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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고 싶은 우리가 국회를 떠나는 이유

[이데일리 구동현 인턴 기자] 청년 사이에서 국회는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은 곳’으로 통한다. 국회가 입법을 담당하는 기관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곳이라는 믿음이 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구동현 기자)


 

정작 현실은 다르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국회임에도 생각보다 보상은 빈약했고, 미래는 불투명했다. 정책전문가를 꿈꾸며 여의도에 입성한 인턴들이 이내 ‘탈(脫) 국회’를 바라는 실정이다.

국회 인턴은 바깥에서 보면 ‘금턴’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한 국회의원실 인턴 경쟁률은 100:1 수준에 달했다. 소위 ‘빽’으로 통칭되는 인맥이 있거나 각 의원실이 직접 진행하는 채용 관문을 거쳐야 한다. 높은 경쟁률을 뚫은 이들은 왜 중도에서 멈추려는 것일까.

다음은 지난 2월 초 진행한 국회 인턴 A, B 씨와의 인터뷰.

 

- 자기 소개를 해달라.

A. “더불어민주당 소속 초선 의원실에서 국회 인턴 비서관으로 일했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며 입법과 정책 업무에 큰 관심이 생겨 현실 정치에 뛰어들게 됐다. 지금은 대학생 신분이다”

B. “국민의힘 소속 중진 의원실에서 일하고 있다. 보좌관을 꿈꾸며 국회로 향했다”

- 국회 인턴은 통상 어떤 업무를 맡나.

A. “국회 특성상 의원실에 따라 인턴이 맡는 업무는 천차만별이다. 운전과 사진 촬영처럼 수행 업무를 보조하는 인턴이 있는가 하면, 의원 홍보를 담당하며 SNS 관리에 전념하는 인턴도 있다. 정책 역량이 있는 인턴은 지역구와 상임위 업무를 보조한다.

문제는 자신의 주업무가 어떻게 될지 미리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책 업무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입직했지만, 의원실 환경에 휩쓸려 얼떨결에 행정 사무를 보는 인턴을 본 적도 있다. 일반 회사들은 이직이 자유롭지 않나. 그러나 좁디 좁은 ‘정치판’에서 그런 사유로 의원실을 옮기게 되면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다”

B. “국회는 ‘300개의 각기 다른 기업에 근무한다’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하는 일이 다양하고, 의원실마다 분위기도 다르다. 다만 처음 맡는 업무 영역에 따라 국회에서의 삶이 정해질 위험이 상존한다. 모 의원실의 경우 정책 업무를 하고 싶은 인턴이 들어와도, 운전 및 수행직이 공석이라면 일단 자리를 채우더라.

이런 사례를 본 다른 인턴들은 ‘나중에 정책 일을 잘 배울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든다. 국회사무처나 각 의원실이 인턴을 채용할 때 수행, 정책보좌, 법안 자료조사 등 구체적인 업무를 정한다면 인턴들의 염려가 줄어들 것 같다”

국회의원실이 모여 있는 의원회관. 각 의원실에서 보좌진의 업무가 이뤄진다. (사진=구동현 기자)


 

- 국회를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A. “국회는 분명 대한민국 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멋진 공간이다. 자료 요구하고, 공무원 면담하고, 질의서 쓰고, PPT 만들고, 보도자료 쓰고, SNS 메시지 작성하고, 언론 대응까지. 상임위원회 또는 토론회 등에 필요한 정책 실무를 소규모 인력이 전부 담당하게 된다. 분명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다만 청년들이 국회를 떠나는 이유는 분명하다. ‘워라밸’ 때문이다. 국정감사 기간에는 야근과 주말 출근이 무조건적이다. 선거 기간에는 일상 자체를 반납하고 지역 선거에 ‘올인’할 정도다. 또 소규모 인력에 비해 업무량이 과도하다. 국민들은 국회의원 한 명이 9명의 보좌직원을 거느린다고 생각하시지만, 실제 정책 실무를 뛰는 사람은 한 의원실에 고작 4명 정도다.

업무 시간의 유동성은 그렇다 치고 보상체계가 매우 부실하다. 국회 인턴은 계약된 근무 시간을 상회하여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상적인 근로와 급여의 균형이 깨져 있다. 현재 지급되는 연장근로수당(월 20.6시간) 외에 특별근무수당, 주말근무수당 등이 신설돼야 한다. 그것보다 많이 일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국회 인턴’이라고 부르지 않나. 의원의 정치에 내가 동참한다는 느낌이 들어야 하고, 함께 고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책전문가를 꿈꾸고 국회를 찾은 인턴들에게 큰 심리적 보상이 될 수 있다. ‘정치적 동지’라는 이유로 희생만을 강요하는데 인턴들이 무엇을 위해 국회에 남겠는가”

B.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책임이 뒤따르는 일을 시키면, 합당한 보상을 하는 것이 이치다. 의원의 정치적 생명과 직결되는 부분을 아무리 점검해도, 우리에게 공은 돌아오지 않는다. 심지어 보좌관이 인턴이 기획하고 실행한 정책 성과를 가로채 의원에게 보고하는 일도 봤다.

