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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탈자, 폭행, 집합”..악습에 멍드는 예체능계 신입생

(사진=이미지투데이)


“처음엔 혼자여도 나만 잘하면 되겠지 싶었어요. 그런데 이게 계속되니까 너무 외롭더라고요. 더 속상했던 건 친해질 수 있었던 친구마저도 과탈자라는 이유로 말을 섞지 못하게 해서 집단적으로 한 사람을 소외시켜버리니까 그 부분이 많이 속상했던 거 같아요”

충청권 모 대학교 체육 대학 2019년도 신입생인 김소은(가명·20·여) 씨는 ‘과탈자’라는 용어를 설명하며 힘겹게 당시 심정을 이야기했다. 부푼 기대를 안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과 생활 동의 여부를 물었을 때 과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겠다고 말한 것이 문제였다. 이후 김 씨는 마치 왕따 취급을 당해야 했다. 선배들은 김 씨를 격리하듯 대했고, 김 씨의 동기들에게 김 씨와 말 섞기를 금지하고 취업정보, 휴강정보, 강의실 변동정보 등 학교생활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게 지시했다. 김 씨는 결국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학교를 자퇴했다.

최근 몇 년간 군대와 직장에서 위계에 의한 갑질이 논란이 된 후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배움의 장인 대학에서 선후배 간 악습이 남아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예체능계 전공이나 대학에서 이런 위계적이고 폭력적인 악습이  더욱 쉽게 고쳐지지 않아 끊임없이 피해 학생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사진=김소은(가명) 씨 제공) 신입생에게 공지됐다는 폭력적인 규칙들


입학하자마자 신입생들에게 배포되는 폭력적인 규칙

체육 대학에 입학한 김 씨는 입학하자마자 동기를 통해 학과 규칙이라는 내용을 전해 받았다.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칙은 24개나 있었고 인사법이나 전화, 문자하는 법도 정해져 있었다. 스냅타임이 확인한 규칙에는 관등성명, ‘다’ 또는 ‘까’로 끝나는 문장 사용하기, 압존법 등 과거 군대 문화를 그대로 가져온 것들이 있었고, 문자할 때 띄어쓰기 사용하지 않기 등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게다가 이어폰 끼고 다니지 않기, 주머니에 손 넣지 않기 등 사소한 행동까지 통제하는 규칙이 존재했고, 메신저로 연락을 하다가 선배가 10분 정도 답이 없으면 "선배님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보내야 한다는 수직적인 문화를 강조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심지어 술을 마실 때는 누구와 먹는지 보고해야 한다는 등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규칙 역시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강압적인 분위기에 김 씨는 조교와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교수의 돌아온 대답은 “단체에 소속돼서 집단생활을 하면 될 일”이라고 할 뿐이었다. 김 씨는 학교에서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김 씨는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며 “자퇴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2007년에도 여러 학과에서 훈련엠티라는 명목하에 얼차려를 시켜 논란이 된 적이 있는 학교였다.

(사진=김소은(가명) 씨 제공) 신입생들에게 공지된 인사법 등


지역, 학교 상관없이 예체능 전공 전반적으로 깔린 위계질서

다른 학교 음대에 재학 중인 정보민(가명·24) 씨도 이러한 학내 악습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정 씨는 “음대 특성상 연주회를 자주 하는데 의자나 보면대 옮길 때 실수하거나 소리를 내면 끝나고 모여서 다 머리를 박았다”며 끔찍한 기억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후배들 앞에서 후배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배들에게 뺨과 머리, 가슴 배 등을 수차례 맞았다고 말했다. 정 씨는 “사람들 앞에서 욕 듣고 맞는 게 너무 수치스럽고 힘들었다”며 이후 지금까지 정신과 치료와 상담을 병행해서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 씨는 그럼에도 신고를 하거나 외부에 알리지 못한 이유에 대해 “그렇게 했던 사람들은 모두 학교를 나갔다”며 “음악을 하고 학교에 다니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교수님들한테 이야기해도 “먼저 선배들한테 다가가 보아라”라는 답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정 씨는 “음대생들도 체대생들과 비슷하게 단합을 이유로 많이 혼난다”며 “현악이나 관악을 전공하는 친구들은 오케스트라 곡을 같이 맞추니깐 맘이 잘 맞아야 한다는 이유로 혼나고, 성악과 친구들도 합창을 하니까 비슷한 이유로 혼난다”고 말했다.

정 씨는 “시대가 어느 땐 데 이런 문화가 남아 있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라며 “학교 일 년 먼저 들어온 게 특별히 대단한 것도 아닌데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김 씨와 정 씨뿐 아니라 스냅타임이 만난 미용을 전공하는 재학생, 연기를 전공하는 재학생들도 집합과 기합 등의 경험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카카오톡 대화 내용 캡쳐) 충청권 모 대학 총학생회에 문의하려 연락을 취했지만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충청권 모 대학 학생복지과,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있다

김 씨가 자퇴한 학교에서 학생 업무를 담당하는 학생복지과 측은 “학기 초마다 그런 일이 많이 발생해서 교수님들께 문서를 보낸다”며 “재학생이나 휴학생들이 MT 가서도 그렇고 평소에 학생들에게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관리를 잘해달라고 공지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학생복지과 측은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얘기는 하겠지만 전통이라는 핑계로 반복되는 것 같다”며 “그런 문화가 바뀌고 있는 것 같은데 여전히 몇몇 선배들에 의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명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학년별 상담교수들이 구성되어 있어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상담도 할 수 있는 구조이다”라며 “학교 측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 학생상담센터에 문의했으나 학생상담센터 측은 본인들의 업무가 아니며 학생상담센터에서는 따로 할 말이 없다고 답변했다.

시민단체, 결국 학내 구성원 모두가 나서 타파해야

이경열 체육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집단 문화를 강조하는 폐쇄성이 강한 전공일수록 특히 이런 악습이 더 심한 것 같다”며 “교수나 학교 측도 가부장적인 집단생활을 많이 했기 때문에 집단생활 경험이 내재화되어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이 사무국장은 “집적 학교를 찾아가 이런 악습을 없애는 캠페인을 하고 권고하기도 했었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교수님들이 본인들의 문화라며 옹호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 행사가 있거나 훈련이 있을 때 모으기도 쉽고 교수나 학교 입장에서는 빠르게 일 처리를 할 수 있어서 효율성 측면에서 이런 문화를 지키려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인권 문제”라고 의견을 밝혔다.

아울러 이 사무국장은 “체육시민연대에서 교육부에 정책을 제시하기도 하고, 공청회도 수차례 진행했다”면서도 “결국 학교 문제는 학생과 교수, 학교 본부 전체가 이러한 악습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각 학교에 인권센터를 설치하고 군기 문화를 금지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냅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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