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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 직진남 고태용 "남들 안 가본 길 꿈꿔"



좀 노는 오빠, 힙한 셀럽. 올해로 론칭 11주년인 디자이너 브랜드 '비욘드클로젯(beyondcloset)'의 대표, 고태용의 첫인상이었다. 만나자마자 쇼룸 한가운데 있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는 누구보다 거침없고 당당했다.



미술을 배운 적도 없고 그 흔한 해외 유학 한 번 가지 않았다. 심지어 뒤늦게 의상학과로 편입해 26살에서야 디자이너가 되기로 했다. 그리고 1년 뒤 그는 서울컬렉션 최연소 데뷔 디자이너가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만든 티셔츠는 디자이너 브랜드 최초로 밀리언셀러가 됐다. 지금은 '핫함'을 넘어서 '걸어 다니는 브랜드'가 된 고태용 디자이너를 직접 만나봤다.



 

(사진=스냅타임)


 

  • 남들보다 늦은 시작, 남다른 시작



지금은 이름 석 자만으로 브랜드 가치가 있는 유명 디자이너지만 고태용은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인생을 살리라 생각했다. 졸업할 때쯤 되면 적당한 회사에 들어가 직장 생활을 하고, 가정도 꾸리며 살지 않을까 생각했다. 옷은 원래 좋아하긴 했지만 디자이너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26살에 대학 레포트 과제 때문에 서울패션위크를 보러 갔다. 맨 뒤에서 발꿈치를 들고 구경하던 그는 피날레에 등장하는 디자이너의 모습에 마음을 뺏겼다. 옷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누군가를 보고 미치도록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한번 꽂히면 앞뒤 가리지 않는 추진력은 그때부터 남달랐다. 직원이 두 명 뿐인 작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일하며 대중의 니즈를 파악하는 연습을 했다. 물건을 사입해서 팔기도, 직접 제작해 팔기도 하며 경험을 쌓았다.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은 점점 더 커졌다. 그렇게 모은 돈 1000만원으로 방 한구석에서 비욘드클로젯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처음 6개월은 집에서 혼자 시작, 이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월세 45만원짜리 조그만 사무실로 옮겼다. 1년 뒤 그는 27살에 최연소로 서울컬렉션에 데뷔했다.



당시(2008년)만 해도 디자이너 브랜드라 하면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무게감이 중요했다. 디자이너의 옷은 '현실감 없고 소화하기 어려운 비싼 옷'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고태용은 틀을 모두 깨버렸다. 디자이너 브랜드 최초로 상업용 세컨드레이블을 만들었고, 누구나 입기 쉬운 티셔츠를 내놨다. 곧이어 디자이너 브랜드 최초로 밀리언셀러 판매도 달성했다. 디자이너 브랜드 옷은 가격이 비싸고 입기 어려운 옷이라는 편견을 없앤 것이다.



(사진=스냅타임)


 

  • 파격을 두려워하지 않는 남자


데뷔부터 남달랐던 그는 이후 11년 간의 행보도 다른 디자이너들과는 달랐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소위 불문율이라고 여겨지는 관습도 아랑곳하지 않고 파격적인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



홈쇼핑 진출도 그 중 하나다. 그가 홈쇼핑에 처음 진출하려고 할 때 주변에서 "디자이너는 그런 거 하는 거 아니다"라며 모두가 말렸다. 홈쇼핑은 싼 제품을 파는 채널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고태용은 기존 홈쇼핑의 포맷에서 벗어나 유명 스타일리스트와 협업해 디자이너 브랜드의 전문성을 살렸다.



"전 그때도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어요. 옷을 어디서 파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죠. 어떻게 파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고태용은 CJ오쇼핑과 6년 째 계약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셀렙샵과 협업해 내놓은 '슈퍼주니어 롱패딩'이 화제 속에 완판되기도 했다.



