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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하려면 결혼계획도 숨겨야 하나요?”

“5년 안에 개인적인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서울에서 혼자 사나요? 앞으로도 쭉 혼자 사실건가요?”

이어지는 면접관의 질문에 취업준비생(취준생) 황지영(26·여)씨는 “올해 결혼 계획이 있습니다”라고 사실대로 말했다. 면접관은 “개인적인 부분까지 말해줘서 고맙다”며 “우리는 오래 같이 일할 사람을 찾기 때문에 결혼 계획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면접관은 같이 면접을 보던 다른 지원자에게도 결혼 계획을 물었고 ‘현재 교제하고 있는 사람도 없는지’를 재차 물었다.

뻔히 의도가 보이는 질문에 황씨는 “결혼 계획을 딱히 숨길 이유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밝혔다”며 “결혼이라는 단어의 언급은 없었지만 혼인 여부가 채용에 영향을 끼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 것은 사실”라고 털어놨다.

개정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 시행이 1년이 지났지만 취업현장에서는 여전히 직무와 무관한 지원자의 개인 정보를 요구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개정법률의 엄격한 적용을 위해 채용절차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블라인드요? 공무원에만 해당되는 소리네요

취준생 김주원(25·여)씨는 “면접에서 직무와 관계없는 개인 정보를 묻는 사례가 너무 많아 일일이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다. 김씨는 “한 면접에서는 거주형태가 전세인지 자가인지를 묻기도 했다. 취업과 거주형태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블라인드 채용은 공무원에만 해당되는 소리다”라며 씁쓸해했다.

일부 기업들은 입사지원서에서부터 개인 정보를 요구하기도 한다.

김씨는 “이력서 개인 정보란에 혼인 여부는 기본이고 가족들의 구체적인 학력과 직업을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면서 “도대체 채용에 있어서 이런 질문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황당해 했다.

‘블라인드 채용’은 기존의 직무중심 채용 방식에서 차별적인 요소를 제외한 한 단계 더 발전된 채용 방식을 의미한다. 채용 과정에서 편견이 개입돼 차별을 야기할 수 있는 출신지, 가족관계, 학력, 외모 등의 편견 요인을 제외하고 실력(직무능력)을 평가하여 인재를 채용하기 위함이다.

지난 2017년 하반기,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적용되던 해당 채용절차는 2019년 7월 채용절차법이 개정되면서 민간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개정한 채용절차법 시행에도 여전히 채용 과정에서 직무와 무관한 지원자의 개인 정보를 요구하는 사례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이후 채용절차법 위반 신고 건수는 총 408건으로 나타났다. 이중 약 4분의 1가량인 108건은 과태료 부과했다.

유형별로는 ‘불필요한 개인 정보 요구 금지 위반’이 103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중에서도 ‘구직자의 혼인 여부, 재산, 출신 지역에 관한 정보를 요구한 사례(46건)’가 가장 많았다. 채용절차법 개정 후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직무와 무관한 지원자의 개인 정보를 요구하는 기업이 존재하는 것.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표준 이력서 양식(사진=고용노동부 홈페이지)


구직자 107블라인드 채용 경험 없어

취준생들은 아직 블라인드 채용이 민간기업 영역에는 자리를 잡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구직사이트 잡코리아가 최근 1년 동안 취업활동을 한 구직자 26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블라인드 채용 현황’에 따르면 ‘입사지원서에 인적사항이나 출신학교 등을 표기하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 기업에 지원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26%가 ‘지원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응답자의 74%는 ‘블라인드 채용 기업에 지원한 적이 없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직자 10명 중 7명은 여전히 블라인드 채용 전형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블라인드 채용법이 공정한 채용에 기여한 정도를 묻는 질문에 ‘보통이다’(3점)라고 답한 응답자는 48%, ‘어느 정도 기여했다’(4점)는 28.9%,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2점)는 12.3%인 것으로 나타났다.

취준생 커뮤니티에는 “면접에서 아버지의 회사와 구체적인 직무를 물어보는 질문을 받았다”, “지원서에 부모님 직업을 기재하라는 경우가 있다”와 같은 게시물이 빈번하게 올라온다.

누리꾼들은 “도대체 부모님 직업이 내가 일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한 부모 가정에는 무례한 질문이다”, “지방 중소기업 이력서에는 아직도 가족의 학력·근무사항을 요구하는 곳이 많다” 등의 댓글을 적으며 차별적인 입사지원서 개선과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노동부 공정 채용 분위기 확산에 힘쓰고 있어

불필요한 개인 정보를 요구하는 등의 현 채용 절차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규제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각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지용 한국바른채용인증원 원장은 “민간 기업은 현재 채용절차법 규제를 받고 있고, 이미 과태료 처분이 100건 이상 나오고 있다”며 "실효성 있는 법 시행을 위해서는 규제강화보다는 공정 채용 모범사례를 공유하는 형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원장은 “스펙보다 직무수행능력을 평가해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 글로벌 선진 기업들의 트렌드”라며 “블라인드 채용으로 회사에 적합한 인재를 채용한 선진 민간사례를 공유·확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민간 기업에도 공정한 채용 분위기를 확산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입장을 밝혔다. 그는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민간기업의 채용 절차를 법으로 규제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자율성에 따르는 민간 기업의 채용절차는 일일이 규제하기 어려워 사후에 위반 신고가 들어오는 사례를 대상으로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의 방식으로 규제하고 있다”며 “우수 기업에 대해서는 포상을 하거나 바람직한 채용 모델을 제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확산에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지난 2018년 발표한 ‘블라인드 채용 가이드북’을 통해 표준 이력서 양식을 공개했다.

/스냅타임 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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