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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 여드레가 7일, 8일이에요?”...MZ세대 문해력 저하 어쩌나

“닷새, 엿새, 그 다음에 뭐더라?”

40대 팀장 A씨는 최근 신입사원들과 대화를 나누다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6명의 20대 신입사원 가운데 열흘까지 우리말 날짜를 셀 줄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

A씨는 지난 광복절 연휴에 ‘사흘’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던 일을 그제야 실감했다. 우리말 대신 영어의 기수·서수는 알고 있다는 그들의 모습엔 묘한 씁쓸함마저 느꼈다.

MZ세대의 문해력 저하가 심화하고 있다. 글을 읽고 쓸 수는 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현대 문맹’의 등장이다. 글보다는 영상 콘텐츠를 가까이하는 젊은 세대의 경향이 주된 원인으로 파악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맞춤법 모르고 의사소통 어렵고

문해력(文解力)의 사전적 정의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영단어 ‘literacy(리터러시)’의 번역어로 풀이된다. 넓은 의미로는 글을 이용해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뜻한다.

조병영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EBS와 진행한 ‘문해력 Q&A’에서 “세상의 많은 일들이 글을 통해 표현·설명된다”며 “글을 정확하고 비판·분석·창의적으로 읽기 위해 문해력을 갖춰야 한다”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MZ세대의 문해력 저하가 심각할 뿐만 아니라 그 결과 어문 규범이 파괴되고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주 시청 연령대가 10대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김 모(25·여)씨는 댓글창에서 MZ세대의 문해력 저하를 발견했다.

김씨는 “맞춤법과 띄어쓰기, 주술호응을 틀리는 댓글이 정말 많다”며 “(MZ세대가) 어문 규범이 실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문장의 전달력보다는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내용의 드립(즉흥 농담)을 만들까’를 고민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모(25·여)씨는 지인과 일상을 공유하다 답답함을 못 이겨 다투고 말았다. 한정된 어휘로만 상황을 묘사하는 상대방의 모습에 ‘이해가 어렵다’며 추가적인 설명을 요구했지만 되레 ‘이야기를 했는데 왜 못 알아듣느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이씨는 “요즘 또래들을 보면 어휘력이 빈약하고 의사 전달력도 떨어지는 것 같다. 소통이 힘들다”고 호소했다.

박도현(22·남)씨는 문해력이 저하된 젊은 세대를 ‘몰(沒)지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비판했다. 박씨는 “젊은 세대는 정보를 얻을 때 적극적으로 글을 활용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사진=EBS '당신의 문해력' 화면 캡처)


 

영화의 가제랍스터’? 교육 현장·기업도 문해력 저하 실감

문해력 저하는 교육 현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EBS는 지난 8일부터 23일까지 디지털 시대 문해력 위기와 대안을 짚어낸 6부작 다큐멘터리 ‘당신의 문해력’을 방영했다. 1년간 유아·초등학생·중학생을 대상으로 문해력 향상 프로젝트를 시행해 얻은 경험이 담겼다.

제작진은 중학교 3학년 학생 2405명을 대상으로 △어휘력 △추론적 사고력 △비판적 사고력 △사실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문해력 평가’를 진행했다. 그 결과 27%의 학생들이 중3 적정 수준에 미달했으며 11%의 학생들은 초등학생 수준의 문해력을 갖춘 것으로 나타났다.

한 고등학교의 영어 수업시간에는 ‘변호’, ‘피의자’, ‘출납원’ 등 선생님이 해석해 주는 ‘한글 단어’를 학생들이 알지 못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사회 시간에는 영화 '기생충'의 ‘가제(假題)’를 언급하던 선생님이 "가제가 랍스터(가재)를 말하는 건가요?"라고 묻는 학생을 보고 당황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기업도 MZ세대의 국어 능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10월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1개 기업 가운데 56.5%가 ‘MZ세대 직원의 국어 능력이 이전 세대보다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기업들은 MZ세대의 ‘어휘력’과 ‘보고서·기획안 등 문서 작성 능력’이 가장 부족하다고 밝혔다.

 

영상·숏폼 콘텐츠가 가장 큰 원인...글 자체 기피도

MZ세대는 문해력 저하의 원인으로 영상 중심의 ‘숏폼 콘텐츠’ 유행을 꼽았다. 짧은 콘텐츠를 여러 개 소비하다보니 오랜 시간을 들여 글을 읽는 행위가 어렵다는 것이다.

유튜브를 즐겨 본다는 이씨는 “요즘은 모든 콘텐츠가 ‘더 짧게’를 외치고 있다”며 “틱톡(TikTok) 유행만 봐도 모든 걸 15초 안에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느냐”고 사례를 들었다.

영상 매체에만 의존하다 보니 글을 읽지 않는다는 의견도 전했다. 이씨는 “이전보다 글을 읽는 절대적인 횟수와 시간이 모두 줄었다”며 “글을 읽지 않으니까 집중력이 떨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니까 글을 더 읽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글 읽는 행위 자체를 기피하는 경향도 발견된다.

게시글의 분량이 길어질 경우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는 대신 ‘세 줄 요약’을 찾는 댓글을 단다. 제목에 ‘스압주의(스크롤 압박 주의·내용이 길어서 스크롤의 길이가 짧아진다는 뜻)’를 표시해 분량이 긴 글임을 미리 경고하기도 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전문가 문해력 개념 넓어졌지만...다독과 다상 여전히 중요

전문가는 ‘디지털 리터러시’ 등 문해력 개념을 넓게 본다면 젊은 세대를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젊을수록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글을 수단으로 삼는 전통적인 문해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다독(多讀)과 다상(多想)을 강조했다.

박진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정보의 원천이 주로 책이다보니 글을 잘 읽고 이해하는 능력에 초점을 뒀다”며 “그러나 이제는 스마트폰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보니 문해력 개념도 넓게 이해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정보 전달의 매체가 달라진다"며 “예전 정보 전달 매체(글)에 대한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한탄하기보다는 기성 세대든 젊은 세대든 새로운 정보 전달 매체에 대한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게 더 낫다”고 조언했다.

전통적 개념의 문해력을 기를 수 있는 방법도 제시했다.

그는 “젊은 세대 가운데서도 글을 많이 읽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며 “(문해력을 기르는 데는) 지름길이 따로 없고 좋은 글을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한 뒤 다른 사람들과 열린 마음으로 토론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스냅타임 윤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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