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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고민 따뜻한 '한 컷 만화'로...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다(영상)



'암 수술 받으신 아빠 생신이라 서프라이즈로 비행기 6시간 타고 찾아갔어요. 아버지 속마음이 어떠셨는지 그려주세요.'
'가정주부 졸업하고 워킹맘으로 새출발하는 저를 그려주세요'

그의 인스타그램은 매일 독자들이 의뢰한 그림 요청 댓글로 북새통을 이룬다. 각양각색의 사연이 담긴 댓글들이 그의 손길을 거쳐 한 컷 툰(toon·만화)으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다'를 주제로 연재를 시작한 뒤 반 년 만에 팔로워가 20만명을 훌쩍 넘은 화제의 일러스트레이터 키크니(keykney) 작가의 이야기다. 남에게는 부끄러워 털어놓지 못한 엉뚱하고 유치한 상상, 육아와 가족, 취업, 연애 등 일상에서 겪는 다양한 고민까지 독자들의 모든 요청을 그림으로 그려준다. 수많은 청년들이 그의 한 컷 툰에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스냅타임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키크니 인스타그램 화면 캡쳐)


힘든 시기 극복하려 SNS 시작...소통에 매력

키크니란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 지는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10년차 뼈대 굵은 일러스트레이터다. 그 전까지 어린이 교과서와 관공서 홍보책자, 기업 홍보물 등에 삽화를 그렸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며 "'만화창작과'로 대학에 진학해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9년을 일했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은커녕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자체에 관심이 없던 그는 키크니란 활동명으로 그림을 연재하기 시작한 게 선배의 권유 때문이라고 했다.
키크니 작가는 "재작년에 그림 활동을 지속할 수 없게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 적이 있었다"며 "6~7개월 정도 쉬며 고민의 나날을 보내던 중 친한 선배가 SNS에 낙서 등 그림을 올려 독립출판을 하자고 제안한 게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키크니란 활동명도 선배 지인의 권유로 탄생했다. 그는 "자신은 키가 크고 선배는 코가 크니 '키크니코크니'가 어떻겠냐고 지인이 말해줬다. 그렇게 활동명을 짓고 나니 선배가 결혼을 해 이사를 가면서 혼자 남아 SNS 활동을 했다"고 했다.

그렇게 그린 낙서와 그림에 조금씩 독자들의 피드백과 응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소통의 매력을 느낀 그는 독자들이 요청하는 상황을 한 컷 만화로 그려주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7월부터 연재 중인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다'다. 약 7개월 간 220여 건의 독자 의뢰가 한 컷 툰으로 완성됐다.
워킹맘의 육아 고민, 세상을 떠난 가족과 반려동물, 취업준비생의 설움 등 독자들이 요청하는 의뢰에는 그들이 일상에서 경험한 크고 작은 고민과 애환이 담겨 있다.

웹상에 얼굴을 밝히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하는 키크니 작가. (사진=키크니 인스타그램 캡쳐)


재치와 감동, 무겁지 않은 위로가 독자 마음 울려

그의 그림에 달린 댓글에는 '그림을 보며 많은 위로가 됐다', '고민의 무게에 눈물 짓다가도 그림을 보며 피식 웃게 된다'는 피드백들이 넘친다. 언어유희를 적절히 활용한 캡션과 재치 넘치는 그림체로 어떤 고민이든 무겁지 않게 그려내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는 게 키크니 삽화의 특징이다.

그런 그도 처음부터 감동을 주는 사연을 그림으로 그려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가벼운 그림이 독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까 망설였다고 했다.
그는 "재기 넘치고 유머러스한 댓글 요청들만 그리다가 키우던 반려견을 떠나 보낸 견주의 요청을 그림으로 그려준 적이 있다"며 "3년 전에 무지개 다리를 건넌 강아지 또또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그려달라는 요청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독자분께 억지로 슬픈 감동을 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 그분에게 위로와 안정을 드릴 수 있을지를 생각하다 견주님을 다시 만나면 더 말을 잘 듣고 재미있게 놀기 위해 한글 공부하는 또또의 모습을 그렸다"고 말했다.

또또의 그림이 독자들의 마음을 울린 뒤 용기가 생겨 유머만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후 하나 둘 고민을 털어놓는 구독자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가족, 친구에게도 꺼내지 못할 고민을 얼굴도, 실명도 밝히지 않고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SNS에 털어놓을 수 있던 비결은 뭘까. 그는 "고민을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했다가 각별한 인간관계로 엮여 있단 이유로 건네는 섣부른 조언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며 "그럴 때는 오히려 익명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 공간에서 느슨한 유대관계로 엮인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편이 편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자신 역시 독자들에게 반드시 큰 위로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지는 않는다"며 "오히려 독자들의 고민에 섣부른 조언을 하는게 그분들께 다른 상처를 드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벼우면서도 불편하지 않은, 공감과 재미를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리려 노력하고 그만큼 자기검열을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키크니 인스타그램 캡쳐)


독자 간 연대에 감동...누구도 불편하지 않을 그림 그릴 것

그림이 주는 따뜻한 여운은 독자와 독자 간에도 이어지고 있다. 키크니 작가는 자신이 그림으로 그려주지 못한 힘겨운 사연 댓글에 다른 독자들이 꼬리 댓글로 대신 진심어린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일면식이 없는 서로의 행복을 빌며 위로와 응원을 건네는 독자분들의 모습을 보며 오히려 제가 감동과 위로를 받는다"며 "또 출판사, 거래처와만 소통하다 직접 독자들과 소통하고 피드백을 받으니 학창시절 친구들의 칭찬에 기뻐 열심히 그렸던 그 때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는 3월 그간 올린 작업물들을 모은 단행본을 출간하고, 5월에는 신생 웹툰 플랫폼에서 일상 만화 연재를 시작한다. 다른 업체와의 협업, 광고 협찬 문의까지 들어오면서 눈코뜰새 없이 바쁜 그지만 독자들을 위해 그림을 그리겠다는 신념은 끝까지 지킬 것이라고 했다.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다' 시리즈는 독자들이 원하는 한 할 수 있는 데까지 계속 해보고 싶어요. 제 스스로 안된다는 느낌이 올 땐 미련없이 접고 다른 재미있는 활동을 찾겠지만 그 누구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독자들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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