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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신문’ 성소수자 혐오 논란을 바라보는 시각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고려대학교 정문 전경. (사진=이미지투데이)


고려대학교 학보 '고대신문'이 학생 사회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지난 20일 발행된 고대신문 1871호의 기자 칼럼이 원인이었다. 고대신문은 기자 칼럼 코너인 '종단횡단'에서 '익지 않은 사과는 쓴 맛일 뿐'이라는 글을 실었다.

칼럼이 출고되자 학생들 사이에서 성소수자 혐오 논란이 불거졌다. 페이스북, 에브리타임 등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학생들은 "고대신문에서 혐오를 정당화하는 글을 실었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신문 발행 후 논란이 계속되자 고대신문은 이튿날 편집국장 명의의 사과문을 온라인 웹사이트에 게재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인 모양새다. 고대신문이 내놓은 칼럼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토론'에서 시작된 칼럼…"강요된 사과는 씁쓸"

논란이 되는 칼럼은 지면 발행 이틀 전인 지난 18일 고대신문 온라인 웹사이트를 통해 먼저 공개됐다. 칼럼을 작성한 박진웅 기자는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하는 '토론' 문화를 좋아했다"면서 "(토론 문화의) 자유로움이 오래가지 못했다"고 글을 시작했다. 입학 초 수강했던 어느 수업 시간 도중 벌어진 사건 때문이다. 당시 토론 수업의 주제로 '동성애'가 발제됐고, 한 학생이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라고 발언했다. 그러자 수업을 듣던 학생들 사이에서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박 기자는 "거친 요구는 몇 분이나 이어졌고, 교수가 나서서야 겨우 진정됐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논란이 된 고대신문 칼럼 '익지 않은 사과는 쓴 맛일 뿐'의 일부. (사진=고대신문 웹사이트 갈무리)


칼럼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물의를 빚었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으로 비유했고, 여당이 강력히 항의하며 사과를 요구한 사건이었다. 칼럼은 토론 수업과 국회의 사건을 함께 서술하며 "우리 사회에 만연해진 '사과 요구'와 그에 따른 '사과'의 도식은 … 사과(謝過)와 거리가 먼 승패를 가리려는 기싸움으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고개 숙일 책임까지 있는걸까"라며 "사과하라는 일방적인 말은 상대를 억압하려들 뿐"이라고 주장했다. 칼럼 말미에는 다시 토론 수업의 이야기로 돌아와 "어느 곳보다 열려있어야 할 대학의 토론공간에서까지 이러한 광경이라니. 강요된 사과는 씁쓸하고 익지 않은 사과는 쓸 뿐"이라고 끝을 맺었다.

편집국장 명의 사과문…시선은 여전히 찌릿

학생 사회에서 "칼럼이 성소수자 혐오를 감싸고 있다"는 항의가 지속되자, 고대신문은 지난 21일 박형규 편집국장 명의로 사과문을 게재했다. 박 편집국장은 글에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우선 드린다"면서 "해당 칼럼은 전체 기자의 동의를 통해 작성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성소수자 혐오에 대한 옹호가 포함된 것을 명확히 인지했다"며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부적절한 칼럼이었다는 것을 반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칼럼의 성소수자 혐오 인식 논란이 일자, 이튿날 편집국장의 사과문이 게재됐다. (사진=고대신문 웹사이트 갈무리)


사과문 게재와 함께 해당 칼럼은 고대신문 웹사이트, 페이스북 페이지 등의 온라인 사이트에서 삭제됐다. 지면 신문은 발행 후 다시 회수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 그대로 남았다. 비록 온라인 칼럼은 삭제됐지만 고려대학교 관련 커뮤니티에 캡처 화면으로 기자 이름과 함께 게재돼있어, 이른바 '박제'된 상태다.

고대신문의 사과문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 학생들은 사과문마저도 대단히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대신문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한 학생은 "사과문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칼럼을 쓴 기자를 해고하라는 댓글도 올라왔다.

