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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화려함 보단 편안함 추구"... 2030 세대가 '이곳'을 찾는 이유

모란 민속5일장에 있는 돼지 부속 가게의 모습. 장날이 아니지만 가게 안은 손님들로 가득하다. (사진=김지혜 인턴 기자)


모란 5일장에 있는 다른 가게들의 모습. 장날이 아니라 비교적 한산하다. 모란 5일장은 숫자 4와 9가 들어간 날에만 장을 연다.


[이데일리 김지혜 인턴 기자] 지난 1일 오후 6시 모란민속5일장. 이날은 장날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곳'에선 사람들의 목소리로 시끄럽다. 바로 돼지부속 고기를 무한리필로 제공하고 있는 가게다.  기자가 가게로 들어가자 안은 고기 연기들로 자욱했고 손님들은 네모나게 이어져있는 철판 앞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돼지부속이라는 이색적인 메뉴 때문에 연령층이 높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기자가 들어갔을 때만 해도 2030 세대의 손님들이 3팀이나 있었으니 말이다.

"여기서는 상하관계 없어요"... 수평적 관계의 '손님들'

서울시 동작구에서 인테리어 일을 하고 있는 김현준(32) 씨는 "어떻게 돼지부속 가게를 오게 됐냐"는 기자의 질문에 "사실 맨 처음엔 유튜브를 보고 호기심 때문에 왔었는데 여기만의 레트로한 포차감성과 이색적인 메뉴 그리고 무엇보다 정 많은 사장님 두 분 때문에 벌써 단골이 됐다"며 웃었다.

김 씨는 인테리어를 전공하는 만큼 가게를 바라보는 시각도 남달랐다. 그는 "여기의 가장 큰 장점이 뭔지 아세요? 네모난 식탁이에요. 철판이 길게 쭉 이어져 있잖아요. 서로 등을 보고 먹는 다른 가게 와 달리 여기서 만큼은 손님 모두 수평적 관계인 거죠" 라며 고기가 구워지는 철판을 가리켰다.

여 사장님이 철판위에서 고기를 구워주고 있는 모습 (사진=김지혜 인턴 기자)


실제 돼지부속 가게 사장님 두 분은 'ㄷ'자 형태로 이어진 철판 앞에서 손님들의 자리를 돌아다니며 고기를 구워주고 있었다. 특히 여 사장님은 손님들에게 익숙한 듯 장난도 치고 고기 부위를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여 사장은 기자에게 "우리 집에서 제일 맛있는 부위가 도래창 이에요. 생긴 건 마치 조개 같죠 그런데 한입 먹으면 돼지 특유의 향이 입안에 싸악 퍼지거든요 그게 도래창만의 매력이에요" 라고 웃으며 설명했다.

손님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부위 도래창. 조개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돼지고기서 버림받는 부위들..."나도 사회에서 똑같다"

그때 건너편에 앉아있던 이 모씨가 "돼지부속이 사실 정육점 가면 '우리 개 먹이게 버리는 고기 좀 줘요'할 때 그 고기에요" 라며 이야기를 했다. 투박한 말투의 이 남성은 최근 회사사정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 30대 초반이라는 이 모씨는 "사회에서 나는 돼지부속 보다 못한 존재"라며 "돼지고기 부위 중 가장 하대 받는 이 돼지부속도 나처럼 찾아주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불러주는 곳 하나 없이 회사서 쫒겨나기만 하니 어떻게 보면 내가 돼지부속 보다 못한 존재인거죠"라며 한탄했다.

노릇하게 익은 돼지부속의 모습. 부속 종류에는 도래창,지라,껍데기, 허파 등이 포함 돼 있다. (사진=김지혜 인턴 기자)


그럼에도 이 씨가 돼지부속 가게를 방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투박한 말투를 받아주는 사람이 사장님 뿐이라 했다. "내가 회사에서 많이 혼났어요. 제 말투 때문에 그런데 사장님은 편견 없이 다 받아주고 저를 편견없이 본 사람" 이라면서 "나도 참 마음이 약한 게 사람들이랑 대화하다 보면 어느새 차가운 마음이 녹는 것 같아 '대화만으로도 위로가 되는구나'라는 걸 이곳을 통해 알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가게 입구 쪽에 2030 세대들과 기성세대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 (사진=김지혜 인턴 기자)


"2030세대도 조용한 곳 좋아해요"

오후 7시 쯤이 되니 퇴근 하고 오는 직장인들로 가게 안은 벌써 만석이였다. 그중에서도 듬직한 체격을 한 남성이 눈에 띄었다.

