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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배낭여행] 킬리만자로 고산병에 죽을뻔...최악 순간 톱2

첫 여행의 추억은 강렬하다. 가장 좋았던 순간을 생각해보면 ‘이것도 좋았고, 저것도 좋았지’하면서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가장 싫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그건 바로 이거였어!’하는 확답이 나오기 쉽다. 소매치기 당한 일, 현지인에게 속아 돈을 날린 일, 중요한 비행기나 버스를 놓쳤던 일 등등. 싫었던 기억은 사람의 뇌리에 훨씬 깊게 박히는 것 같다.

생전 처음 혼자 떠나는 배낭여행에 좋은 일만 가득하긴 어렵다. 경험 부족, 정보 부족은 의도치 않은 당혹스런 순간을 선사한다. 더구나 사람들도 잘 안 가는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로의 여행이라면? 여행자가 계획과 준비를 꼼꼼히 하지 않는 성격이라면? 말 그대로 '대환장파티' 예약이다. 오늘은 그 파티 한가운데로 들어가보려 한다. 2015년에 떠난 인생 첫 배낭여행, 아프리카에서의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순간’ 톱2를 소개한다.

아프리카 여행 시작을 알렸던 킬리만자로 트레킹에선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렸다.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탄자니아 : 버스, 기차, 비행기 다 놓치고 현기증으로 쓰러진 썰

‘탄자니아(Tanzania)’에 도착하자마자 떠난 4박5일짜리 킬리만자로 트레킹은 꽤 알찼다. 다만 체력이 다 바닥나 버렸다. 거기다 산 위에서 고산병에 걸렸던 후로 현지 음식은 쳐다보기도 싫어져서 매 끼니를 거르고 물만 마시고 있었다. 다음 행선지는 ‘잠비아(Zambia)’였는데, 잠비아로 가는 기차를 타려면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이란 도시로 먼저 가야 했다. 킬리만자로에서 내려온 직후라 쉴 시간이 필요했지만, 1주일에 두 번만 출발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 산에서 내려온 바로 다음 날 떠나는 아침 버스를 예매했다. 예매는 숙소 직원에게 대신 부탁했다. 그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다음 날 오전 6시 출발인 버스는 정류장에 7시가 훌쩍 넘어서 나타났다. 기차는 오후 4시 출발이고 이곳 ‘아루샤(Arusha)’에서 기차역이 있는 다르에스살람까진 7~8시간 정도 걸린다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었다. 타이트한 일정에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버스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리는데 티켓 검사하던 사람이 티켓을 보더니 이 버스 티켓이 아니라고 했다. ‘뭐라고?’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제대로 들은 거였다. 알고 보니 전날 숙소 직원에게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회사의 버스를 예매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직원은 자신이 아는 다른 회사 버스를 예매한 것.

머리가 하얘진 채 배낭을 다시 매고 10분 정도 달려서 티켓에 나온 버스의 정류장으로 가봤지만 버스는 이미 떠난 뒤였다. 울상이 되어 정류장 직원에게 하소연을 하니 직원이 지금 떠나는 다른 버스에 자리가 남았다고 타라고 했다. 시간은 이미 오전 8시가 다 됐고 기차는 못 탈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란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는데, 전혀 다행이 아니었다.

그 버스는 외국인이 한 명도 없는 현지인들만 타는 버스였다. 기차를 타려면 최대한 빨리 가야 하는데 버스 속도는 시속 30km를 넘지 않는 듯했고, 버스 내부에 에어컨은커녕 좌석에 쿠션도 없었다. 버스보다는 닭장에 가까웠다. 갈 길이 먼데 버스는 시도 때도 없이 멈춰서 사람과 짐을 가득 태우고 실었다. 버스 맨 앞에 달린 작은 티비에선 큰 소리로 현지 음악과 드라마가 끊임없이 나왔다. 날은 덥고 자리는 좁고 불편한 데다가 기차도 놓치게 생겼는데, 귀에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시끄러운 티비 소리가 울려댔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예정대로라면 오후 4시 이전에 기차역에 도착했어야 했다. 실제로는 1주일 후에야 이곳에서 기차를 탔다.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비극은 계속됐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국에 있는 친동생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1주일 전쯤 잘못 예매한 비행기 티켓의 취소를 부탁했는데 저가 항공 티켓이라 결국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비행기 티켓 취소가 안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오늘 출발하는 그 비행기를 타려면 지금 이 버스에 타 있을 게 아니고 케냐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어야 했다. 평정심이 완전히 바닥났다. 나쁜 일은 왜 항상 겹쳐서 올까.

자책, 불평, 분노, 후회를 거듭하는 동안에도 버스는 그저 천천히 움직였고, 출발 14시간 만인 밤 10시에야 다르에스살람 외곽에 도착했다. 4시 기차는 진작에 놓쳤고 이젠 체력뿐 아니라 정신력까지 녹초 상태였다. 택시 기사에게 돈을 뜯기면서 겨우 숙소에 도착해서는 몸도 가누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는데 머리가 어지러워 눈을 잠깐 감았다 뜨니까 몸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현기증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진 거였다. 놀란 마음에 다시 침대로 기어갔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화장실로 걸어가는데 이번엔 눈을 감았다 뜨니까 구부정한 자세로 몸이 벽에 기대 있었다. 킬리만자로 트레킹 이후로 끼니를 굶는 중에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겹쳐진 탓으로 보였다. ‘이러다 정말 죽겠다’ 싶어서 화장실을 갔다가 바로 숙소 식당으로 내려가서 억지로 아침을 먹었다.