고대신문의 사과문이 게재됐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여전히 따갑다. (사진=고대신문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스냅타임이 만난 재학생들도 고대신문 칼럼에 비판적인 의견을 밝혔다. 경영대학 조현채(가명·25) 씨는 "입시 성적이 높다고 감수성이 깊은 게 아니었다. 그들(고대신문 구성원)이 정말 ‘기자’라면 더욱 책임감을 가져야 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편 보건과학대학 주예지(가명·23) 씨는 "사과문에선 그냥 사건을 나열하기만 하고, 죄송하다고 반복하는 것밖에 없었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또 주 씨는 "후속 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을 내놨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깊어진 논란…곳곳에서 연대와 비판 이어져

고대신문 칼럼 논란이 사과문과 함께 점점 깊어지면서, 학생 사회 곳곳에서 연대 성명과 비판이 잇따랐다. 고려대 중앙 성소수자 동아리 '사람과사람'은 지난 25일 고대신문의 해명을 요구하는 대자보를 교내에 부착했다.

고려대 중앙 성소수자 동아리 '사람과사람'에서 부착한 규탄 대자보. (사진=사람과사람)


사람과사람은 대자보에서 "해당 발언(칼럼 속 토론 발언)은 분명한 혐오 표현"이라고 운을 뗐다. 성적 지향성을 개인의 잣대로 '일반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고 재단하려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어 "고대신문이 가해자를 조직적으로 두둔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혐오 발언을 거를 수 있는 데스킹 시스템이 부족한데도 개선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박 편집국장 명의의 사과문에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얘기다. 이어 사람과사람은 대자보에서 "고대신문은 오프라인 자보를 통해 사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대자보는 사람과사람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학내·외 단체가 함께했다. 학내에서는 고려대 총학생회와 동아리연합회, 교지편집위원회, 영자신문사 등의 학생 단체가 동참했다. 학외 단체는 전국 각지 대학의 성소수자 모임과 트랜스해방전선 등 전국 단위 성소수자 단체가 힘을 보탰다. 사람과사람이 대자보에서 밝힌 연대 단체는 총 62곳에 달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언론 비평지 '대학언론비평(대언비)'도 고대신문 칼럼 논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대언비는 '고대신문, 망가진 대학언론의 교본'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민주주의는 필자 생각대로 무제한의 자유가 허락되는 방종이 아니다"라며 "기자 개인의 혐오에 언론이라는 외피를 둘러 면죄부를 주고 싶었던 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고대신문 데스킹 논란, 처음이 아니다

고대신문의 데스킹 논란은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해 11월 고려대 축제에 티베트 깃발이 등장했고, 이를 본 중국 유학생들과 중국 대사관이 강력하게 항의했던 사건이 있었다. 고대신문은 당시 '티베트 기 논란, 더 신중했어야'라는 사설에서 "역사적, 정치적 맥락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민주주의와 인권 차원에서만 바라볼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본교 학생사회가 국제 사회에 대한 인식을 더 넓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주장하며 글을 마쳤다.

사설이 발행된 뒤 학생들 사이에서 "중국 관보(官報)냐", "고대신문이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이 잇따랐다. 노동자 매체 '노동자연대'의 독자 편지란에서도 "소수민족의 현실을 도외시한 채 중국의 압력에 굴복한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고대신문은 입장문을 통해 데스킹 과정의 판단 부족을 인정했다. 고대신문은 "신문 제작 과정에서 충분히 조율하지 못한 책임을 느낀다"면서 독자들의 반론 기고를 받겠다고 말했다.

대언비는 이번 고대신문 논란에서 지난해 있었던 사설 논란을 함께 서술하며 "불과 넉 달 사이에 데스킹 과정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문이 두 번이나 발표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대신문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구조적인 문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물먹은 솜처럼 불어난 논란 속에서, 고대신문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람과사람이 보낸 항의 메일에서도 고대신문은 “사후 처리에 대한 약속을 사과문에서 섣불리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사과문을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 대자보도 쓸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온라인 사과문 발표 이후 추가 대응이 전무한 가운데, 학생 사회의 비판은 계속해서 늘고 있다.

/스냅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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