택배 일을 하는 안재탁(21)씨는 "어떻게 이 가게에 오게 됐냐"는 기자의 질문에 "유튜브에서 봤는데 레트로한 감성이 너무 좋아서 왔다"라고 쑥스러워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바로 돈을 벌기 위해 사회에 뛰어들었다고.

안 씨는 "공사장에서 하는 일이 힘들지는 않냐"고 묻자 "몸은 힘들긴 하지만 통장에 꽂히는 금액을 보면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리고 요새 기성세대분들이 젊은 애들은 무조건 사람 많고 시끄러운 곳을 좋아한다고 착각하실 수도 있는데 적어도 난 그렇지 않다. 현장에서 이리저리 시끄럽게 다니다 보면 혼자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래서 이곳에 오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가게 안은 고기가 구워지는 소리, 사장님 두 분이 돌아다니며 손님들에게 정겹게 말을 붙이는 말소리와 손님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소리를 제외하곤 꽤나 조용한 편이었다.

퇴근 후 2030세대들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 중인 모습. (사진=김지혜 인턴 기자)


"화려하지 않아도.." 날 것 그대로를 즐기는 '2030 세대'

여 사장은 "손님들 이야기 하나하나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 우리는 마감시간도 없어 내 마음대로야"하고 웃었다. "왜냐하면 손님들 이야기 듣다 보면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자꾸만 늦어져. 그리고 요새는 젊은 친구들이 인터넷을 보고 우리 가게에 많이 찾아와 주는데 또 젊은이들만의 열기가 있으니까 다른 기성세대 손님들도 보면서 에너지를 많이 얻고 가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이 가게의  3년 넘는 단골이라는 정태겸(55)씨는 이곳에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반성한다고. 정 씨는 "내가 회사에서 어느 정도 직위가 있는 사람인데 이곳에서 회사 인턴정도 되는 청년들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그간 내가 고정관념이 정말 많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면서 "젊은 애들이 외로울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던 것 같아. 사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만 봐도 고금리에 취업난에 정말 치열한데 너무 청년들한테 옛날 사고방식으로 이해하려 했던 것 같아 미안하더라고"라며 멋쩍은 듯 웃었다.

여 사장님이 왼쪽 측면에 앉은 2030 세대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김지혜 인턴 기자)


식사를 끝마치고 나가려는 기자에게 한 남성이 "할 말이 있다"며 붙잡았다. 이 남성은 맨 처음 기자와 대화를 나눴던 김현준 씨의 직장 후배 윤민우 씨(28)였다. 윤 씨는 "제가 아까 전에는 낯을 조금 가려서 '이곳에 자주 방문하는 이유'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 해 드린 것 같은데 드디어 이유가 생각났다"며 흥미로운 눈빛으로 기자를 바라봤다.

그는 "여기에 오면 SNS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요새 SNS 보면 화려하게 사는 2030세대들 정말 많잖아요. 그런데 사실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거든요"라면서 "화려한 플레이팅도 아니고 고급진 음식도 아니만 꾸며내지 않은 이 포장마차에서 내면에 쌓인 외로움을 해소하고 나만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어서 너무 좋은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훈수·해결책 보다는 '공감'의 태도로"

가게를 방문한 2030 세대들 모두 각자의 사연은 다르지만 돼지부속 가게에서 정을 얻고 외로움을 털려고 온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무엇이 2030 세대들의 내면의 외로움을 깊게 만드는 것 일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7년 68만 169명에서 2021년 91만 785명으로 4년 새 33.9%나 늘었다. 지난 한 해에만 약 100만 명에 가까운 환자가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것이다. 특히 20~30대 우울증 진료 환자 비율은 같은 기간 45.7% 급증해 우울증 환자 10명 중 3~4명이 청년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2030 세대들의 우울증 증가의 원인으로 코로나 19 장기화로 인한 취업난과 고금리·고물가등을 이유로 뽑았다.

영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천은진 교수는 "내면에 우울증이 있을 때에는 자기 속 마음을 누구한테 터 놓는 것만으로도 '상기효과'가 발생하면서 마음이 가벼워지고 문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려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들어주는 사람 또한 너무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훈수를 두면서 판단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마음을 다독여 주려는 '공감'의 태도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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