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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의 키워드] 기생충 신드롬과 데칼코마니 현실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이 현충일에 83만명을 동원하며 누적관객 500만명을 돌파했다. 7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기생충'은 전날 83만1천900명을 불러들이며 누적 관객 수 535만5천692명을 기록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영화관 모습. (사진=연합뉴스)


끊이지 않는 사건 사고로 한 주 간 수많은 정보들이 홍수처럼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아울러 빠르게 변하는 세태를 반영한 시사 용어와 신조어들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죠. 스냅타임에서 한 주를 강타한 사건과 사고, 이슈들을 집약한 키워드와 신조어들을 알기 쉽게 정리해주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매 주말 하나의 키워드를 한 주 간 발생한 이슈들과 엮어 소개 합니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잖아요."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개봉 8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개봉하기가 무섭게 화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 작품은 한국 영화 100년사 최초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는 영광 때문에만 인기를 얻고 있는 건 아닌 듯합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저마다의 감상과 해석을 남긴 관람 후기 게시글들이 넘쳐나고, 영화가 남긴 여운을 다시 느끼려 'N차관람'까지 감행하는 관객들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면 말이죠.

극심한 빈부격차와 양극화를 설명하는 '마태효과'란 용어가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마태효과의 징후들을 박 사장(이선균)과 기택(송강호) 두 가족을 통해 보여줍니다.
이 영화가 그려내고 있는 현실과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에 국내는 물론 세계의 관객들이 깊이 공감하고 몰입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영화 속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 때문이죠.

최근 잇따라 발표된 각종 설문조사 결과와 이슈들도 빈곤의 굴레와 세습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방법을 잃어버린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대변합니다. 영화 기생충에 열광하는 관객들의 심리, 최근의 이슈들과 함께 '마태효과'란 키워드로 풀어봤습니다.

지난 28일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오른쪽)과 배우 송강호.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8일 만에 500만 돌파...기생충이 그린 '마태효과'

지난 30일 국내 개봉한 영화 '기생충'은 지난 현충일(6일) 연휴에만 무려 83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극장가를 장악했습니다. 7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기생충'은 지난 6일 83만 1564명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로써 개봉 8일 만에 누적 관객수 535만 5356명을 기록했죠.

영화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기세라면 이번 주말 700만 관객 돌파까지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마태효과'는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는'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설명하는 사회학 용어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해지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성경의 마태복음 25장 29절에 등장하는 구절에서 비롯한 개념이죠.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K. 머튼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아웃라이어'란 미국의 베스트셀러에 이 말이 인용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부와 명예를 이미 지닌 사람은 본인이 가지고 있던 자산과 지위로 더 큰 부와 명예를 쌓습니다. 양질의 교육과 경험, 기회로 재산을 축적할 뿐 아니라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도 여유넘치며 본인이 가진 걸 남들에게 베풀 정도로 관대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진 기회의 폭은 애시당초 좁습니다. 사다리에 올라 탈 기회가 없어 더욱 궁핍해지고 고난에 더욱 내몰립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에서 박 사장 가족과 기택 가족의 삶을 등치해 보여줌으로써 부의 재생산과 빈곤의 악순환을 극명히 드러냅니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영화 포스터의 문구가 무색하게, 빈자는 본인의 가난을 경감 받거나 부자의 행복을 나눠가질 수 없음을 여러 상징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국내 관객들의 반응은 크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유머와 불편한 현실을 적절히 조합해 풀어낸 수작이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한국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지나치게 부각시켰다는 쓴소리도 나오고 있죠.

회사원 신현지(27)씨는 "극심해지는 경제·문화적 빈부격차가 낳는 계층 간 소통의 부재와 갈등을 국가가 전혀 보호해주고 있지 않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불편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대학생 김정철(25)씨는 "영화를 보는 내내, 끝난 이후에도 내용이 씁쓸하고 처절해 마음이 불편했지만 이같은 현실 고발을 통해 양극화 해소에 대한 논의가 촉진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사진=국회입법조사처 '저출산 관련 지표의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 갈무리)


결혼·출산도 양극화...'기생충'과 현실의 데칼코마니

최근 발표된 각종 설문조사 결과들도 기생충 속 현실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6일 국회 입법조사처는 고소득 남성일수록 결혼 비율도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저출산 관련 지표의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임금수준 소득 1분위 남성의 기혼자의 비율은 6.9%로 가장 낮은 반면, 10분위는 82.5%로 가장 높게 나왔기 때문이죠. 최저-최고 소득 집단 간 혼인율이 12배 격차나 벌어진 것입니다.

출산 비중 역시 소득 격차에 따른 차이가 컸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출한 2007년부터 2018년까지 12년간 보험료 분위별 분만 현황에 따르면 분만 건수는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대다수 분위에서 감소하고 있으나, 소득계층별로 차지하는 비중에서는 저소득층은 축소되고 고소득층은 확대되는 경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소득층인 최하위 1분위(하위 10%)에선 2007년 분만 비중이 7.67%에서 2018년 5.92%로 낮아진 반면 최고소득층인 10분위(상위 0~10%)는 4.96%→5.33%로 늘어났습니다.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혼인·출산의 하락 양상이 사회계층별로 불균등하게 나타난다"며 "사회 양극화가 혼인격차에 이어 출산격차로 연속해 중첩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습니다.

청소년들의 장래희망마저 소득에 따라 양극화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이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와 중학교 1~3학년 학생 391명에게 장래희망 직업군 1,2순위를 설문 조사한 결과, 고위공무원이나 기업최고경영자(CEO) 등 높은 사회적 지위를 꿈꾸는 저소득층 청소년(중위소득 60% 이하)은 1.15%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저소득층이 아닌 또래 다른 청소년들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소득이 높은 '법률 및 행정 전문직'을 1순위로 고른 저소득층 학생도 1.2%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소득 격차에 대한 성인들의 인식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보사연이 성인 3873명을 설문한 결과 '한국의 소득 격차가 너무 크다'는 질문에 동의한다는 답변이 85.4%나 기록했기 때문이죠. '성공하려면 부유한 집안이 중요하다'고 대답한 비중도 80.8%나 됐습니다. 개인의 노력으로 사다리를 오르기 어렵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 보사연 측은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한 인식이 사회에 아노미와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며 "한국은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자살률과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는 등 불안정성이 고조되는 만큼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스크린 양극화 아이러니 낳을까 우려 

그래서일까요, 영화계 안팎에서는 '기생충'의 거센 흥행을 환영하면서도 스크린 양극화와 독과점 논란에 휩싸이진 않을까 우려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앞서 개봉했던 '어벤저스 : 엔드게임'이 스크린독과점 기록을 경신해 영화 상영의 다양성을 해쳤던 상황들이 불편했다"며 "흥행 요소만 생각하고 다양성을 억압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무게있는 사회적 메시지로 세계에 귀감이 된 작품의 의미가 퇴색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극장가에서 스크린독과점을 판단하는 스크린 수의 마지노선은 대략 2000개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생충의 스크린 수는 대략 1700~1800여개 사이로 상영점유율은 44%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상영 독과점을 우려하는 여론을 의식해 조심하는 분위기로 읽힙니다만 여전히 스크린 수가 많다는 문제 제기도 나오는 실정입니다.

최광희 영화평론가는 "어벤저스 때 워낙 뭇매를 맞아 배급사에서 약간 조심을 하고 있는 듯하다"면서도 "그럼에도 절반에 가까운 스크린을 가져갔으니 엄밀히 말해 독과점이 맞다. 양극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생충'이란 영화가 흥행 양극화를 부추기는 스크린 독과점을 하고 있는 게 아이러니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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