피감 기관에 대한 의원실의 ‘갑질’도 퇴사를 결정하는 데 한 몫 했다. 국회는 정부를 감사할 수 있는 기관이기 때문에, 관련 부처에 자료를 요구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본다. 다만 그 명목으로 퇴근 시간 이후까지 공무원 개인에게 전화를 걸어 자료 요구를 닦달한다든가, 하루만에 수십년 치 자료를 제출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을 당연시하는 걸 보고 '난 국회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진=구동현 기자)


 

현 21대 국회에는 299명의 국회의원이 있다. 각 의원실에는 국회의원의 보좌직원과 수당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4급 보좌관 2명, 5급 선임비서관 2명, 6·7·8·9급 비서관 각 1명, 인턴 1명까지 총 9명이 근무한다. 인턴을 제외한 보좌진은 별정직 공무원에 속하지만, 인턴은 일반 근로자 신분이다.

국회 인턴의 급여는 기본급과 연장근로수당을 더해 월 230만 원(2023년 기준) 선이다. 기본급은 올해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지방선거, 총선 등 굵직한 행사 땐 각 의원의 지역구에 직접 내려가 밤낮없이 일하는 경우가 흔하다. 평소에도 불쑥 찾아오는 술자리와 이해하기 어려운 야근, 주말 근무는 덤이다.

인턴유니온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가 지난 2015년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회인턴들은 주당 평균 58.8시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감사나 선거 때는 주 70시간 이상 일한다는 답변도 13%에 달했다. 그러나 공무원이 받는 시간외수당과 달리 국회 인턴에게는 월 20.6시간의 연장근로수당만 적용된다. 일반 근로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국회 인턴은 의원 혹은 선임 직원과 마찰이 생기면 짐을 싸야 하는 ‘파리 목숨’이기도 하다. 국회 인턴들은 자신에게 적용되는 엄격한 잣대는 국회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지웠지만, 그에 걸맞는 ‘보상’의 부재는 참기 힘들다고 말한다. 단순 ‘MZ세대’의 이기심이나 불평으로 치부하기엔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다.

 

- 1990년대 후반 출생자들이 사회로 진출하는 시기다. 국회가 바뀌어야 할 점은.

A. “매스컴에서 MZ세대는 ‘조직’보다 ‘개인’이 더 중요한 세대라고도 표현한다. 그런데 국회 보좌직원은 ‘조직과 의원’이 빛날 수 있도록 ‘개인의 일상’마저 완전히 미뤄두어야 하는 숙명이다. 내가 생각하는 인턴이 국회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는 국회가 인턴 업무에 알맞는 보상책, 예를 들어 추가 근로수당을 마련하는 등 구조적인 문제를 점검할 때라고 생각한다”

B. “전반적인 채용시스템을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회관에서 신규 인력을 채용할 때 이른바 ‘인맥’이 크게 작용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물론 국회는 정치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채용 시 국회의원의 재량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국정감사 기간에 국회의원들은 정부나 소관기관을 상대로 채용 기준에 대한 지적을 쏟아내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국회 보좌직원에 대한 채용 시스템은 여전히 폐쇄적이다.

채용 기준을 정확히 세우고, 평가표를 사무처에 의무 제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채용 권한이 의원 한 사람에게 너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채용 공정성을 제고할 수 있는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MZ세대는 공정에 대한 감각이 예민한 세대다. 국회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유능한 인재들이 더 많이 현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국회가 그 문을 조금씩 손보는 게 입법부가 국민에게 다가가는 첩경이 아니겠나”

- 국회에 근무하면서 가장 보람찼던 경험은.

A. “물론 잊지 못할 순간도 있다. 국정감사 기간에 야근과 주말 출근을 반복하며 매달렸던 문제가 질의서로 완성되어 내가 보좌하는 의원의 목소리를 따라 흐르고, 상임위 회의장에서 장관이 직접 그 문제를 살피겠다고 말하는 장면을 볼 때 온 몸이 짜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후 언론에 관련 내용이 보도되고, 시민들의 호응이 뒤따르는 것을 보면서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명감에 들떴었다(웃음)”

B. “해외에 있는 교민의 제보를 받아 파고든 문제가 공론화된 적이 있다. 관련 부처에서 해당 문제를 시정하겠다고 답변을 보내왔을 때, 교민이 장문의 메시지를 통해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이를 계기로 비서관으로서 내가 가진 영향력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됐다. 또 ‘국민께 봉사할 수 있어야겠다’고 다짐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JTBC 드라마 '보좌관'의 부제는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국회 보좌진은 자신이 평소 사회에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을 조금씩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다른 의원실 보좌진과 회식하며 ‘우리는 왜 국회에 왔는가’에 대한 의견을 나눴던 경험이 있다. 모 의원실 인턴 분이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요”라고 답하더라. 그 말이 참 인상 깊었다. 비록 나는 도망치지만 이제 세상을 바꾸고 싶은, 진정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고 싶은 청년들이 국회에 가득 들어차 한국 정치에 새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B.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많았다. 지난한 국회 생활에서 버팀목이 된 건 다른 의원실 인턴들이었다. 메신저 모임을 통해 업무 하면서 느꼈던 고충 같은 것들도 나누고, 간식 같은 것도 나눠 먹고(웃음). 때때로 국감처럼 큰 행사 이후에 단체로 술자리를 갖기도 한다. 재밌는 건 다른 정당 친구들과 정치 현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잘 없다. 직접적인 업무로 얽혀있는 사이가 아니라서, 국회 업무에 대한 경험만을 공유하기 때문에 서로의 업무를 온전히 존중할 수 있는 사이인 것 같다. 동기들 덕분에 인턴 생활을 이어온 것 같다. 항상 고마운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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