사진=이미지 투데이)


#1. 하반기 공개채용 영업 직무에 지원한 이모(25)씨는 대학교 2학년 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이 있다. 이마저도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다며 2주만에 그만뒀다. 그는 자기소개서에 아르바이트 경험을 기재해 ‘고객의 마음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키웠다’고 부풀렸다.

이씨는 회사 지원 동기 항목에 ‘회사의 전략과 비전에 동참해 함께 성장하겠다는 꿈을 키웠다’는 ‘가짜 애사심’까지 만들었다. 이씨는 “매일 10시간씩 자기소개서를 작성하지만 한 문장도 작성하지 못할 때가 잦다”며 “자신을 남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포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 지난해에 이어 2년째 취업을 준비하는 최모(28)씨는 취업컨설팅 업체에 25만원을 내고 자기소개서 대필을 받았다. 최씨는 “지금까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지인과 온라인을 통해 무료로 첨삭을 받았지만 떨어지는 것은 매한가지”라며 “차라리 비싼 돈을 주고 전문 업체에 대필을 맡기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사진= 한 취업 커뮤니티 캡처)


최근 기업들이 채용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원자의 나이와 학력, 자격증 등의 ‘스펙’이 아닌 직무능력을 평가하는 ‘블라인드채용’을 확대하면서 채용의 첫 번째 관문인 자기소개서(자소서)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취업준비생들이 자기소개서 내용을 부풀리는 것은 다반사다. 대행업체에 아예 대필을 맡기면서 가짜 자기소개서 이른바 ‘자소설’까지 등장했다. 이미 취준생 사이에서 자기소개서의 공정성 훼손에 대한 문제는 어제오늘만의 얘기가 아니다.

서류전형이라도 넘어보겠다는 취준생들의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면접에서 들통나는 한이 있더라도 ‘자소설(자신을 조금이나마 돋보이게 하려고 과장된 내용이 포함된 자기소개서를 일컫는 말)’이라도 써서 1차 합격을 해보겠다는 취준생들이 넘쳐난다.

잡코리아에서 취준생 5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18 상반기 신입 공채 서류전형 합격률이 20.6%였다. 그 중 서류 전형에 모두 탈락했다는 응답자만 40.7%에 달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 듯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자소서를 대필해달라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커뮤니티 내 자소서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이 게시되자 다수의 취준생들이 공감하고 있다.(이미지=취업 커뮤니티 캡처)


“대필 덕 톡톡히 봤어요”

직장인 박모(26)씨는 지난해 취업에 성공했다. 박씨는 취업 준비에서 대필의 덕을 톡톡히 봤다고 밝혔다.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나고 자라 학자금 대출에 허덕였던 그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만 했다. 높은 학력은커녕 이렇다 할 대외활동 경력도 없었다.

그는 “똑같이 아등바등 사는 상황에서 무슨 특별한 경험을 쓰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스펙을 키울 시간이나 돈이 없어 대필을 찾게 됐다. 자신의 이야기를 꾸미지 않고 쓰면 합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대학생 유모(23)씨는 최근 기업 내 채용설명회를 다녀왔다. 인사담당자는 블라인드채용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자소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씨는 자소서를 작성하던 도중 난관에 부딪혔다. 결국 주위 사람에게 부탁해 대필을 알아보게 됐다. 2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에도 대필 받은 유씨는 서류전형에 합격했다. 그는 “대필이 떳떳한 건 아니지만 다들 주위에서 자소서를 첨삭 받는 편”이라며 “돈 주고 일대일 코칭 받은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취준생에서 신입사원에 이르기까지 평균적으로 작성하는 자소서는 평균 14.4건이다. 잡코리아에서 입사 1년 미만 신입사원 29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건 이하(31.2%), 6건~10건(20.5%), 11건~20건(21.6%)이라 밝혔다. 그 중 가장 까다로웠던 자소서 문항은 ‘지원 동기’가 51.7%로 압도적이었다.

면접장으로 향하는 공무원 취준생들들 (사진=연합뉴스)


서류 비중 줄이고 필기·면접 비중 강화

인재 찾기에 골몰하는 기업들도 이런 취준생들의 현실을 모를 리 없다. 서류비중이 커지자 아예 필기와 면접으로 다시금 당락을 결정하겠다는 기업이 늘고 있다. 서류 심사에서 ‘자소설’을 다 솎아낼 수 없어서다.

지난 8월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채용설명회에서 “자기소개서의 비중을 대폭 줄였다”며 “이는 많은 지원자에게 필기시험 기회를 제공하고 객관적인 채용을 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신한은행 역시 서류전형에서 자기소개서의 비중을 줄이며 “서류심사를 간소화해 최대한 많은 지원자에게 필기시험 응시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했다.

지난달 은행채용에 지원한 취준생 상당수가 서류전형에서 합격하자 온라인 취업카페와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서류를 적부(적합·부적합)로 평가한 것 아니냐’, ‘필기로 전부 떨어뜨리려나 보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시중은행은 서류전형에서 10~20배수로 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레일과 서울교통공사 등 일부 공기업은 서류전형 자체를 ‘적부’로 평가했다. 지원자가 자소서를 성실하게 작성했는지를 파악해 일부 기준만 충족하면 전부 합격시키는 평가방법이다. 사실상 적부 판정으로 서류 전형에서 많은 지원자를 통과시키고 필기시험에 떨어뜨리겠다는 것이다.

한 기업 인사 관계자는 “서류만으로 지원자의 진정성을 완벽하게 확인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과장하거나 부풀린 자소서는 면접 전형에서 대부분 들통 난다”고 말했다.

면접은 자소서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지원자가 거짓으로 작성하면 진정성을 요구하는 면접관의 압박 질문에 금세 탄로 날 가능성이 크다.

[한종완·박창기 기자]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