국내 최초로 '프레젠테이션 패션쇼'을 도입하기도 했다. 기존 패션쇼와 달리 모델들은 서 있고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옷을 보는 방식이다. 뉴욕 패션쇼에서는 핫한 방식이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전문가와 바이어들이 주 관중인 뉴욕과 달리 서울 패션쇼에는 학생들도 많이 오는데, 학생들이 옷보다 모델에 관심을 두고 그 앞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실패했지만 그는 뿌듯했다. 국내에서 아무도 안 해본 걸 시도해봤다는 경험 자체가 그에겐 더 중요했다.



 

  • 탄탄대로만 걸은 것 같다고? 모르는 소리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 단숨에 정상까지 올라간 고태용을 '실패를 모르는 남자'로 보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 역시 수없이 실패해봤다. 대학생 때 각종 공모전에서 숱하게 떨어졌고 오디션 프로그램도 1회만에 탈락했다. 대학생 때 잠깐 한 인턴은 허드렛일이 일상이었다. 처음 원단을 떼러 동대문 시장에 갔을 때는 어리바리한 모습에 상인들로부터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숱하게 실패하면서도 '난 안되는구나'라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떨어진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실패는 성공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 생각했다.



"난 분명히 잘 될 거라는 확신이 늘 있었어요. 재수없다 느끼실 수도 있는데요, 전 틀림없이 유명해질 것 같았어요."



그는 디자이너를 꿈꾸기 시작한 순간부터 스스로가 꼭 성공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열심히 사는 나 자신을 믿었다. 실

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이 데뷔 이후로도 그가 남다른 길을 갈 수 있던 이유다.



"분명히 힘든 과정도 있었겠지만, 힘든 것보다 설레고 즐거운 게 훨씬 더 컸어요. 지금 잘 돼서 당시 기억을 미화하는 게 아니에요. 정말 저는 힘들다고 느낀 기억이 거의 없어요."



스물여섯, 인맥도 스펙도 없던 그에게 시작하기가 어렵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그걸 넘어설 만큼 즐겁고 설렜다"고 강조했다. 한달에 10만원, 20만원밖에 못 벌고 일주일 동안 두세 시간밖에 못 잤지만 그는 즐거웠다. 고태용은 "요즘 20대들이 힘든 걸 넘어설 만큼 즐거운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스냅타임)


 

  • 20대, 부지런히 모든 걸 흡수해라


"난 희망고문은 안 해요. 안 될 애들은 안 되거든요. 될 사람만 되는데, 부지런하면 성공해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라 생각하겠지만 세상에 생각보다 부지런한 사람 그렇게 많지 않아요. 정말이에요."



힘들게 하루를 버텨가는 20대에게 조언을 부탁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정말, 정말"이라며 몇 번씩이나 강조했다.



그는 디자이너를 처음 준비할때 1년 동안 하루에 3시간 이상 자본적이 없다. 8년 동안 매일 인천에서 신사동 사무실까지 칼같이 출퇴근 했다. 그동안 회사에 안 나온 적도 한 번도 없다.



"패션쇼가 끝나면 사람들이 다음날 뭐할 거냐고 물어요. 전 똑같이 출근해서 일해요. 다른 디자이너들 여행가고 그럴 때 난 다음날 일어나서 똑같이 나와서 일했어요."



그는 사람들은 본인을 '놀기 좋아하는 날라리'로 보지만 스스로를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표현했다.



"20대에게 가리지 말고 모든 걸 다 흡수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는 그렇거든요. 싸구려 음식, 저급한 영화부터 굉장히 고급스러운 럭셔리 음식, 영화까지 다 즐겨요."



비욘드클로젯 로고(이미지=비욘드클로젯 홈페이지)


 

국내 디자이너로서 정상까지 올라간 데다 더이상 받을 상도 높일 업적도 없는 그에게 새로운 목표가 있는지 물어봤다.



이미 11년간 남들이 하지 않은 도전을 해온 그는 앞으로도 남들과 다른 길을 걷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디자이너도 있구나, 라는 얘기가 나오는 새로운 롤모델이 되고 싶어요. 패션 디자이너가 이런 것까지 가능하구나, 라는 얘기가 나오는 사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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