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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의’ 병역거부자 첫 무죄...‘양심’ 판단하는 기준은?

‘여호와의증인’과 같은 특정 종교적 이유가 아닌 자신의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자에게 첫 무죄 선고가 나왔다.  지난 2018년 11월 대법원이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를 형사 처벌하면 안 된다는 판결을 내린 지 2년 만의 일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종교적, 윤리적, 도덕적, 철학적 등의 양심상 결정을 이유로 병역의무 이행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종교가 아닌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무죄 판결을 놓고 일각에서는 법원의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26일 대전 교도소 내 대체복무 교육센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63명의 입교식이 열렸다. (사진=뉴시스)


평화주의자’ A,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첫 무죄

지난달 26일 의정부지방법원 형사항소4-1부(재판장 이영환)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2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017년 10월 입영통지서를 받았지만 이를 거부해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에 따르면 성 소수자인 A씨는 학창시절 남성성을 강요하는 또래집단 문화에 반감을 느꼈다. 이후 신앙에 의지해 이스라엘의 무력 침공을 반대하고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염원하는 기독교단체 기도회,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 등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페미니즘’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다.

A씨는 차별을 지양하는 페미니스트로서 다양성을 파괴하는 군대 체제와 생물학적 성으로 자신을 규정짓는 국가 행태를 용인할 수 없다고 느껴 병역을 거부했다.

병역법 위반을 이유로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2018년 2월 1심에서 A씨에게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그해 11월 대법원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고, A씨는 ‘정당한 사유’로 병역을 거부했다며 항소했다.

법원의 무죄판단 기준은?

항소심은 1심 선고 2년 8개월만에 A씨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신앙과 신념이 내면 깊이 자리잡혀 분명한 실체를 이루고 있고 이를 타협적이거나 전략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A씨가 2010년부터 주변에 병역 거부 의사를 표시했고, 징역 1년 6개월이라는 형사처벌을 감수하면서도 입영을 거부했다는 점, 대체복무제를 이행할 의지가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무죄로 판단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통상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사법 판단의 쟁점은 입대 거부 사유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소집일로부터 일정 기간 불응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다만 헌법 19조가 명시하는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라면 병역법에서 명시하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해 무죄로 인정된다.

대법원은 "헌법 19조의 양심이란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정의했다.

A씨 사건의 재판부도 판결문에 “(병역거부가 정당한지는) 진정한 양심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며 “(A씨의 양심은) 병역법이 정한 병역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로 인정한다”고 명시했다.

“‘양심판단하는 기준 모호하다비판도

하지만 A씨의 판결 내용이 공개되자 일각에서는 “진정한 양심의 기준이 뭐냐”는 반응이 나왔다.

군 복무 중인 성모(22·남)씨는 "평화에 대한 신념 자체는 이해가 가지만 어떤 것을 진정한 양심이라고 판단하는지 의문”이라며 “재판부의 판결을 읽어봐도 '양심'에 대한 기준이 추상적이라고 느껴진다"고 답했다.

예비군인 국모(23·남)씨 역시 "대체복무를 잘 한다면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는 것은 괜찮다고 본다"면서도 "양심이라는 것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재판부에 따라 양심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는 과제로 남게 됐다.

실제로 지난해 대전지법 형사3단독(판사 오영표)은 병역법 위반 사건의 피고인 B씨에게 총 게임을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B씨는 어린 시절부터 종교적 신념으로 일관되게 병역을 거부했으나 총기를 들고 상대방과 싸우는 FPS 게임을 즐겼다는 이유로 죄를 면하지 못한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평화주의 시민단체 '전쟁없는 세상'의 이용석 활동가는 "FPS(1인칭 총싸움 게임) 플레이 내역 조회나 예배 참석 여부 등이 양심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느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반면 지난해 서울남부지검 형사7단독(판사 이재경)은 피고인 C씨가 학창 시절 총 게임을 즐겼으나 어린 시절부터 성실하게 종교인으로 활동했다는 점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법조계 악용할 소지 있어

군 법무관 출신인 홍승민 법무법인 담솔 변호사는 "(양심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고 느낄 수 있다"며 "(무죄 판결이 나려면) 정당한 사유, 즉 신념 깊은 '양심'이 인정돼야 하는데 이는 굉장히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개념"이라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거부 재판에서는 검사가 피고인 신문을 통해 양심의 '진정성'을 판단한다. 이 과정에서 검사들은 총 게임 이용 내역이나 영화 예매 내역, 학창시절 생활기록부 등을 요구한다.

홍 변호사는 이 과정에 대해서도 "입증 책임이 있는 검사의 성향에 따라서 판단이 달라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군 검사 출신 백광현 법무법인YK 변호사는 한 인터뷰에서 "개인의 신념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되면서 이를 주장하는 사례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오히려 병역법 위반으로 실형에 처해질 수 있으니 가볍게 접근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홍 변호사 역시 "(양심에 따른 병역의무 거부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며 "어떻게 가려낼지도 관건이다"고 덧붙였다.

/ 스냅타임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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