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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가족의 기준이 뭔가요?"...흔들리는 가족 개념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출산한 방송인 사유리가 지난달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출연 소식이 전해지면서 온라인 상에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사유리의 방송출연을 반대하는 누리꾼 중 일부는 '비혼모 출산 부추기는 공중파 방영을 즉각 중단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리는 등 사태가 확산됐다.

하지만 이같은 사회 일각의 비혼모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해 MZ세대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정재용(26·남)씨는 "국민청원과 사람들의 반응이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시대가 변했고 결혼여부를 가지고 ‘정상(常)가족’을 규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결혼 여부를 떠나 출산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사유리와 그녀의 아들 첸. (사진=사유리 인스타그램 캡처)


 

정상가족이란?...반발심 느끼는 MZ 세대

정상가족의 개념은 2005년 제정한 건강가정기본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에서는 '가족이라 함은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 그 중에서도 정상가족이란 혼인과 혈연으로 이뤄진 협소한 기본단위를 일컫는다.

MZ 세대들은 일반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말하는 정상가족의 개념은 최근 들어 와해되는 경향성이 짙다는 입장이다. 정상가족을 규정하는 한 축인 혼인과 혈연에 대한 의지와 신념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3월 10일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청년의 생애과정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과 미래 전망 연구’에 따르면 청년 절반이 결혼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여성의 57.4%, 남성의 51.9%가 결혼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여성의 23.9%, 남성의 11.0%가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청년들의 약 40% 내외는 출산에 대해서도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남성의 35.7%, 여성의 21.6%가 출산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음’이라고 응답했다.

실제로 MZ 세대는 정상가족 개념에 반발심을 느꼈다.

임지민(여, 35) 씨는 “가족 형태를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자체가 이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임씨는 “각자의 생활 방식이 있는데 사회 통념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정상으로 취급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마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젠더보상체계’가 와해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남성이 돈을 벌고 여성이 집안일을 하는 ‘윈윈(win-win)’ 관계를 형성하는 ‘젠더보상체계’가 작동했다. 남녀가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상호보완적 관계가 결혼과 가족을 지탱하는 견고한 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맞벌이가 필수가 된 시대에서는 젠더보상체계가 깨지기 쉽다. 따라서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인식이 약해지는 것 .

마 연구위원은 “남성들은 여전히 생계를 유지해야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리고 여성들은 시부모를 챙겨야하고 육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인식은 결혼과 출산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게 마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자료= 여성가족부)


(자료= 여성가족부)


 

혼인과 혈연으로 묶이지 않은 가족’...“다양한 가족 형태 인정해야

MZ 세대는 혼인을 하지 않더라도 친밀한 공동체를 가족으로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

신수진(25·여) 씨는 “결혼을 하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혼인을 거치지 않더라도 동거하는 커플, 친구, 친밀한 공동체 일원 모두 ‘가족’이 된다는 것이다. 이어 “결혼의 유무로만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묶으려는 시도는 편협하다”고 덧붙였다.

MZ 세대는 애완동물 또한 가족으로 여기는 경향이 짙었다.

임 씨는 “지금 키우는 반려견은 가족과 마찬가지다다”라며 “주변 친구들은 아이가 주는 기쁨이 크다고 하지만 반려견도 아이 못지 않은 기쁨, 행복, 위로 등의 감정을 준다”고 말했다.

임씨는 가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적인 교류이다. 이 점에서 반려견 또한 가족의 범주로 포섭될 수 있다는 것.

한편 결혼은 하기 싫지만 아이는 낳고 싶다는 의견도 있다.

윤다원(25·여) 씨는 “법적 배우자와 성적으로 결합하는 사람이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고 생가하지 않는다”며 “결혼은 안해도 아이는 낳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법적으로 혼인을 한 관계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낳고 살 수 있다”며 “실제로 한부모 가정을 비롯한 다양한 가정 형태의 구성원들도 잘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에 결혼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출산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놓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렇듯 MZ 세대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용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원한다.

(사진=알라딘 캡처)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는 노력들...생활동반자법과 건강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려는 노력들이 진행중이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우선 생활동반자법은 그 노력의 일환이다.

생활동반자법은 혼인이나 혈연으로 이뤄지지 않은 생활동반자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로  2014년 도입이 논의되었다. 이는 자유로운 동거와 출산을 보장한 팍스(PACS, 시민연대계약)의 사례를 참고했다.

그러나 법 도입은 아직까지 요원한 실정이다. 19대 국회 당시 진선미 의원이 생활동반자법을 추진했으나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법’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진 탓에 종교계의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진 의원실에서 생활동반자법 입법을 추진한 황두영 씨는 책 '외롭지 않을 권리'에서 생활동반자법을 ‘외롭지 않을 권리’라는 개념으로 포섭할 것을 제안했다. 생활동반자법은 단순히 ‘동성애를 합법화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생활동반자법을 ‘외롭지 않을 권리’라는 시각에서 볼 때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MZ 세대는 생활동반자법을 반색했다.

윤 씨는 “가족에는 너무 많은 의무가 부수적으로 주어져서 부담스럽지만 ‘생활동반자’는 가족보다 느슨한 개념이여서 좋다”고 긍정적인 감정을 내비쳤다. 이어 “생활동반자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가족같은 관계를 형성하는데 가족의 제도적 혜택은 수혜받지 못한다”며 ”이러한 법적,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제도로 포섭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여성가족부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기 위해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곧 확정할 예정이다. 가족의 다양성 증가를 반영해서 모든 가족이 정책에 배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건강가정기본법 개정도 함께 추진한다.

이는 지난해 남인순·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잇달아 대표발의했다. 핵심은 ‘건강가정’을 ‘가족정책’으로 변경하고, ‘가족’이라는 정의를 삭제하는 것이다.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라는 협소한 정의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을 아우르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시대착오적인 법 조항 삭제도 추진한다.

현행 건강가정기본법 제8조의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 동법 9조의 '가족구성원 모두는 가족해체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는 문구를 삭제해 가족 형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제도적인 노력과 더불어 인식 개선의 노력도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의 ‘정상성’에 대한 개념을 해체하는 것이다.

고선주 가족학 박사는 "정상가족이라는 용어의 사용 자체를 삼가야 한다"며 "늘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해왔기 때문에 정상이라는 개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고 박사는 이어 "사회문화 변화와 시대적 흐름에 따라 가족 형태는 늘 바뀌기 마련이기 때문에 ‘정상성’의 기준을 마련하기 어렵다"며 "다양한 가족 형태를 당연시 여기는 인식이 자리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냅타임 안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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