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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배낭여행] 아름다움 뒤 아픈 역사…기독교 1호 국가 아르메니아

익숙한 듯 새로운 풍경이 있는 아르메니아
최초의 기독교 국가에서 수도원 투어를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기념관에 남은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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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빌리시에서 만난 여행자가 아니었다면 ‘예레반’이란 이름은 영영 모를 수도 있었다.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예레반(Yerevan)’은 한번 가볼 만해요. 정말 좋아요.”

계획에 없던 아르메니아(Armenia) 여행을 떠나게 된 건 바로 이 말 때문이었다. 조지아(Georgia) 수도 트빌리시(Tbilisi)의 한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는 자기 여행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을 추천했다. 무슨 매력이 있는지는 가보면 알 거란 말만 짧게 덧붙였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여행 얘기를 계속하는데, 이미 머릿속엔 ‘예레반으로 가볼까’란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사실 여행을 시작한 지 거의 80일이 돼가면서 다음 장소에 대한 기대 없이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머릿속으로 들이닥친 ‘예레반’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풍기며 그곳으로 가도록 생각을 부추기고 있었다. 비록 아르메니아에 대해 아는 건 하나도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그곳엔 무슨 새로운 것이 기다리고 있을까.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그렇게 아르메니아로 가는 택시를 탔다.

화려하진 않지만 무게감 있어 보이는 타테브 수도원 교회의 외관.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6명의 필리핀 친구와 함께 한 수도원 투어

예레반 도착 이튿날 숙소에서 만난 필리핀 여행자 론(Ron)의 제안으로 같이 당일 투어를 하게 됐다. 애초에 별 계획 없이 온 데다 투어 가격도 꽤 합리적인 것 같아서 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른 새벽 투어 버스에 올랐더니 관광객 4명과 가이드 1명이 타 있었는데, 모두 필리핀 사람이었다. 관광객은 그렇다 쳐도 가이드는 아르메니아 사람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면서 투어 비용이 저렴했던 이유가 이해가 됐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출발을 하고 있었고, 그렇게 한국인 혼자 6명의 필리핀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신기한 투어가 막을 올렸다.

아르메니아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를 국교로 지정(301년)한 국가다. 그래서였을까, 투어는 수도원으로 시작해서 수도원으로 끝났다.

타테브 수도원으로 가는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풍경.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투어의 첫 번째 방문지는 예레반에서 남동쪽으로 3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타테브(Tatev)’ 수도원이었다. 절벽 위에 세워진 이 수도원으로 가려면 세계 최장 논스톱(non-stop) 케이블카를 타고 가야 했는데,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이는 험준한 산맥과 그 가운데 외로이 서 있는 수도원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극적인 감동을 선사했다. 9세기에 처음 세워진 뒤로 파괴와 재건을 거듭 겪었다는 수도원의 내외부는 전혀 화려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금 엄숙했다. 설산을 배경으로 절벽에 위태롭게 서 있는 타테브 수도원은 그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파수꾼 같은 느낌을 줬다.

타테브를 뒤로 하고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또 다른 수도원 ‘노라방크(Noravank)’였다. 타테브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이곳은 수도원을 둘러싼 절벽들이 병풍처럼 서 있어 타테브와는 또 다른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타테브가 약간 어둡고 엄숙한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수도원과 그 배경이 되는 절벽 모두 밝은 느낌이 났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건 2층짜리 교회 정면에 나 있는 계단이었다. 성인 한 명이 올라가기에도 좁은 계단 폭 때문에 얼핏 위험해보였지만 관광객들은 그런 점에 더 끌렸는지 줄을 지어 계단을 통해 2층을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해질녘 저무는 태양빛을 받은 교회는 노란 빛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주변의 산과 절벽들을 병풍 삼아 서 있는 노라방크 수도원의 교회.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노라방크 근처에서 와인 공장 견학까지 마치고 나니 어느덧 해가 완전히 떨어졌다. 긴 이동시간으로 쌓인 피로까지 겹쳐져서 마지막으로 들른 ‘코르비랍(Khor Virap)’ 수도원에서는 ‘아라랏산(Mount Ararat)’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만 찍었다. 성경에서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다고 알려진 아라랏산은 코르비랍에서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였지만 실제로는 터키 국경 너머에 있어서 당장 가볼 수는 없다고 가이드가 말해줬다. 언젠가 터키에 가면 저곳에 올라 방주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찬바람에 얼어붙은 손을 녹이며 예레반으로 향하는 투어 버스에 몸을 실었다.

홀로코스트의 원형,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기념관

조지아로 돌아가기 전날, 아르메니아에서의 마지막 날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기념관(Armenian Genocide Museum)’에 가보기로 했다. 사실 직접 와보기 전까지는 아르메니아란 나라의 존재 자체도 몰랐던 터라,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역시 알지 못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 말고도 아르메니아란 나라에 대해 더 알고 싶단 마음이 발걸음을 기념관으로 이끌었다.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의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기념관이 자리한 추모공원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추모탑이 보였고 그 앞으로 집단학살 희생자들을 기리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 보였다. 12개의 기둥에 둘러싸인 불꽃 앞으로는 방문자들이 바친 꽃들이 놓여 있었고 공원 내 스피커에선 엄숙한 분위기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공원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지하로 나 있는 기념관 입구가 나왔다. 기념관 내부는 총 12개의 홀로 구성돼 있었고 전시물들은 3개 국어(아르메니아어, 러시아어, 영어)로 쓰여 있었다. 2015년에 집단학살 100주년을 맞이해서 새 단장을 한 기념관은 매우 깔끔하고 구성도 상당히 알찼다. 하지만 그 전시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기념관의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아르메니아인들은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에 의해 잔인한 방법으로 두 번이나 집단학살 당했다고 한다. 특히 1차 세계대전 당시에 자행된 두 번째 집단학살에선 전체 300만 아르메니아인 중 150만 명 이상이 죽었으며, 이는 현대사 최초의 조직적 학살사건으로 일컬어지고 있다고 한다. ‘집단학살’이란 뜻을 가진 ‘제노사이드(genocide)’란 단어가 생기게 된 계기, 그리고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았던 나치의 유대인 학살의 원형이 바로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이란 사실도 이곳에서 알게 됐다.

3개 국어로 된 설명문에는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의 배경과 진행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집단학살이 어떤 배경, 어떤 방식으로 자행됐는지를 역사적 기록들이 분명히 증거하고 있지만, 정작 가해자인 터키(구 오스만 제국)는 아직까지도 집단학살을 부정하며 단 한 번도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까지 ‘형제의 나라’로만 알고 있던 터키에게 이런 과거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두 시간 넘게 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어떻게 인간의 머리에서 이런 잔인한 일을 저지를 생각이 나왔을까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니 우리 한국의 현대사에서도 비슷한 장면들이 적지 않았다. 제주 4·3 사건 당시 제주도민 학살, 6·25전쟁 당시 이념에 따른 민간인 학살, 베트남전쟁에서의 민간인 학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 학살까지. 학살의 규모는 다를지언정 그 본질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관을 방문하기 전까지 아르메니아는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역사적 유적들이 빛나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 민족과 비슷한, 어쩌면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큰 상처가 있음을 집단학살 기념관에서 알게됐다.

/스냅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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