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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컷·맨얼굴 면접자에...“페미니스트세요?” 논란 확산

“몇 년간 기른 머리카락이 엉켜 얼마 전 짧게 잘랐는데, 이런 일을 겪을 줄 몰랐어요.”

A씨는 지난달 23일 경기도 일산에 있는 한 카페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간 자리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A씨에 따르면 카페 사장 B씨는 비건과 페미니즘의 공통점을 물었다. A씨가 비건 카페 경력이 있었기 때문.

(사진=이미지투데이)


A씨가 “환경을 생각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라고 설명하자 “혹시 페미니스트시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A씨는 면접에서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받아 당황해 머릿속이 백지가 됐다고 회상했다.

A씨가 “맞다”고 답하자 카페 사장 B씨는 “페미니스트와는 결이 맞지 않아 당신을 채용하지 않겠다”고 답했다고 했다. 그 뒤로도 A씨와 B씨 사이 설전이 오갔다.

A씨는 “사장이 단순히 나를 채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면 괜찮았을 것”이라며 “아르바이트 직원을 뽑는데 페미니스트인지가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A씨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어떤 머리스타일을 하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론화했다고 밝혔다. 기자는 B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카페를 방문했으나 인터뷰를 거절했다.

 

커뮤니티 통해 확산된 논란...별점 테러 vs 별점 응원

A씨의 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했다.

순식간에 B씨가 운영하는 카페의 상호명과 위치가 알려지면서 카카오맵·구글맵 등의 카페 리뷰 페이지엔 ‘페미니스트라 카페에 방문할 수 없다’, ‘참된 사장님’ 등 양극화된 반응이 나타났다. 사건이 공론화된 지 일주일 만에 카페에 등록된 평점은 1만 7000건을 넘어섰다.

A씨에 공감하는 이들은 카페 평점을 내리며 불매운동을 했다. B씨에 공감하는 이들은 별점 5점을 주면서 매기며 카페를 응원하고 나섰다.

B씨에 공감하는 이들은 A씨를 강하게 비난했다. A씨에 따르면 이들은 SNS를 통해 심한 욕설을 보내고 심지어 선정적인 사진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A씨는 도를 넘는 반응에는 맞대응할 생각이라고 했다.

면접에서의 성차별이 공론화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근 동아제약과 한 대기업 게임회사의 성차별 면접도 공론화됐다. 동아제약과 게임회사는 당사자에 사과했다.

노동계는 이번 사건도 명백한 성차별이라는 입장이다. 전문가는 온라인에서 페미니즘을 둘러싼 갈등 해소를 위해선 공개적인 토론 공간을 마련해 성숙한 토론문화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지는 성차별 면접 공론화..."직무 수행과 무관한 질문 없어야"

(사진=이미지투데이)


노동계는 이번 사건이 성별에 따른 편견이 개입된 성차별이라는 입장이다.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 신상아 활동가는 "면접 중 여성의 짦은 머리와 외모를 이유로 '페미니스트'냐는 업무와 관련 없는 질문을 하고 이를 이유로 채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성차별"이라며 "노동시장 진입단계에서 여성이 이런 식으로 배제된다면 향후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제재와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가 지난달 16일 배포한 성평등 채용 안내서에 따르면 성평등 채용을 위해 성별에 따른 편견이 개입된 질문이나 직무수행과 무관한 질문을 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배진경 대표는 "'비건과 페미니즘의 공통점이 무엇이냐', '페미니스트냐' 등과 같은 업무와 관련이 없는 질문을 했고 추후 페미니스트라서 채용할 수 없다는 뜻을 사장이 직접 밝혔다면 채용되지 않은 이유가 페미니스트임이 명확하다"며 "명백한 차별"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해 7월 게임업계 내 여성 혐오 및 차별적 관행 개선을 촉구하면서 결정문을 통해 페미니즘을 이유로 고용과 관련하여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는 차별사유로 판단했다.

 

청년층,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 양극화 커...“토론 공간 필요해”

온라인에서 A씨의 사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청년들은 주로 인터넷 카페·커뮤니티에서 젠더 관련 정보를 접하는데 커뮤니티의 경우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양극화돼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청년 관점의 ’젠더 갈등‘ 진단과 포용국가를 위한 정책적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52.5%가 인터넷 카페·커뮤니티를 통해 젠더 관련 정보를 접한다고 답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분화가 단지 회원의 성별 분포뿐 아니라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청년 중 남성 다수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비중은 39.0%로 지지하는 청년(5.9%)에 비해 월등히 높았고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청년은 여성 다수 커뮤니티를 이용한다는 응답이 68.3%로 반대하는 청년(14.3%)보다 월등히 높았다.

전문가들은 온라인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잘못된 지식에 기반한 논쟁과 감정적 공격이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짚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남녀가 공개된 공간에서 정제된 언어로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마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성평등 교육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학생들이 공개된 장소에서 성평등과 차별에 대해 합리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것.

마 연구위원은 "학교에서 우리 사회 불평등과 성차별에 대해 교육해야 한다"며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지에 대해 학생들이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온라인에서 페미니즘을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토론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서다"라며 "온라인 공간에선 익명성이 보장되니 왜곡된 토론문화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익명성 뒤에 숨지말고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면서 "성숙한 토론 문화 형성을 위한 공개적인 토론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냅타임 권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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