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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령기'라는 게 꼭 있는 건가요?"

2년제 대학 항공과를 졸업한 이모씨(23·여). 이씨는 졸업을 하자마자 서울의 한 호텔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했다. 그는 대학을 다니는 동안 졸업 후 곧바로 취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휴학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는 “22살에 취업했으면 어린 나이에 사회에 진출한 셈이다"라면서도 "대학 재학 중에는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취업을 해야한다는 강박에 엄청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 졸업 후에도 취업을 못하면 주변에서 사회에서 도태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봐 조급해진다"고 덧붙였다.

'취업 적령기’, ‘결혼 적령기’ 등 '이 나이대에는 이거는 해야지'라는 사회통념이 청년층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 심지어 '나이제한 공포'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9월 한 익명 커뮤니티 사이트에 나이 제한과 관련한 게시글이 올라왔다. 사람들은 댓글로 공감을 표했다.(사진=한 커뮤니티 캡처)


키즈모델 빼고 다 할 수 있는 거 아님?”

최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우리나라 정신병의 원인은 나이 제한 정해둔 것부터 시작인듯’이라는 제목의 글이 화제가 됐다.

내용은 ‘현대 한국 사회는 각 나이대에 해야 할 게 있는 것처럼 겁을 준다. 주입식 공포에 미쳐가는 느낌’이라며 나이와 해야 할 일을 정해두는 현대사회를 꼬집었다.

누리꾼들은 댓글로 ‘나이가 들며 더 고통스럽다. 취업, 결혼, 출산뿐만 아니라 아이의 나이에 맞춰서 각종 학원 보내기 등 암묵적으로 나이 제한이 정해져 있다. 이대로 안 하면 은근히 부담 주고 나이 잣대를 들이댄다’, ‘게임 속 레벨대 퀘스트를 깨는 것 같다’, ‘이 스트레스로 고통 안받는 한국인이 없을 것’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는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도 공유되며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많은 공감을 얻었다.

올해 1월 사람인이 구직자 2801명을 대상으로 '새해 나이에 대한 부담감'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6.5%가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신입 구직자의 43.4%는 본인이 신입 취업 적정 연령을 넘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중소기업에 취직한 조모씨(26·여)는 “20대 중반에 취직을 하지 못하면 그 이후는 더 힘들다는 주변 압박에 못이겨 우선 취업부터 했다”며 “아직 취직을 하지 못한 친구들도 하나둘씩 나이에 대한 부담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n수생은 휴학도 부담졸업생은 쫓기듯 취업

대학생도 다르지 않다.  휴학 후 여행이나 자기개발 등을 하고 싶지만 현실은 이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 소위 'n수생'들의 부담감은 더 크다.

대학생 이수민(23·여)씨는 “재수를 해서 대학에 1년 늦게 입학하다보니 고교 졸업후 바로 입학한 다른 친구들보다 이미 출발선부터 뒤쳐졌다고 생각하게 된다”며 “친구들이 1년씩 휴학하고 유럽을 다니는 걸 보면 나도 휴학을 하고 싶지만 늦었다는 생각 때문에 쉽게 결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취업할 때 어리면 어릴수록 좋다’, ‘여자는 나이가 스펙이다’ 라는 말들을 많이 들어 더더욱 휴학하면 안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정윤석(25·남)씨도 “삼수해서 학교에 들어오니 더 빨리 스펙을 쌓고 취업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휴학뿐만 아니라 진로 고민 또한 문제였다.

태연준(23·여)씨는 “4학년 2학기 때 휴학을 했던 이유가 차근차근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고 싶어서였다"며 "하지만 취업 관련 정보를 들어보면 실제 나이제한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어 “더 촉박하게 느껴지고 진로 고민들을 할 여유는 없이 필수 자격증만 기계적으로 준비 중"이라면서도 "이렇게 준비하는 게 맞는건지 고민이 큰 게 사실”이라고 한탄했다.

김재은(23·여)씨는 “인생이라는 게 각자의 길이 있는데 ‘이 나이 땐 뭐해야 한다’ 이렇게 정해두는 건 X세대(1968년을 전후해서 태어난 세대)때나 통하던 얘기다”며 “요즘은 대학을 가더라도 취업하기 어려운 환경인데 이런 고정관념때문에 더 힘들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도 사람들의 조언 아닌 조언에 부담은 마찬가지이다.

지예원(23·여)씨는 “나이는 졸업자 입장에서 더 스트레스다. 한살 한살 먹을 때마다 주변에서 취업 언제 하냐는 말부터 벌써 결혼 얘기까지 정말 많이 듣는다”며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 23살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나이에 해야하는 일을 정해두는 것 같다. 솔직히 결혼 적령기라는 말도 웃긴 말이다”고 했다.

남자는 군대, 여자는 결혼?관심 끄길

남자 대학생들의 공통적인 스트레스는 바로 군대였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시기를 두고 마치 정해진 시기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현대사회의 풍토가 원인이었다.

박모씨(22·남)는 “고등학생 때부터 군대, 학업 등 대학생활의 계획이 있었지만 사람 인생이란 게 생각처럼 되는게 아니다"며 “상황 때문에 군대가 미뤄진 것인데 ‘군대는 언제가?’, ‘졸업은 언제해?’이런 소리를 들으니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무언가를 해야 하는 타이밍과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다들 그렇게 하니 나도 그에 맞춰 해야한다는 생각이 고정관념처럼 자리잡혀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임모씨(23·남)는 “21살 후반에 군대에 안 가면 왜 이렇게 늦게 가냐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듣는다”며 “하지만 막상 군대에 가면 20대 중후반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으로 군대를 일찍 다녀와야 더 빨리 진로를 잡을 수 있다는 통념이 너무 깊게 자리 잡은 듯 하다”고 했다.

20대 후반 여성들의 경우에는 결혼이 화두였다.

김모씨(27·여)는 “이젠 어딜 가도 결혼 안 하냐는 소리를 듣는다”며 “지금 남자친구와 더 얘기해보고 차차 생각하고 싶은데 주위에서 자꾸 보채니 이게 나이와 시기에 치여서 결정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이모씨(29·여)는 “이제 정말 30대를 바라보고 있는데 주위에서 ‘여자는 30살이 넘으면 결혼하기 힘들다’, ‘하루라도 어릴 때 결혼해야 한다’등의 말씀들을 하신다”며 “결혼 생각도 없는데 결혼을 안 한 것을 마치 실패자이고 앞으로는 못할 사람처럼 말씀하시니 답답하다”고 전했다.

전문가 사회 전반의 기준 때문이에 젊은 층 반감 가져

전문가들은 소위 '~적령기'라는 게 기성 세대들이 만든 고정관념일뿐만 아니라 개인보다는 집단을 중요시하는 한국사회만의 문화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외국과 달리 어른들과 오랜 기간 함께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어른들의 사고방식을 강요받는 일종의 '내면화' 현상으로 볼 수 있다"며 "이런 현상이 장기화하면 가치관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사회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민감한 집단 중심의 문화라는 특성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재흔 대학내일20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최근 2~3년 전부터 20대들이 사회통념보다는 나만의 기준을 지키려는 '마이싸이더'(내 안의 기준을 세우고 따르는 밀레니얼-Z세대)적인 측면을 보인다”며 “적령기라는 것에 대한 반감과 함께 내게 맞는 인생을 설정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취업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취업시장이 좁아지며 우려를 더 크게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냅타임 신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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