아프리카에 온 지 9일째. 킬리만자로에선 고산병 때문에 죽을 뻔했고, 내려와서는 버스, 기차, 비행기 모두 놓쳐버려서 몸도 마음도 힘들기만 했다. 여행이 원래 이렇게 힘든 걸까? 나는 왜 여기에 왔을까? 첫 여행의 시련은 혹독하기만 했다.

왼쪽은 우기에 찍은 빅토리아 폭포의 모습. 오른쪽 사진의 오른쪽 절벽에서 원래 저렇게 물이 쏟아져야 한다.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잠비아 : 건기에 빅토리아 폭포 가서 절벽만 본 썰

‘여행은 그냥 아무 때나 떠나면 되는 거 아닌가?’

그 생각이 산산이 깨진 곳이 바로 ‘빅토리아 폭포(Victoria Falls)’였다. 세계 3대 폭포, 40km 밖에서도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곳, 폭포 구경할 땐 우비를 꼭 챙겨야 할 정도로 물이 많이 쏟아지는 그곳. 잠비아(Zambia)로 오는 동안 만난 사람들은 빅토리아 폭포가 얼마나 ‘쩌는’ 폭포인지를 입이 닳도록 칭찬했다. 빅토리아 폭포는 잠비아 여행을 결심한 유일무이한 이유였다.

물론 빅토리아 폭포로 가는 길이 순탄치는 않았다. 기차를 놓치고, 기차 2층 침대에서 천장만 보면서 2박3일을 달리고, 그 기차가 14시간 연착을 하고, 버스로 또 11시간 이상 달린 끝에야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마을 ‘리빙스톤(Livingstone)’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폭포를 볼 수 있다면야, 이 정도쯤은 참을 수 있었다.

대망의 빅토리아 폭포를 만나러 가는 날, 폭포 입구에 도착해서 입장료를 내고 폭포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날은 더웠지만 폭포에 가면 시원할 테니 상관없었다. 땡볕을 달궈지면서 걸은 끝에 폭포가 보인다는 곳에 도착했는데 거기엔 폭포(...)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가느다란 물줄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주변엔 물 대신 길게 이어진 절벽뿐이었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저기 먼 곳에 보이는 폭포 비스무리한 걸 향해 다시 걸었다.

폭포라고 부르기도 뭐한 가냘픈 물줄기가 이날 잠비아 쪽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폭포수였다.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폭포 쪽으로 걸어가는 중간에 다리가 하나 나왔다. 물이 떨어지는 걸 제대로 보려면 그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그곳은 잠비아가 아닌 ‘짐바브웨(Zimbabwe)’ 쪽이라 짐바브웨 비자를 따로 받아야 갈 수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잠비아와 짐바브웨 양쪽에 걸쳐 있는 빅토리아 폭포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보통 두 나라 통합 비자를 발급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몰랐던 나는 짐바브웨로 넘어가려면 짐바브웨 비자를, 다시 숙소로 돌아갈 땐 또 잠비아 비자를 재차 발급받아야 했다. 그렇게 드는 돈만 80달러. 비자 발급 받는 것도 번거롭고 돈도 아까워서 결국 건너지 않기로 했다.

땡볕 아래서 3시간을 걸었다. 여행 준비할 때 분명 빅토리아 폭포는 잠비아 쪽과 짐바브웨 쪽 양쪽에서 모두 볼 수 있다고 나와 있었는데, 지금 잠비아 쪽에선 폭포수는 간 데 없고 절벽뿐이었다. 천둥 치는 소리가 울리면서 물이 콸콸 쏟아지고 물안개가 뿌옇게 올라오는 장관을 눈앞에서 보길 기대했는데, 현실은 물도 없는 절벽이 끝이었다.

큰 실망감을 느끼면서 주위에 있던 잠비아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묻자 ‘지금은 건기(dry season)’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방송이나 사진에 등장하는 웅장한 폭포의 모습은 우기(3~4월) 때의 모습이고, 지금 11월은 건기라서 폭포의 물이 90% 이상 마른다고 했다. 왜 여행 준비할 때는 이런 정보를 제대로 찾아보지 않았을까. 여행에서 시즌이 정말 중요하단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너무 늦은 때였다.

빅토리아 폭포 하나 보러 여기까지 왔는데, 떙볕에서 돌아다니고도 건진 게 하나도 없었다. 이대로 떠나긴 너무 억울했다. 잠비아와 짐바브웨를 이어주는 128m 높이의 ‘빅토리아 폭포 다리(Vicoria Falls Bridge)’에선 번지점프가 한창이었다.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한 번도 안 해봤던 번지점프를 그날 처음 해봤다. 다음엔 무조건 우기에 이곳에 돌아오겠다고 다짐하면서.

건기의 빅토리아 폭포에서 유일하게 남긴 건 생애 첫 번지점프였다.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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