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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누군가에겐 치료제"...의료용 대마를 아시나요

미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의료용 대마'인 CBD 오일. 커피에도 첨가할 수 있다. (사진=AP)


총수 일가 자녀는 물론 연예계까지, 현재 대한민국은 마약 논란으로 뜨겁다. 단체로 마약 파티를 즐기는가 하면 조사를 피하기 위해 제모까지 하는 등 논란 범위도 다양하다.

그러나 불과 한 달 전에 ‘정말 필요해서’ 대마를 합법화한 사례가 있었다. 바로 질병 치료에 사용되는 의료용 대마다. 이미 해외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의료용 대마는 유독 한국에서만 불법으로 취급돼 많은 환자들이 고통을 겪었다. 환자 가족들과 시민단체의 노력 끝에 48년 만에 합법화됐지만 때아닌 마약 논란이 겹치면서 애꿎은 눈초리를 받게 됐다. 의료용 대마는 재계, 연예계에서 논란이 된 마약과 무엇이 다를까?

범죄자로 몰린 환자 가족…‘오찬희 법’ 제정까지

지난 1975년 12월 일간지 사회면을 장식했던 ‘대마초 파동’은 50명이 넘는 가수, 배우, 코미디언 등이 입건되면서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초유의 기록을 만들었다. 폭발적인 관심 속에 1976년 4월 ‘대마관리법’이 제정됐고 “대마는 마약”, “대마는 나쁜 불법”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하지만 이 대마 성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난치성 뇌전증 및 중증 뇌 신경질환을 겪고 있는 환자들이다. 대마 성분 중 칸나비디올(CBD) 오일이 뇌 신경질환 환자들의 발작 증상에 효과적이라는 사례가 발표되면서 환자와 가족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사람의 뇌에서는 ‘내성 칸나비노이드’라는 물질을 자체적으로 합성하며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다. 이 합성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뇌 질환으로 이어진다. 대마에서 추출한 CBD 오일은 이 합성 과정이 부족한 환자들이 원활히 합성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보조제 역할을 해준다.

지난해 11월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의료용 대마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국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 구성원들이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뇌 질환 환자들의 발작 증상을 치료할 수 있어, 이미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는 편의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약품이 됐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달랐다. 대마 성분 대부분을 법으로 규제했기 때문이다. 대마는 공무나 학술 연구 상황에서만 허용됐다. 당시 규제가 이렇다보니 절실한 마음에 해외에서 CBD 오일을 들여오던 환자 가족들이 범죄 혐의로 수사 받기도 했다. 가족들이 치료 목적이라고 항변했지만 형량이 소폭 줄었을 뿐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의료용 대마 허용을 주장해온 한국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지난해 4월 기자회견을 열고 “대마를 엄벌하는 일본도 CBD 오일은 허용한다”며 “올림픽의 세계반도핑기구도 CBD 성분을 금지 목록에서 제외했다”고 법 개정을 주장했다. 시민단체와 환자 가족들의 노력 끝에 지난해 11월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이 개정안에는 CBD 오일이 허용되지 않아 치료를 받지 못한 어린이의 이름을 따 ‘오찬희 법’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개정안은 지난달 1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항정신성 없지만…‘대마’ 이름 탓에 선입견도

대마 성분을 사용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환각 증상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CBD 오일에서 환각 증상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마초에서 환각을 유발하는 성분은 항정신성을 가진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THC)이다. 하지만 의료용 대마에서 사용되는 CBD 성분은 THC 달리 항정신성 성분을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중독 증상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의료용 대마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환자 가족이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WHO)도 같은 입장이다. WHO가 지난해 6월 제네바에서 발표한 'Cannabidiol Critical Review Report'에 따르면 CBD는 '남용과 의존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세계 각지에서 뇌 질환의 치료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다시 증명됐다.

지난해 12월 일부개정 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대마의 환각 효과나 중독성 등을 감안한 규제는 필요하나, 의학적 효능이나 위해 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및 환자 가족들의 노력과 WHO의 연구 결과가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100ml에 159만원?…아직 갈 길이 먼 제도

의료용 대마 오일이 합법화됐지만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제조할 수 있는 방법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개정안에서 국내 제조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의료용 대마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환자 혹은 가족이 의사에게 소견서를 받아 식약처에 수입을 신청하면 된다. 심사를 거쳐 수입이 승인되면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서 환자에게 CBD 오일을 제공한다.

문제는 이 과정으로 처방받을 수 있는 영국 독점 ‘칸나비디올 내복액(Cannabidiol oral solution)’의 가격이 100ml당 약 159만원 가량이라는 점이다.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보험 의약품이기 때문에 고가로 팔릴 수 밖에 없다. 운동본부는 이를 두고 “의약품센터에서 독점으로 제공하는 제품의 성분은 2배지만 가격은 8배나 비싸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의 의견을 듣고자 담당자와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한 시민이 카나비디올(CBD)이 함유된 진통제 샘플을 사용해 보고 있다. 최근 CBD는 스킨 크림이나 오일과 같은 업계에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사진=AP)


수 백개에 달하는 의료용 대마 영농 기업들이 즐비한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CBD 오일을 특수 의약품으로 취급하고 있다. 따라서 값이 비싸더라도 식약처가 승인한 영국 제품에 전량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운동본부는 “그 동안 환자 가족들이 해외에서 구매했던 것은 159만원짜리 의약품이 아니다”라며 “가족들이 구매해온 것은 해외에서 판매하고 있는 '건강기능식품'들”이라고 강조했다.

운동본부는 150만원 남짓한 고가 약품을 해결하려면 해외처럼 자체 제조 및 생산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전면 허용하기가 어렵다면 “차라리 옛 담배인삼공사처럼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의료용 대마 관리 공기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질 좋은 제품을 만들려면 결국 국내 제조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논란이 되는 있는 재계, 연예계 마약 사건에 대해서도 입장을 더 했다. 운동본부는 “마약 남용과 의료용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며 “성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를 같은 선상에 놓고 평가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스냅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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