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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캠퍼스] 공시, 임용, 회시...시험 공화국에 사는 2030

지난 달 15일 치러진 지방 9급 공무원 시험은 2만여 명 선발에 약 24만 명이 지원했다. (사진=연합뉴스)


“부모님 권유로 3년 정도 ‘피트(PEET,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 공부를 했어요. 수험기간이 길어도 여전히 합격이 불확실하다는 게 제일 힘들죠. 그런데 취업도 만만찮게 어렵잖아요. 취업에 성공한다 해도 만족할 만한 연봉을 받으면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을 보장 받는 것도 아니구요.”

서울의 4년제 대학에서 화학과를 전공한 감두현(가명·29) 씨는 다른 많은 화학과 학생들처럼 피트를 공부했다. 취업을 해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3년가량 공부했지만 합격의 길은 생각보다 요원했고, 결국 수험생활을 그만 두고 27살이란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가야만 했다.

‘리트(LEET, 법학적성시험)’를 준비하는 대학생 민규영(가명·25) 씨는 원래 2년 정도 다른 시험을 준비했었다. 그러다 생각이 바뀌어 법학전문대학원을 목표로 리트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3년 이상을 시험공부에 쏟고 있는 그는 “시험이 1년에 한 번뿐인데 그 한 번에 모든 걸 걸어야 하는 게 부담이 커서 힘들다”고 말한다.

대학 입학과 함께 영원히 끝날 줄 알았던 수험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20, 30대가 많아지고 있다. 예전엔 사법고시가 2030 수험생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시험이었지만, 요즘은 대입 N수생(동일 시험에 여러 번 응시하는 수험생)들의 수능 시험, 5·7·9급 공무원시험, 경찰·소방공무원 시험, 임용고시, 리트나 피트, MDEET(의·치학 교육 입문검사), 공인회계사(CPA)·세무사(CTA) 시험 등 외우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종류의 시험이 2030을 기다린다.

‘시험 공화국’의 2030, 헤어나올 수 없는 시험의 늪

사실 2030이 치르는 시험의 종류만 많은 게 아니다. 작년 한 해 동안 9급 국가공무원 시험은 약 20만 명(인사혁신처 통계), 경찰공무원 시험은 약 16만 3000명(사이버경찰청 통계), 중등임용고시는 약 6만 명(각 시도교육청 통계), 피트는 약 1만 6000명(한국약학교육협의회 통계), 공인회계사 시험은 약 9천 명(금융감독원 통계)이 시험에 접수했다. 위의 5개 시험에만 약 45만 명이 지원한 셈인데 대한민국의 20대가 약 682만 명이란 걸 감안하면 적어도 15명 중 1명은 작년에 시험을 쳤다고 볼 수 있다. 위의 5개 시험 외 다른 시험 지원자까지 모두 합산하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시험 종류를 불문하고 시험을 준비하는 데 드는 시간과 돈은 결코 만만치 않다. 올해 4월에 치러진 국가공무원 9급 시험의 경우 평균 경쟁률이 39.2:1(4987명 선발/19만 5322명 지원)이었다. 전체의 2.5%만이 합격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집정원보다 몇 십 배는 더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몰리기 때문에 보통 초시에 합격하는 경우는 드물고, 기본적으로 2~3년씩은 투자할 각오로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9급 공무원 준비생 현수진(가명·29) 씨는 “합격권에 밀집된 사람들의 실력은 비등비등한데 모집정원은 너무 적다”면서 “소수점 1,2점으로 합격이 정해지다보니 후회가 남아서 결국 포기를 못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시험 학원의 종합반 수강료. 적지 않은 금액임에도 많은 수험생들이 강의를 신청한다.(사진=공단기 홈페이지 캡처)


또한 시험에 드는 비용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서울 유명 공무원 준비 학원의 기본 종합반 수강료는 400만 원 이상이다. 다른 시험을 준비하는 학원도 수강료가 기본적으로 1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여기다 공부해야 하는 과목도 많다 보니 학원 종합반, 단과반, 동영상 강의, 독서실 등에 돈을 내다보면 1년에 몇 백만 원은 우습고 천만 원 돈이 들기도 한다. 아르바이트나 학원 근로장학생을 하면서 직접 비용을 충당하는 수험생도 있지만, 대개 공부하기도 바쁜 학생들은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인다고 해서 합격이 보장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수험생들의 불안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좁고 불확실한 시험의 문에 청년들이 계속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입 삼수생이었던 정한별(가명·23) 씨는 “뭘 해도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이것저것 다양하게 시도하기엔 실패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에 결국 시험에 몰리게 된다”고 말했다. 3년째 피트 준비 중인 대학생 도민진(가명·26) 씨도 “안정성이 보장된 다른 길이 많아서 먹고 살 걱정을 안 해도 됐다면 사람들이 이렇게 시험에 매달리진 않았을 것”이란 의견을 밝혔다. 또 리트를 준비생인 박종석(가명·27) 씨는 “전문적인 자격증 없이는 취업도 어렵고 설사 취업을 한다 해 오래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년의 도전 돕는 제도 필요, 중소기업에도 눈길 줘야 

이런 현상에 대해 문유진 복지국가 청년네트워크  대표는 "청년이 생애 주기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원가정의 소득 수준, 배경이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 시험이란 제도는 다른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공정하게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며 많은 청년들이 시험에 몰리는 이유를 지적했다. 문 대표는 또 "시험을 봐야 하는 직업군은 고용, 소득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전문성이 있기 때문에 이후의 생애를 안정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점"도 청년들을 시험에 집중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덧붙였다.

청년들이 과하게 시험에 몰리는 현상을 해결하는 방안으로는 "구직활동지원금, 청년수당처럼 부모님 소득수준, 가정환경에 영향 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나 다양한 진로를 생각해볼 수 있는 교육제도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면서 "낮은 수준에서부터 새로운 기회를 많이 창출해낸다면 청년들이 시험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미래를 내다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청년센터에선 청년이 혜택 받을 수 있는 정책들을 한눈에 훑어보고 상담도 받을 수 있다. (사진=온라인청년센터 홈페이지 캡처)


한편  고용정보원의 정동열 온라인청년센터기획운영팀장은 이에 대해 "대학이 학과 특성에 맞는 다양한 진로 정보를 충분히 알려주지 못해서 학생들이 막연히 'OO 직업이 안정적이더라'라는 말만 듣고 전공과 상관도 없는 시험에 몰리게 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학과별로 선택 가능한 진로에 대한 정보, 그리고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겐 시험 이후의 직업 생활에 대해서 미리 알려줄 필요가 있다"면서 "고용정보원에서 제작한 '대학 전공별 진로가이드'나 고용노동부와 지자체가 함께 만든 '청년일자리센터'를 통해 청년들이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좀 더 관심을 가지는 것도 이런 현상을 해소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중소기업' 하면 대기업에 비해 열악한 환경을 가진 곳, 성공할 수 없는 곳으로만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중소기업 내에도 청년친화기업, 복지가 좋은 기업 등 작지만 미래가 있는 기업들이 분명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서 그는 "정부가 발표한 청년정책 중엔 청년이 중소기업에 들어가서 자리잡을 때까지 2~3년 정도 충분히 지원해주는 정책들이 많이 있다"면서 "그런 정보를 통해 중소기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도 청년 취업 문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스냅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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